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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11일 오후 한양도성 답사에 참여하였다. 서울시민대학의 이현군 박사 주관 강좌의 답사코스 중 하나였다. 이동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 도성과 이동의 수단이 되는 도로, 전차, 지하철 등 교통로의 결합이 주제였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서 보면 E~D 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답사하였다. 광희문에서 시작하여 성곽이 사라진 구간을 찾아가며 흥인지문까지 이동하면서 복원된 이간수문, 오간수문이 있던 곳, 구한말에 건설되었던 전차 차고지 등을 살펴보았다.

 

1902년 한양 지도. 한양의 모습과 도성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한양도에서 광희문, 흥인지문 주변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광희문에서 흥인지문 사이에 청계천의 물길이 도성 밖으로 빠지는 통로였던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훈련도감에 속한 관청의 하나인 '하도감' 도 성곽 가까이에 표시되어 있다. 부근에 '훈련원' 표시가 보이는데, 조선 건국 초부터 있었던 군사훈련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훈련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도성 내에서 청계천의 하류에 해당하여 "아랫대(下村)"라 불렸으며, 청계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인왕산 동쪽 일대는 "웃대(上村)"라고 불렸다고 한다.

 

광희동사거리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하여 답사를 진행하였다.

 

복원된 광희문. 문의 이름을 알려주는 현판은 도성의 바깥 쪽에만 달려 있다. 남산 방향으로 약간의 성벽이 남아 있다.

 

광희문의 홍예 부분 천장에는 용 두마리가 노닐고 있다.

 

1396년 한양도성을 창건할 때 세워진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은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도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 파손되었다가 1976년에 복원되었는데, 자동차 도로가 넓어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성벽의 돌들 중에는 사연을 새긴 각자성석이 보이곤 한다. 멀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읽어볼 수는 없었다. 멀어서 안보이는거다.ㅠ.ㅠ

 

각자성석의 내용은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것과는 다른 돌인갑다.

 

도로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도성이 분수계를 따라 축성되었으며, 도로 가운데 위치했던 광희문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복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광희문의 통행가능한 폭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지금의 도로폭과 비교하면 도저히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성의 성문은 수난을 겪게 된다.

 

전차의 궤도가 건설되고 노선이 확대되면서 도성은 파괴의 아픔을 겪었다. 서울 전차 궤도가 건설되면서 훼손되고 있는 숭례문과 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광희문에서 도로 건너편에 도성의 흔적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에 대한 안내판이 바로 앞에 세워져 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그곳의 거대한 건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유려한 곡선미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인 Zaha Hadid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벽들과 바닥, 천정들이 섞이고 확장되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구조로 표현함으로써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역동적인 공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격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DDP 옆으로 성곽 구간을 일부 복원해놓았다.

 

DDP를 포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 운동장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1968년 동대문운동장 보수공사 시 설치되었던 야간 조명 시설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봉화대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화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55년 개최된 제36회 전국체육대회로 성화대에 불을 옮기는 최종 주자는 고 손기정이었고, 성화의 전국 일주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가 최초였다고 한다.

 

공원 내 한쪽 구석에 이간수문이 복원되어 있다.

 

돌의 일부에는 구멍이 파여 있다. 

 

그 구멍은 나무로 벽을 덧대는 용도였다. 성곽의 일부 구간이 이간수문이었고, 물이 흘러 빠져나가면서도 방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일부 돌들에는 거울, 십자표식 등이 껌딱지로 붙어 있다. 성벽의 뒤틀림 같은 변형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발굴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2008년 9월초, 이간수문의 홍예 상단이 처음으로 노출된 모습.

2008년 11월 초, 호예 내부의 퇴적물 위에 놓여 있는 박석의 모습.

2008년 12월 초의 발굴 완료 상태. 퇴적물을 모두 제거하고 난 이후 드러난 이간수문의 축성 상태.

 

이간수문을 살펴보고 나오는 배나온 답사대원.....

 

 

청계천 지류 구간이 복개되었기 때문에 이간수문의 복원을 이렇게 해놓을 수 밖에 없었다.

 

패션 쇼핑몰을 지나간다. 외국인들이 참 많다. 도로와 골목에 오토바이가 참 많다.

 

청계천을 만나 오간수교 아래로 내려간다. 공사기간에 쫓겼을까... 오간수문을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인 오간수교.

 

오간수교 아래 오간수문의 사진과 그림이 남아 있다. 그림은 오간수문 부근에서 청계천의 쌓인 토사를 준설해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준설 공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영조 때의 것이었다. 여러 마리의 소까지 동원되어 준설 공사를 하는 것을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오간수교 위에서 감독하고 있는 그림이다.

 

1760년에 영조의 명으로 청계천 준천을 마치고 그 과정을 4첩의 채색기록화로 남겼다. 김희성의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준천 작업을 묘사한 것은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중이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수고했다는 어필을 남기시었다.

준설해낸 토사의 양이 많아 청계천 부근에 假山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후 그곳에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살며 환경이 악화되자 꽃나무를 심어 그 향기가 널리 퍼져 芳山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후 이곳에 들어선 시장은 방산시장이 되었다.

 

청계천의 유로는 평소에는 수돗물로 유지되지만.............

 

비가 오면 부근의 수많은 복개 하천들로부터 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수문들 중 하나. 자동으로 열린다. 사전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하니 제발 말 좀 바로 듣길 바라요~

 

드디어 커다란 흥인지문을 만난다.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 흥인지문은 4대문 중 하나...건너편의 녹색 언덕은 흥인지문공원, 공위의 윗쪽으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전차 차고 터' 표석이 있다. 구한말에 운행이 시작되어 1968년 철거된 전차의 차고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와 구한말 전차 운영회사인 한성전기회사의 기계창도 있었다. 전차 운영이 필요한 차고지, 기계창, 발전 시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부근의 차고지와 발전소, 그리고 동대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이다.

그리고 동대문 앞을 지나는 전차. 1960년대의 모습이다.

(위 두 사진 모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다른 사진을 보자. 화력발전소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 준 덕택에 동대문의 홍예 사이로 전차가 달리고 있다. 동대문을 전차가 통과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전차의 크기가 커지면서 동대문을 우회하여 지나게 된다.

(https://pzkpfw3485.tistory.com/2242620에서 인용)

 

길건너의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석이 있다.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똑섬, 광나루까지 다니던 궤도전차가 출발하던 곳이었다.

 

경복궁의 월대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차 궤도가 발견되면서 서울의 전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바 있다. 다른 곳의 노선은 모두 철거하였는데, 이 구간은 그냥 매립하고 도로 포장을 하였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이 있는 구간은 성곽이 모두 사라지고 대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 1398년에 세운 한양 도성의 동쪽 문이며, 현재의 문은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바깥쪽으로 방어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다.

 

흥인지문공원의 성곽구간을 답사하였다.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의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멀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방향으로 성곽이 이어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흥인지문 앞의 도로 건너편에 멋진 신식 건물이 보인다. 전차 차고지가 없어지면서 그 부지는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로 이용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폐쇄된 이후 주차장으로 이용되다가 들어선 JW 메리어트 호이다. 그 뒤로 동대문 종합시까지 전차 차고지와 발전소 부지였던 곳이었다.

 

...

 

오늘의 답사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호선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광희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이간수문 - 오간수교 - 흥인지문 - 흥인지문성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2.7km,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흥인지문에 밤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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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4일에 한양도성 일부 구간을 답사하였다. 

2017년에도, 2018년에도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그 이전의 답사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찾아보니 2013년 11월 16일(토)에 사진들만 남아 있어 10년 만에 사진들만 정리를 해본다.

 

답사경로는 이와 같다.

경복궁역 주변에 집결하여 버스를 이용해 창의문까지 이동하여 숭례문까지 걸어서 이동했었다.

 

사진을 촬영했던 뽀인트들을 표시한 지도.

GPS 로그 기록을 남겼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로그 파일이 남아 있질 않다.ㅠ.ㅠ

 

2013년 11월 13일. 오전 9시 12분에 촬영한 사진이다.

청계천 발원지. 윤동주 문학관 옆 도로가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지 않는 백운동천의 시작점에 해당한다.

 

바로 인근에는 19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을 위해 침투했던

김신조 등 31명의 무장공비를 막아내는데 공헌, 희생한 이들의 동상이 서 있다.

 

9시 18분. 답사를 인솔했던 이현군 박사가 한양지도를 놓고 안내를 하고 있다.

 

요 지도이다.

 

창의문彰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북서쪽에 낸 사소문 중 하나로 다른 이름으로는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부른다. 조선 태조 5년(1396) 다른 문들과 함께 축조됐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문이다. 인조반정(1623) 당시에 거사에 가담한 군대가 이 문을 통해 들어왔는데 그 사연과 공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현판이 지금도 문루에 걸려 있다. 성문의 홍예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고 천장에도 봉황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창의문 바깥 지형이 지네의 형상이라서 지네의 천적인 닭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새기고 그려넣은 것이라는 속설이 전한다.

창의문 밖으로 나가면 환기미술관, 백석동천과 백사실 계곡, 세검정, 대원군 별장이었던 석파정의 사랑채 건물, 탕춘대성의 홍지문, 보도각 백불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답사에 담가했던 대원들의 단체 사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어떤 단체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ㅠ.ㅠ

 

답사를 출발한다. 한양도성 순성 코스 중 숭례문-창의문 구간을 반대로 이동하였다.

 

9시 35분. 창의문앞 교차로에서 창의문로를 건너 인왕산 방향으로 들어간다.

 

9시 40분. 경치가 좋으다.ㅎㅎㅎ

 

윤동주 시인의 언덕 한쪽에 그린 한 폭이 소개되어 있다.

정선의 작품, 장안연우(간송미술관 보관).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 서울 장안을 내려다 본 전경을 그린 것이라 한다.

11월이라 늦가을인데, 안개가 짙게 깔려 정선이 작품이 이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이 장안연우를 그릴 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자하문로를 걷는 답사대원들의 모습.

 

9시 53분. 인왕산 위의 한양도성 구간. 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인왕산의 화강암이 닳고 닳았다.

" 자, 저쪽에 뭐가 보이지요?"

"안개요!"

 

산지 사면을 따라 만들어진 도성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숨이 차다!!!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철조망이 있다!!!

 

복원한 부분은 돌의 때깔이 다르다. 

 

안개가 몰려온다. 쌀쌀하다. 어으~~ 춥다.

 

10시 8분. 안개로 축축한 널바위 구간에서 이현군 박사의 설명이 있었다.

 

10시  30분. 정상에 오르다.

 

종로구는 이런 경계점 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점.

2004년에 주요 경계점 10곳에 경계점 표석을 설치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10시 35분. 안개 속으로 올라왔다가 안개 속으로 하산한다.

 

사진찍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정도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일텐데....

 

이정표가 보이면 촬영해두는 습관...

 

10시 40분. "여러분 춥습니까~?"

"네~"

 

계단의 경사가 아름답다~~~~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 구간도 존재한다. 그래도 산의 경사가 험하니까...

 

안갯속으로 한양도성의 허연 복원된 부분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조기다. 이날 안개는 참 대단했다.

 

10시 50분. 한계단 한계단 조심조심...

 

달님인 듯한 햇님...

 

11시. 서울 시내 방향의 조망 상태.

 

11시 10분. 뒤를 돌아보았다. 완전 오리무중이다.

 

11시 26분. 북악이 저곳에... 청와대의 지붕이 살짝 보인다.

 

11시 45분. 어느 틈에 홍난파 가옥 앞에 섰다.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벽돌로 지은 서양식 건물을 홍난파가 인수해서 살았던 곳이다.

1930년대의 서양식 건물 특성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

입구에 홍난파의 조각상이 있다.

 

12시. 경교장을 방문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온 후 1949년 6월26일 암살 당하기 전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2층 창문에 총알에 맞은 자국을 구현해놓았다.

 

12시 5분. 정동사거리에서 돈의문 터 주변을 살피고 있는 이현군 박사.

돈의문敦義門은 서울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의 다른 문들과 함께 준공됐는데 서대문·새문·신문이라고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일제가 도시계획에 따라 전차궤도를 복선화한다는 명목으로 철거해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돈의문의 위치를 ‘정동사거리’로 추정할 뿐이다.

 

12시 11분. 정동길로 들어섰다.

 

정동사거리에서 대한상공회의소까지의 구간의 도시화 과정이 중첩된 곳이다.

여러 차례의 개발 과정에서 도성의 모습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게 변해버렸다.

 

12시 15분. 이화여자고등학교 정문 길건너편, 이화 사주문 앞에 위치한 '대소인원개하마'라 적힌 하마비.

人은 보통 사람, 員은 관직이 있는 사람을 가리켰던 것이라네...

 

러시아 대사관 옆을 스쳐 지나간다.

 

12시 22분. 서울 성곽이 끊어진 구간 표시. 사유지이기 때문에 복원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아쉬움.

 

'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을 저곳에 설치한 이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찾아가볼 방법이 없는 곳이다.

소의문터.

 

12시 37분. 대한상공회의소 부근의 복원 구간이다.

 

12시 45분. 숭례문에 도착하였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왕산 - 숭례문 구간의 한양도성 답사였다.

오전 9시 12분의 첫 사진에서부터 오후 12시 45분의 마지막 사진까지 4시간 정도를 진행한 빡쎈 답사였다.

 

 

이것은 비공식 일정의 기록이다.

오전의 답사를 성실히 수행하였기에 점심 식사 시간도 지나는 즈음이라 식당을 어렵게 찾아 점심 식사를 여러 답사 대원들이 함께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오랜 만에 만난 얼굴들이 서로 반가워.... 좀 반가워.... 좀 오래 반가워했었다.

그렇게 골목을 다니며 여러번 반가워 하다가 나의 기억은 log data가 삭제되었다.

다음 날 보니... 카메라는 잘 챙겨왔는데, 전화기가 따라오질 않았더라.

어디에다가 흘렸는지를 찾는 과정이 재밌었다. 네이버와 다음의 로드뷰를 십분 활용하여 위치 찾기를 했었다.

찾는 과정은 재밌었으나 다시는 당연히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여러번 있었던 스마트폰 분실사도 한번 정리해볼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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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의 하나가 수선전도일 것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성의 상태가 온전한 것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북악과 남산 사이에 배치된 4대문과 4소문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한양의 도성을 찾아 따라 걷는

'지오트립'에서 마련한 행사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도성이 온전한 구간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복원한 구간도 있었고,

군데 군데 끊어진 곳을 찾아가면 걸어보는 구간도 있었다.

그 행사들은 일찍부터 한양도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이현군 박사가 인솔하는 행사였었다.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이란 강좌가 개설된 것을 확인하고,

서울시평생학습포털을 통해 수강신청을 했다.

다행히 개설되자 마자 신청하여

서울시민대학 23학번 학생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4일에 두번째 야외답사가 진행된 곳은 백악마루 아랫 구간이었다.

혜화문에서 와룡공원 언저리까지 와서 암문을 통해 성을 몰래 빠져나가 북정마을을 답사하였다.

대표

한양도성은.....

 

 


 

 

한성대입구역 5번출구 앞에서 집결하였다.

20여 명의 참가자들이 이동과정에서 안전을 챙기기 위해 목걸이를 하나씩 하고 패용한다.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 성북동의 유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조선 후기 들어서부터 사람들의 정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성대입구역 교차로에서 성북로를 건너간다.

 

원래 관문은 도로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통행을 조절하는 것인데, 도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로 바깥쪽으로 "치워졌다". 역사의 한 흐름이랄까...

 

혜화문에서 저쪽 건너편으로 도성 구간이 낙산공원 쪽으로 이어진다. 흥인지문까지 낙산공원을 즐기며 산책하기에 괜찮은 코스이다.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혜화문은 처음엔 弘化門이었다가 1511년에 혜화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로 동소문으로도 불린다. 사소문 중 하나이지만 통행량은 사대문 못지 않았다고 한다. 한양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경원가도가 혜화문과 연결되어 있었고,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이 항상 닫혀 있어 혜화문이 그 역할까지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창의문과 마찬가지로 혜화문의 홍예 천장에도 봉황이 그려져 있는데, 새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새들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봉황을 그려넣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성문 위의 문루도 없는 상태였는데, 영조때 문루를 지어 올렸다. 그러나 1928년에 문루가 헐렸고, 1938년에는 홍예마저 없앴다. 그랬던 것을 1994년에 본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긴 자리에 홍예와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러니 사진의 혜화문은 온전히 "새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인근에 '한양도성혜화동 전시안내센터'가 위치한다.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활용한 것이다. 한양도성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복원작업을 하는 와중에 서울시장이란 사람이 그 도성위에서 살고 있다? 그런 이면이 있었기에 공관이 한양도성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도성 위에 새롭게 복원된 성벽이 잘 어울린다.^^

한양도성은 조선 태조 때 처음 축조된 이후 세종과 숙종 때 대규모의 수축과 개축을 거쳤다. 세 시기에 쌓은 성벽은 돌의 모양도 다르고 쌓는 방법도 달라 쉽게 구별된다. 이제 네 시기의 축성 방법이 되겠구나.

이 구간에 남아 있는 성벽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면 세종 때의 것이 아닌가 싶다.

 

 

두산빌라는 한양 도성 위에 건축되었다. 성벽을 보면, 태조 때의 것일 것 같은데... 강점기 이후 도성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파괴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중요한 가치를 갖는 한양의 도성이었다는 인식을 갖지 못했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일 것이다.

두산빌라로 들어가는 골목의 좁은 도로가 작은 고갯마루이다. 종로구와 성북구의 분수계에 해당하는 경계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태조 때 축성된 도성 위에 교회도 앉아 있다.

 

이제 그러한 도성의 흔적마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경신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의 함성이 기운차게 들리고 있었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경신고등학교 건물의 아랫쪽. 도성의 약간이나마 남은 흔적과 축대와 학교의 담장이 혼재되어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구간은 도성이 없어졌다.

 

서울과학고등학교 후문 쪽 길바닥에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점 표식이 설치되어 있다.

종로구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는 도성의 안쪽, 성북구는 도성의 바깥쪽이다.

 

성북동쉼터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올라간다. 자주 걷다보면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라.

 

건강해진다~~~

 

성북동은 녹색지대이다. 동네옆의 숲속으로 도성이 주욱 이어진다. 그러니까 성북동은 도성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인 것이다.

 

도성을 따라 숲이 이어진다. 자주 걸으면 건강해질 것이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북악 팔각정이 작게 보인다. 저 능선의 왼쪽에 북악이 있고, 오른쪽으로 쭈욱 가면 북한산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와룡공원이다. 우리 팀은 성곽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도 답사해보기로 했다.

 

도성에 제대로 된 유명한 통로가 아니라 그냥 개구멍처럼 몰래 아는 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암문이라 한다. 숨겨진 문이라는....

원래 암문은 비밀리에 군사를 이동하거나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만든 아주 작은 문이다. 평소에는 돌로 막아두었다가 전시에만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비밀통로인 것이다. 현재 한양도성에는 모두 여덟 곳의 암문이 있다.

 

 

북정마을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심우장에 이르기도 하고...

 

 

옛날 개발의 시대 같았으면 진즉에 재개발을 하겠다고 덤벼들었을 법한 그런 동네로 보인다.

 

안내도 조차도 재개발이 필요하다. 개발 '계획' 없이 들어선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길이 제대로 만들어질 겨를이 없었다. 차량은 들어와야 하고 길은 좁다. 그래서 일방통행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다.

 

일방 통행해야 하는 도로.

 

1983년 소방도로준공기념비가 보인다. 소방도로가 필요하다고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이전 일방통행의 좁은 도로조차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 묵은 동네이다 보니 노인인구의 비율이 높다. 노인정, 경로당이 여럿. '할머니경로당'이 따로 있네....

 

북정마을의 중심지이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노인정이 있고, 북정카페가 있고, 약간의 주차가능 공간이 있고,

게다가 화장실이 있다!!!!!!!!!!

 

조 앞으로 도성의 모습도 아주 잘 보인다.

 

도성을 바라보고 뒤돌아 아주 아주 좁은 골목길로 내려간다. 심우장 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 비둘기공원이 있다. 비둘기 책방도 있어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계속 날아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북동 비둘기'이다.

 

좁은 길이라고 했다. 분명히...........ㅎ

 

주욱 내려가다가 담 너머로 심우장이 보인다. 아담한 공간이다.

 

심우장은 24번지이다.

 

selfie 딱 한 장 만들었다.

 

만해 할배가 앉아 있었음직한 자리에 앉아 혼자 몰래 분위기를 잡아 보았다.

 

님의 침묵의 필사본도 만져보았다. 내용은???

 

이게 머니?????? 필사본이기는 하구나...ㅠ.ㅠ

 

만해 한용운은 1933년에 이곳에 심우장을 짓고 정착하였다 한다.

 

 

만해 한용운과 인연이 닿은 곳들이다. 백담사, 건봉사, 신흥사, 서대문형무소, 만해산책공원, 심우장까지 가보았네...

.

 

 

심우장을 나선다. 북정마을이다.

붉은 페인트로 × 표시가 되어 있다. 공가, 빈집이란 표시란다. 빈집들이 지방의 산골 뿐 아니라 서울시내에도 볼 수 있는 지역인 것이다.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간다. 다음 일정에 대한 안내도 이루어졌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집터였다는 표식이 바닥에 있더라.

 

바로 아래에 만해산책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심우장 만을 방문하려 한다면, 성북로를 따라 올라와 만해산책공원에서 골목을 올라가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고, 한양도성구간을 살짝 즐기며 방문하는 방법이 있겠다. 양쪽을 모두 즐길 수도 있겠고...^^

 

성북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왔다. 쌍다리돼지불백 왼쪽 골목이 북정마을로 올라가는 길이다. 운전하기에 난코스이다. 제한속도 30을 꼭 지켜야 하는 구간.

 

서울과학고등학교의 뒷편에 위치한 성북동쉼터. 성북역사문화공원이라는 간판을 달아놓았다.

 

성북로변에 선잠단지가 있다.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시설로서 왕비가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며, 선잠제도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시행되었다고 한다. 강점기에 들어서 금마덜이 중단시켰다.

 

선잠단지는 요로케 생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선잠박물관을 만들었다. 왜? 모할라꼬??

 

성북로에 조성된 가로공원이 아주 예쁘더라. 방송에서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이곳이었네.

 

5월 4일 한양도성 및 북정마을 답사를 따라와서 이동한 코스가 이렇다. 3.9km 구간, 약 2시간이 소요되었다.

 

2023년 5월4일. 이현군 박사를 따라다닌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의 "역사공간과 현대식 빌딩이 공존하는 서울(현대편)" 답사기록.................이었다.

 


참고로 한양도성의 순성 코스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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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잡고 완독을 하였다.

"오래된 길들로부터의 위안"

한양도성과 옛길에 대한 책이다.

 

답사기라고 하면 답사하면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글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보통'이 아니다.

소싯적부터 갖고 있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답사 지역을 대표하는 장면을 세밀화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 그림마다 답사의 동반자였던 자녀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재밌다. 그리고 부럽다.^^

답사하면서 엄마의 마음과는 조금 다른 마음을 갖고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세밀화와 함께 하는 글은 막히지 않고 쉽게 익힌다. 하지만 내용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아니 쉽다. 음~ 그렇다. 쉽지 않은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편하다. 아이들과 티키타카 하면서 있었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답사 지역의 현재 모습에 대한 생생한 묘사, 그리고 그 배경이 되었던 역사, 문화, 및 지리적 배경에 대한 내용이 범상치 않다. 편하게 읽으며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각 꼭지마다 답사한 구간의 개략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여러가지 장점들 중에 손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책을 들고 다시 읽으며 지도를 따라 직접 답사를 하고 싶게 만들어준다.

검색해보니 이미 여러 블로그에서 그렇게 한양도성을 살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3월에 "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의 저자인 이현군 박사의 인솔로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을 순성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남긴 사진과 같은 구도의 그림이 나와 반갑기도 하였다.^^

 

 

날 풀리면 옆지기를 끌고 답사에 나서려 한다. 각 꼭지의 답사 코스에 조금 걷는 것을 불편해 하는 옆지기의 상태를 반영하여 더하고 빼고 하면서 여러 코스를 만들어 두었다.^^

간만에 좋은 답사 안내기 책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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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2일, 토요일.

오랜 만에 만나보자는 연락이 오고 모임이 성사되었다. 가볍게 산책을 함께 하고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거주하는 삶터의 위치로 인해 서울 시내로, 그리고 산책을 겸하면서 식당가가 가까운 곳을 고려하면 별로 고려할 것도 없이 선택되었다. 인왕산으로 가려다가 낙산으로...

오후 4시에 모여 4.2킬로미터를 걸었다. 1시간 20분 소요.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모여 낙산을 올라 공원을 지나 동대문쪽으로 하산하여 청계천을 따라 도심을 걸었다.

 

모이는 약속 장소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 4번 출구였다. 길 건너편으로 혜화문이 보이더라.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신사들이다. 4시에 바로 출발한다. 모두들 초행길인 고로 성곽마을 표지가 보이는 곳을 따라 걷는다.

 

369마을이라 하는데 뭔진 모르겠다. 나중에 검색해볼 정신은 있겠지.^^

 

마스크 때문이라 핑계를 댄다. 식식 거리며 겨우겨울 올라왔더니 한성대역에서 200미터 왔다고 하는 표지가 보이더라.

 

해발고도 150미터의 낙산 위로 한양도성이 건축되어 있다. 서로 다른 여러 시기에 축성되었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겠다.

 

안내도 등의 자료가 도성 아랫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한양도성을 아껴주세요" 표지판에도 역사가 쌓이고 있다. 

 

성곽탐방로를 즐기는 탐방객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듯.

 

큼지막한 장수마을 표지석.

 

낙산공원을 향하는 탐방객들.

 

멀리 북한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현대 건축물들이 빼곡하다.

 

낙산공원으로 연결되는 성곽의 구멍 통로, '암문'.

 

한양도성 순성길 안내지도. 동대문까지 1.2킬로미터라고 알려준다.

 

낙산공원을 즐기는 탐방객들.

 

낙산공원은 한양도성과 함께한다.

 

저쪽으로 가면 가톨릭대. 이화마을 쪽으로 낙산을 내려간다.

창신동쪽.

 

종로5가쪽. 멀리 보이는 남산의 서울타워.

 

3배 주~움~

 

이화마을, 이화장터.

 

연통 위에 앉은 낚시꾼. 무엇을 낚고 있을꼬?

 

이화마을의 독특한 장식을 한 점포들이 손님을 끌고 있다.

 

멀리 보이는 두타몰. 가까이 보이는 태극기. 주말의 여유를 즐기는 탐방객들.

 

한양도성도 낙산의 고도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내려간다. 낮아진다.

 

두타몰이 일대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다.

 

흥인지문 일대.

 

한양도성박물관.

 

셀피.

 

탐방객 아저씨들.

 

동대문.

 

청계천이다.

 

마전교 아래로 내려간다.

 

건물의 독특한 색상으로 인해 눈에 띤다.

 

 

우와~ 세운상가다~

좋은 비디오 있다고 하면서 사람을 꼬시던 시절이 있었댔더라~

 

청계천로를 따라 주욱~

 

아름다운 청년.

 

기념관.

 

오늘 모임의 목적지였다. 1시간 20분의 가벼운 산책 후에 맛있는 식사로 이어진다. 야으~호!!!

 

보쌈이 대표 메뉴였다. 깔끔하니 맛있다.

그런데 제공되는 소주의 양은 좀 많이 적더라.ㅠ.ㅠ

 

식사하고 나와서 뭔가 한가지 쯤을 더 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헤어졌다. 코로나 시국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 역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1호선 종로3가역.

환승을 하려 하다가 그냥 택시 업계를 조금 도와주면서 오늘 하루의 나들이를 마감하였다.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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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7일. 월요일. 날씨 흐리다. 빗방울이 조금씩 흩날리다.

오랜만에 시내로 외출을 했다. '시내'. 오스트레일리아 맬번을 갔더니 그곳 사람들은 도심 부분을 city라고 부르더라. 서울에 살고 있지만 주변부라 도심쪽은 '시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촌놈이라 그런지도.

창신동에 있는 작은 횟집이 약속 장소. 나간 김에 약속 장소만 바로 갔다 오는 것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싶었다. 마침 낙산공원이 보여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걸으면 3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천천히 걸어서 낙산공원을 지나 약속 장소로 이동하였다.

 

혜화역내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진들도 천천히 하나하나 감상하였다. 철도 사진전. 금상, 은상, 동상을 받은 작품들.

 

혜화역 1번 출구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선다. 낯선 표지, 낯익은 표지. "여성안심귀갓길", 처음 보았다. "막힌 도로", 종종 보는 표지. '여성안심귀갓길'을 지나 '막힌 도로'를 지나서 계속 간다.

 

'막힌 도로' 끝에 낙산 공원을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다. 혜화동 쪽을 한번 뒤돌아 보았다.

한양 도성의 성벽. 그 넘어로 보이는 주택가. 한성대학교도 보인다.

 

드론 비행 금지 구역임을 알리고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관. 멀리 보이는 북악산, 인왕산...

 

낙산 공원 안쪽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객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함께 있음을 즐기는 젊은 커플들이 여럿 보인다.

 

도성을 따라 정비되어 있는 산책로. 한양도성 순성길. 흐리고 바람이 좀 세게 불어 추운 날씨. 간간히 빗방울도...

 

한양도성을 아껴주세요!

 

도성 윗쪽까지 올라오는 노선버스가 있더라. 종점.

 

전망대에서 보이는 도성과 북한산 자락.

 

낙산 공원 주변 창신동 일대의 골목길 탐방안내도.

 

낙산 공원 주변 숭인동 일대의 골목길 탐방안내도.

 

낙산 공원 종합안내도가 안내되어 있다.

 

역사탐방로를 따라 내려가며 도성의 모습을 살펴본다.

 

서울 한양도성은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양도성은 이렇게 한양을 둘러싸고 있었다.

 

도성의 성벽을 구성하고 있는 축성 형태가 여러가지라는 점이 독특하다.

 

축성 시기 및 보수 시기의 성벽 축성 기술이 반영되어 있다. 크게 태조, 세종, 숙종, 순조 때의 네가지 축조 방법이 구별된다고 한다.

 

처음 축성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무너져 내린 구간이 많아 보수의 필요성이 컸을 것이다.

 

한양도성 순성길의 일부 구간을 지났다.

 

순성길 옆으로 도성이 계속 이어진다. 멀리 청계천 변에 위치한 두타몰이 보인다.

 

약속 장소를 찾기 위해 창신동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 옆의 작은 골목 안쪽에 약속 장소가 숨어 있다.

 

원래 30분 거리 정도였는데, 이것 저것 구경하다보니 42분 소요. 2.17킬로미터였다고 알려준다. 56미터에서 142미터 사이의 고도 차이를 이동.

횟집에서 방어 한접시.

나이든 아저씨들 모였다고 당구 한게임.

호프 한잔하고, 10시30분쯤 자리를 파하였다. 

동대문역 주변 귀갓길~

 

1월27일 오후의 낙성공원 구간 한양도성 순성길을 답사했던 이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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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이다. 매년 순성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도성의 원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1902년 지도이다. 한자와 함께 한글로도 지명이 씌여있다. 하지만 그림파일의 해상도가 낮아 작은 글자들은 알아보기가 어렵다.ㅠ.ㅠ

한양과 도성의 옛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

1907년에 제작된 지도이다. 도성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잘 표시되어 있다.

(함께서울 지도전시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당시 남아 있던 도성의 모습은 이러했다.

(한양도성연구소에서 가져옴)

 

한양도성은 새로운 교통수단과 교통로가 도입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원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복원되기는 했지만 상당한 구간은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도성의 일부 구간 답사를 다녀왔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답사객들이 모여 시내버스 5번을 타고 남산을 올랐다. 남측과 북측을 조망하며 도성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이현군 박사('옛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등 수많은 주옥같은 저작물들의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함께 했다.

저자 사인본 득템!!!

 

 

3월25일 오후에 걸어다닌 코오쓰~카메라 아이콘이 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찰칵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동대입구역을 나오면 장충단공원이다. 장충단비.

 

수표교.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홍제동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복개되었던 청계천은 복원되었지만 수표교는 있던 곳으로 돌아가질 못하고 있다. 복원된 청계천에는 엉터리 짝퉁 수표교가 만들어져 있다.

 

튼튼한 돌다리 수표교. 난간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지만...짝퉁은?

 

장충단공원에서 남산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였다. 5번버스.

 

서울시 투어 버스도 올라와 있다.

 

남산공원의 발자국.

 

남산에서 북쪽으로 보다.

서울 도심의 고층건물들. 멀리 북악과 인왕산. 동쪽으로 응봉, 낙산 산자락이 보인다.

 

남산의 명물? 혹은 흉물? 엄청나다......우와~

 

남산봉수대전통문화공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더라.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공연'이라고 하면 좀.....흠....

 

국사당터에서 한양도성의 역사 및 남산에 있었던 시설물들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남산 봉수대터일지도 모르는 곳에 만들어 놓은 조형물.

 

남산 팔각정. 쓸쓸하다. 사드 논란이 있기 전에는 이곳이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주말에는 올라오질 못할 정도였다고 하더라.

 

남산 성곽을 답사한다. 계단을 걸어내려오며 축성의 시기별 특징에 대한 강의 및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중간에 서울 시내가 잘 보이는 곳에 뽀또 뽀인뜨가 있다.

 

잘 보인다. 뽀또~

 

쩌어~쪽으로 남산 한옥마을도 보인다.

 

한양도성 복원 안내. 축성 시기에 따른 형태.

 

애써 이만큼이라도 복원하였다. 망가트리지 말자.

 

남대문으로 향하는 길. 남산육교를 건넌다.

고가도로를 치우고 있다. 멀리 서울역이 보인다.

 

숭례문광장 초입에는 길바닥에 수선전도가 '새겨져' 있다.

 

새로 만든 남대문, 숭례문. 이제 국보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왔으니 셀피 하나 남겨 본다.

 

서소문터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고가차도 아래를 지나야 한다.

횡단보도이다. skid mark라고 하던가? 타이어 자국이 잔뜩 나있다. 사진 오른쪽의 흰색 차량이 이곳에서 유턴하더라. 불법아닌가? 타이어 자국으로 보아 많은 차량들이 같은 불법을 일상적으로 행하는 곳인 것 같다.

 

정동이다. 여러나라의 대사관들이 있다. 그중에서 구러시아공사관터에는.

 

구러시아 공사관이 한국전쟁 중에 폭격으로 파괴되었단다. 그리고 남은 것은 탑 부분. 1890년에 준공된 것으로 사적 제 253호.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었다.

 

러시아공사관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단다. 사진 오른쪽의 깃발이 날리고 있는 탑만 남아 있는 것이다.

(문화유산채널 홈페이지에서 빌려온 사진) 원본 홈페이지 링크~

http://www.k-heritage.tv/brd/board/275/L/CATEGORY/325/menu/251?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325&bbIdx=2453&brdType=R

 

 

강북삼성병원 내에는 경교장이 있다. 1945년부터 1949년 6월 26일까지 백범 김구 선생이 거주하던 곳이다.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저격 당하시던 그날까지...

 

2층 창문에 저격의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월암근린공원. 공원에서 인왕산 방면으로 보면 홍난파 가옥이 보이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행촌동이다. 은행나무 아래에 딜쿠샤가 있다.

 

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 권율 도원수의 집터라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보호수 은행나무 옆에 딜쿠샤가 있다. 문화재로서의 가치, 그리고 이 집의 주인이었던 테일러의 공헌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답사객들.

 

이런 사연이 있는 가옥이다. 

링크 참고~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437498&plink=ORI&cooper=NAVER

 

1923년에 건축되었으니 오래되었다.

 

그래서 위험한 건물이다. 건물은 국유재산이다. 그런데 몇몇 분들이 오래 전부터 거주했단다. 건물이 붕괴 위험에 있으므로 퇴거해야 한다.

 

무단 점유 문제, 건물 복원 등의 문제가 원만하게 잘 해결되길 기대해본다.

 

인왕산의 도성 복원 상황 및 등산로 안내.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멀리 보이는 남산 그리고 탑.

 

셀피 남기기.

 

인왕산의 황금 호랑이. 그리고 그 황금을 지키는 경찰.

 

인왕산 자락의 하나인 수성동 계곡으로 하산하였다.

이곳은 겸재 정선의 작품 '수성동도'에 맞추어 복원한 것이다.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녹지를 조성하였다. 그림과 유사하게 보이려고 석축도 쌓았다. 철거하면서 발견한 돌판을 가져다가 계곡에 걸쳐 놓기도 하였다.

아래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5/01/2015050101921.html?Dep0=twitter&d=2015050101921

 

답사 일정은 수성동에서 마감하였다.

그 아랫동네가 바로 서촌.

 

윤동주 하숙집 터.

 

조금 더 시내 쪽으로 내려오니 식당가가 나온다.

 

연탄 위에 생고기~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 이상 끄읏!

에고 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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