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맨 정신에 모이기로 했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맞추어진 알람 시간에 일어나 개인 정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공도읍의 시가지 구경을 한다.
인력 사무소들이 여럿 눈에 든다.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쪽으로 두 곳의 인력 사무소가 있다. 지나가면서 보니 한 곳에 모여 있는 인력들은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앙 아시아쪽의 나라들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인 것으로 보인다. 옆 사무소 앞에는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이곳 저곳에서 아파트 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등등의 인력이 필요한 곳에 고용되는 사람들일 것으로 추정해본다.
아침 식사를 한 식당. 동태찌개를 먹었다. 깔끔하다. 시원하다.
옆자리에서 술은 매일 먹어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펼치며 순식간에 소주 두 병을 치운 팀이 기억나며, 저 짝에서 둘이 앉아 삼겹살 4인분에 소주 몇 병을 치우고 아침부터 노래방을 찾으러 나선 중국 아저씨 둘도 기억에 남는다.
공도읍의 아파트 건설 현장.
(구)한독목장, (현)안성NH팜랜드에서 일요일의 첫 답사를 시작한다. 웅교리. 드론 추락이 많은가보다. 오죽했으면 이런 판떼기를 만들어놓았을까. 하지 말라는 것은 그냥 하지 말자~~~
넓은 노지에 이렇게 초지가 조성된 모습은 한반도에서 흔치 않은 풍경이다.
팜랜드가 멀리 보인다.
안개 속에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부러운 사람.
자리 잡고, 바닥에 지도를 깔고 4월21일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아 치웠다 펼쳤다를 여러번 했다.
바닥에 깔아놓은 기복면도를 무심히 바라보던 할아버지.....ㅠ.ㅠ
초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원치 않는 잡초밭도 보인다. 옆에 있던 아저씨가 와서 외래종 잡초로 인한 초지 관리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주셨다.
지금은 안성팜랜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원래는 한독목장이라 했다. 1964년 박정희 전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고,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1967년에 답방했을 때 경제협력 회담을 통해 낙농시범농장 건설과 젖소 200마리 구매 차관을 유치하여 1969년10월11일 '한독낙농시범목장'(안성목장)을 준공하였다. 준공 직후에는 낙농 관련 기술이 없어 독일의 기술자들이 운영하다가 1971년 농협에 운영권이 이관되었다.
2012년4월21일 농협 안성목장은 농업과 축산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파크인 안성팜랜드로 탈바꿈하였다. 농협카드를 사용하면 입장료가 할인된다는 정보가 있다.
평택으로 이동하였다. 평택역사유적공원에서 주변 지역을 조망하고 대동법시행기념비를 보고 배다리도서관 옥상에서 소사벌 개발 지역을 조망하였다. 평택역에 위치한 AK플라자 옥상에서 구시가지 일대를 조망하고 공세리로 이동하였다.
평택 역사유적공원.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
야트막한 구릉이지만 그래도 저평한 지대에 있기 때문에 주변 지역을 조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안개와 미세먼지가 시야를 제한한다.
평택은 신도시 입지 및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개발 호재로 인해 부동산이 들썩인다. 역사유적공원 주변도 모두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다.
아파트 단지 이름이 낯익다. 눈에 든다. 마음에 든다. 참되도다.^^
역사유적공원 인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인 대동법 시행 기념비가 위치한다.
영의정 김육의 대동법 시행 공적비. 비닐로 싸여 있다.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창 개발이 진행중인 소사벌 지구를 찾았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에 적당한 곳으로 배다리 도서관을 찾았다. 인솔을 맡아준 한국교원대 조헌 교수님의 사전 작업이 있었다. 개방하고 있지 않은 옥상의 자물쇠를 열 수 있었다.
배다리 도서관 옥상의 답사대원들. 조촐하다.
배다리 저수지와 주변의 개발 지구.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 그리고 상가. 그리고 배다리 저수지 주변의 공원.
평택은 개발 호재가 많아 인구 유입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덕 삼성전자를 비롯해 진위 LG공장, 주한 미군기지의 이전 등으로 고용 창출 효과가 더해지면서 평택 인구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어제에 비해 오늘의 일정은 여유가 있다. 점심을 이른 시간에 해결할 수 있었다. 전국 체인점의 식당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오후 답사의 시작이다. 평택역으로 이동하였다.
역사에 상가에 붙어 있다. AK플라자. 옥상으로 올라간다.
AK플라자 옥상.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주변을 전망할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참 많이 보인다. 많은 쪽이 외국인, 적은 쪽이 답사대원들.
역사 바로 앞에서 방사상으로 조성된 가로망을 확인할 수 있다.
구시가지의 낮은 건물들.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은 신시가지이다.
경기 남부 지역의 과거의 중심지는 안성이었으나 강점기에 도입된 새로운 교통 수단이 철도가 부설되면서 평택으로 중심 기능이 이전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규 소속의 성당인 공세리 성당.
1895년6월 양촌성당(구 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하여 청주, 옥천 등 39개 고을)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조창이 있었던 때문인지 아직도 주변에 야트막한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공부하자.
공세리 성당은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받던 시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숨어서 신앙 생활을 하던 시절에서 교회를 보여줄 수 있는 시기로 바뀌는 때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높은 곳의 잘 보이는 곳에 근사한 건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산만 방조제를 건너 경기도 평택으로 넘어간다.
마지막 답사 지점인 평택항 마린센터.
전망 뽀인트에 서자마자 잡은 사진. 서해대교.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이쪽에서 사진으로 잡아보고 싶었었다. 원을 이루었다.
평택항에 인접한 공단. 서해안 시대를 열겠다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던 곳.
평택항의 배후 시설. 바로 아래에 석재가 잔뜩 야적되어 있다. 대주석재. 그 뒤로 보이는 깔끔한 건물은 평택세관.
평택항 마린센터 주차장에서 보이는 서해대교. 오후 4시반. 1박2일의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서울, 강원도, 대전, 경상남도에서 모인 인원들이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아지트를 향해 헤어졌다.
답사차량 1호에 의지하여 서울고속터미널 역까지 날았다. 그리고 지하철 7호선. 힘들었더라.ㅎㅎ
그렇게 1박2일이 마무리.
다음 답사에 또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죽주산성 아래의 성은사 앞에 걸려 있던 등.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안이 깆들기를....
- 해안에 인근한 침식평야를 구성하는 지형요소들이 일련의 패턴을 보이고 있어 대지와 인간의 진화과정을 파악하기에 유리함(Cf. 호남평야)
⇒ 안성 비봉정, 평택 역사유적공원 및 평택역, 공세리 성당과 평택항
(2) 감조권대 퇴적평야의 발달
-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징을 반영하는 하천 및 해안환경
- 하천 하류구간: 감조권을 따라 충적층과 갯벌층이 혼합된 저습지의 발달
⇒ 안성천 중·하류 일대(후평리 안성천+한천 합류점)
2. 인문지리적 관점
가. 지형환경에 맞물리는 인문의 대상구조
(1) 전통 구읍으로 성장해온 산록 및 구릉대의 안성
- 안성맞춤으로 유명한 유기 생산지
- 주요 구읍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려는 전통 도시
⇒ 안성향교, 비봉정 조망, 안성맞춤박물관, 안성 구시가지
(2) 근현대의 역동적인 공간, 저습지와 해안지대의 평택
- 일제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온 근대도시
- 수도권 남부의 핫스팟, 평택: 고덕신도시 삼성전자를 비롯한 여러 산업단지 입지, 팽성 미군기지, 평택항, 아산만권 종합개발계획 등 대도시권과 인천항을 보완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발전 가능성 농후
⇒ 소사벌지구(계획 신도시; 배다리저수지)
나. 네트워크 체계의 변화에 따른 지역구조의 변화
(1) 안성시대
- 과거 한양 이남의 간선과 지선이 만나는 교차로, 안성
- 남북축: 한양과 영남로, 호남로를 잇는 간선도로의 길목
- 동서축: 아산만과 중부 내륙지방(이천-여주-원주 일대)으로 이어지는 지선도로의 길목
⇒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죽주산성
⇒ 구한말 천주교 전파의 교두보, 아산만 일대(공세리 성당), 미리내 성당
(2) 평택시대
- 근대 철도교통의 발달로 시작된 평택역 일대 신흥취락
⇒ 평택역(Ak 플라자 조망), 평택 신시가지(역사유적공원 조망)
- 현대 광역수도권과 지방을 잇는 그물망 고속도로 및 국도의 발달
- 수도권의 분산을 직접적으로 수용하는 공간으로서, 저습지와 해안을 따라 다양한 수용기능 입지(산업단지, 항만, 미군기지 등)
⇒ 평택항
작성 -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조 헌 박사
1224번 버스 - 지하철 7호선 - 분당선 - 3호선으로 갈아타면서 대청역에 도착하였다. 중동고 교문 앞에 주차하고 기다리던 1호 차량에 탑승. 알던 사람 모르던 사람들이 모여 출발한다. 생각보다 탑승자가 적다. 신청자가 꽤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나중에 알게 되었다. 신청자가 많았지만, 취소자도 많았다고...)
답사 주관 업체 마크. 지오트립.
죽주산성 아래 자리잡은 성은사 앞 주차장까지 달렸다. 답사 차량이 세 대가 움직였지만 사람 수는 참 적었다. 아기자기한 답사가 되었다. 죽주산성에서 주변 지형과 지세를 살피고 강의를 들었다.
안성천 주변의 추억의 거리 - 비봉정 - 미리내 성지 - 안성맞춤박물관의 일정을 소화하고 공도읍에 위치한 성지모텔에서 하룻밤을 신세졌다.
다음 날 오전에 (구)한독목장, (현)NH팜랜드 - 평택역사공원 - 대동법시행기념탑 - 배다리도서관 조망 - 평택역 - 공세리 성당 - 평택항 마린센터까지 답사를 진행하고 해산하였다. 해산할 때 진행자 및 인솔자 제외 순수 답사 참가자는 네 명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화장실에 재밌는 문구가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일죽 요금소에서 빠져 나왔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안내지도에 표시된 "현위치"가 현 위치이다.
죽주산성은 고려시대 영남길의 중요 뽀인트였다는 설명이 나온다.
주차장에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일행을 기다린다.
아담한 사찰 성은사로 올라가는 꽃길.
봄이다. 도처에 핀 꽃.
꽃구경을 하다보면 시간은 그냥 흐른다~
답사 차량이 모두 도착했다. 전체 인원이 아담하다.ㅠ.
주차장에서 죽주산성으로 오른다. 금방 올라간다. 작은 산의 산성.
산성 내부의 지세와 시설 배치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답사대원들.
작은 분지를 둘러싼 작은 산성이다. 작년에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냥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다.
벚꽃이 활짝 피었다.
꽃잎이 날려 꽃길을 만들고 있다.
몽골 침략을 막아낸 영웅 송문주 장군을 기리는 영각이 저 위에 있다.
급경사 사면 위에 산성이 축조되었다. 곳곳에 보수 공사가 이루어진 흔적이 보인다. 산성을 따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기도 한다.
죽주산성에서의 조망. 멀리 안성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인다. 동쪽으로는 진천으로 이어지는 중부고속도로가 멀리 보인다.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죽산분지의 여러 곳에 비닐하우스가 조성되어 있다. 한 때는 비닐하우스만 보이면 근교 농촌이요 원예농업을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다. 전국에 비닐하우스가 깔리고, 온갖 다양한 작물 등이 키워지는 곳이니...
서해안에서 안성천 유역을 따라 이어지는 바람길의 영향이라고 한다. 안정적인 수분 공급이 가능하여 초지대 조성이 가능했었다고. 그래서 인근에 목장이 많은 것이라고.
죽주산성 내부의 작은 분지는 마치 돌리네 지형을 보는 듯 하다.
두번째 답사지인 안성 시내로 이동한다.
안성천 변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추억의 거리를 거쳐 낙원역사공원 인근까지 답사하였다. 안성의 유명 메뉴인 것 같다. 장터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비봉정에 올라 안성평야 일대를 조망하였다. 그리고 미리내 성지로 이동했다.
전통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안성시. 조선시대의 시장 분포도를 보면 안성의 중심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2일과 7일에 안성에 5일장이 섰다.
교통의 요지로서 성장하였지만 강점기 이후 주요 교통로가 안성에서 멀어지면서 개발의 중심축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과거의 모습을 되살려 장소 마케팅의 소재로 삼으려는 노력이 아닌가 한다. "추억의 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 것인가 사람의 그림자가 잘 안보인다.
우전대장간.
대장간으로서의 기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작업실.
대장간에서 직접 만들어 판대하는 농기구들. 어렸을 때 보던 것들.^^
신창정미소.
연탄 가게.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 보인다.
안성낙원역사공원 안내판.
안성의 성쇠 및 도시구조 변화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함께 갖고 있는 답사대원들.
깔끔하게 보이는 안성1동 주민센터.
1928년에 만들어진 안성군청 건물이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듬뿍 묻어 있는 중앙정미소.
점심 시간이 늘 그렇듯이 많이 늦어졌다. 식당 예약 시간을 뒤로 늦추는 전화를 여러번 했다.^^
안성의 시장 기능이 흥했던 시절부터 유명했던 음식이라고 한다. 맛있다.
점심 식사후의 답사 일정을 시작했다. 먼저 안성향교를 찾았다.
안성향교를 지나 약수사 앞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탐방로를 오른다. 가벼운 산책길.
비봉정이다.
비봉정에서 안성평야 일대를 조망하면서...
안성천 유역 분지의 지형 발달 특색에 대해 심도깊은 공부를 하였다. 아산만으로부터 이어지는 바람길, 그리고 그로 인한 지형 발달 및 식생 경관, 인간 생활 환경 등의 연관성을 파악해 보았다.
비봉정에서 주변의 관찰하는 답사대원들.
서쪽으로 멀리 진득한 미세먼지 속으로 공도읍이 보인다. 흐릿한 고층 아파트들.
인솔자인 조헌 박사가 준비한 안성-평택 일대의 기복면도와 답사 일정이다. 답사 지역의 대략적인 지형 기복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다음 답사지인 미리내 성지로....
시궁산과 쌍령산 사이를 흘러내리는 진위천 주위에 박해를 피해 들어와 점점이 흩어져 살던 천주교우들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시냇물과 어우러져 보석처럼 비추이고, 그것이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와 같다고 해서 미리내란 이름이 붙여졌다.
미리내 성지 안내도.
천주교의 도래 역사 과정에 대한 탐구 학습 중인 답사대원들.
성 김대건 신부 묘.
약속했던 시간이 많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신 해설사님과 함께.. 그리고 남사장님은...
급한 우환이 생겨 혼자 먼저 발길을 재촉하였다. 103위 시성 기념 성당.
화장실 표지판이 아주 큼직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만났던 곳중 가장 크다. 좋다.^^
성 요셉 성당.
안성맞춤박물관.
안성유기는 조선후기 발달된 안성의 교통로와 이를 토대로 큰 장으로 성장한 안성장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된 상품이었다. 왕실유기를 제작하는 장인들의 善手匠人 명성 획득과 함께 "안성맞춤"이라 명명되며 전국적인 최고의 유기 상품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식민지배 과정에서 새로운 교통 체계인 철도 노선에서 빗겨나고, 밀려드는 외래 문품에 의해 대타격을 받아 쇠퇴하게 되었다.
그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곳이 이곳 안성맞춤박물관이다.
이곳에서도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고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해설사분께서 기다려주셨다. 감사드린다.
이곳에서 세 분이 서울로.....가시고 남은 사람들은 남았다. 고맨 고, 이즈맨 이즈.
오늘의 숙소는 공도읍에 위치한 곳이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방 매진~
저녁은 닭매운탕으로. 대짜로 달라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다 먹지 못할 것이라면서 중짜로 충분하다고 중짜로 주셨다. 거참, 장사 이상하게 한다.^^
3월23일이 다가오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지오트립 카페에서 답사 신청을 하긴 했는데, 조사해보니 그곳까지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차를 이용하면 되긴 하는데, 그것을 피하고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려 하니 난감했다. 네이버 사이트에서 길찾기 검색을 하니 버스 노선만 보여주었다. 세시간이 넘는다. 다음 사이트에서 다시 검색해보았다. 지하철 노선을 포함시키니 시간이 줄어든다. 그런데 여러번 환승을 해야 한다. 버스 두번, 지하철 세번을 타고 갔다.
날씨기 좋지 않았다. 쌀쌀했다.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파카를 입고 출발한다. 집앞 사거리를 지나면서 보니 파카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다행이다.^^
8호선 지하철 산성역에서 남팀장을 만났다. 같이 내려 버스를 탔다. 토요일에만 운행하는 버스이다. 9-1번 버스.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우중충하더니 짓눈개비를 내리다가 눈으로 바뀐다.
산성역에서 출발한 버스 안에서 GPS tracker를 사용해보았다. 산성터널 부근에 남한산성의 남문이 위치한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남문주차장에서 하차하였다. 눈이 본격적으로 마구마구 쏟아진다. 너무너무 반가운 눈이다. 3월말에 만나는 눈이라니!!!
온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있다.
시커먼 하얀 머리 아저씨의 셀피를 만들어본다.
오늘 답사 참가자들의 접선장소. 방문자센터.
여러 나라 말로 환영한다는 인사말이...
주변은 모두 눈으로 덮이고 있다. 행궁도...
만남의 광장도...
버스 정류장도...
남문주차장에 주차된 차들도...
답사대원들에게 공급할 생수를 들고오는 남팀장...아니 남사장도...
하늘도...
돌담도...
오랜 만에 보아서 그런가 내린 눈이 너무나 탐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던 눈이 또 갑자기 그치려 한다. 당황스럽다.
하얗게 변한 세상, 사람들이 나와 놀기 시작한다.
아...눈이 그쳐 버렸다. 눈이 계속 내려야 오늘의 답사를 대충 취소하는 쪽으로 하면서 도처에 깔린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 대낮부터 거시기 하려던 마음 속의 계획이 산산히 부서진다.
눈이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햇볕까지 들기 시작한다. 아......
남한산성 탐방로 1코스를 계획했었다고 하는데, 2코스로 변경하여 출발한다.
이동 경로를 기록으로 남겨보았다. 카메라 아이콘 깔린 포인트들이 사진 촬영한 장소들...
남한산성의 옛지도. 산성을 따라 남문, 서문, 북문, 동문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북문에서 남북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거의 그대로 오늘날에도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행궁, 객사인 인화관 등을 옛지도에서 확인하고 직접 위치를 찾아보았다. 인화관은 문을 닫아 놓아 내부를 들어가볼 수 없었다.
대동여지도를 통해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와 일대를 정리하였다.
옛지도를 통해 과거의 살피고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하였다. 최근에 나온 영화 이야기가 들어가 더 흥미가 있었지 않나 싶다.
답사를 시작하자. 종각을 먼저 지난다.
남한산성 종각의 천흥사 동종이라는 안내판이 옆에 있다.
종각 옆의 등산? 탐방 코스를 따라 산을 오른다. 계단이다.
아담한 건물. 침괘정이라고 한다.
침괘정 안내판.
이런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깔끔하게...
뒤쳐진 사람들을 기다려 다시 출발한다. 기다려준 고마운 분들...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바로 녹는다. 빗물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준비한 우산들을 펴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나는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귀찮아 그냥 쏟아지는 눈녹은 물을 맞으며 간다.
의병 활동과 독립투쟁의 중심지, 남한산성.
사적 제57호 남한산성.
남한산성 탐방로 2코스를 따라 올라 능선 위로 오른다. 다시 날리는 눈발.
탐방객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해주는 분들
수고하시는 분들이 이용하는 꼬맹이 차량. 전기 차이다. 아마도...
공도에는 나갈 수 없는 차량. 번호판이 없으니까..
눈발 속으로 보인다.
수어장대와 청량당
청량산 높은 곳으로 올라와서 기온이 낮아져서 눈이 내리고 싶어져서...
눈발 속의 수어장대
옛날 모습을 담은 옛날 사진
안내판
수어장대 앞에서 남겨보는 셀피
그리고 단체 사진.
수어장대 앞을 지나는 핑크~
한쪽 구석에 있는 돌말뚝. "리대통령각하행사기념식수"
말뚝 보는 사이에 또 세상이 변했다. 맑은 하늘~
수어장대를 나서서 서문쪽으로 향한다. 핑크 양산은 남한산성이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핑크 양산의 주인은 "옛지도와 함께 걷는 도성" 등등으로 유명한 이현군 박사이다. 오늘의 답사를 인솔하였다.
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가 이루어지는 뽀인트는 항상 화장실이다. 탐방로 2코스와 1코스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 앞에 있는 사설 매점.
주최측에서 먹어보라고 해서 한 컵 잡았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종이컵 하나 만큼을 주고 2천원을 받더란다.
서문쪽에서 보이는 서울의 모습. 저 말뚝의 정체는?
병암 부근에 사설 매점이 또 있다. 여기선 막걸리, 컵라면 등을 판매한다. 막걸리 한통 가격이 뻔데기 한 컵 가격과 같다. 뻔데기 괜히 먹었다... 안주 무료...
헌데 바로 옆에 있는 이 플래카드는 뭐지???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것이라 관심도 없지만...
서문을 지나 연주봉옹성을 향한다.
저 멀리 수어장대가 보인다.
하남시 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북풍을 따라 구름이 계속 만들어진다. 능선을 따라 축성된 성벽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고 했는데, 구름이 시야를 계속 막고 있다.
이곳에서도 서울 쪽의 조망은 그렇게 좋지 아니하다. 하늘이 맑을 때 다시 보아야 할 듯 하다.
유네스크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보수 공사를 하였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다시 공사를 필요로 하는가 보다.
남한산성의 북문이다.
이름은 전승문이다. 전승하고 싶어 이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전승문, 북문에서 산성 로타리 방면으로 하산하였다.
그리고 남한산 초등학교 옆에 있는 연무관으로 향하였다. 이런 곳이다.
인솔자와 답사객들.
연무관의 상태가 이러했단다.
이렇게 복원해 놓았다. 근사하지만 썰렁하다.
그리고 연무관 앞에 5일장 장터가 있었다고 이런 표지석을...
이런 안내판을...
그리고 그 앞에 파출소도 있다.
산성리의 요충지인 남문 로터리.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저 버스가 끝어지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7시반까지 운행한다고 했다.
종각 주변의 눈이 모두 녹았다. 눈이 내렸다는 물증이 없다.
산성리에 있는 행궁.
행궁을 방문해보기로 한다. 경기도민은 입장료 무료!
행궁의 입구인 한남루.
행궁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른다. 행궁이 경사지에 건축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통일신라 건물지라고 되어 있다. 그런가부다 한다.
내행전.
복원 상태가 상당히 현대적이라 눈에 어색하지 않다???
계획되었던 대로 5시에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바쁘신 분들은 먼저 산성리를 탈출하시고, 조금 덜 바쁜 사람들은 행궁이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곳에서 저녁을 같이하였다.
저녁을 같이 하고도 조금 아쉬운 사람들 몇몇이 야탑역 주변에서 한 차수를 더 채웠다. 전주에서 오신 분이 있어 버스 터미널 부근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 세번을 타고 내렸더니 눈에 익은 곳이 나타난다. 하계역인 것 같다. 또 버스 한번을 더 타야 한다.
뭐 그렇게 토요일 오후를 이용한 남한산성에 내리는 눈을 맞아보기 체험을 마무리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남한산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www.gg.go.kr/namhansansung-2 사이트를 참고하면 된다~~~ㅎㅎ
여러 코스를 고민하다가 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1224번 버스로 하계역까지 이동하여 172번 버스로 환승하였다. 하계역에서 상암동까지 왕복하는 버스다. 조계사 앞에서 내려서 집합장소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걸었다.
그리고 네시간 반을 걸었다. 허리가 아파 힘들었다.ㅠ.ㅠ
종로3가역 부근에 위치한 피맛골에 숨어 있는 삼해집에서 마무리를 하고 헤어졌다.
지하철1호선을 이용하여 종로3가역에서 창동역까지 이동, 1142번 버스로 환승하여 귀가하였다.
이렇게 돌아다녔다.
9월15일의 코스.
조계사 앞에서 172번 버스 하차. 대한민국역사박물관까지 걸었다.
육조거리를 지나 청계광장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 이동. 모전교 - 광통교 - 장통교 - 삼일교를 지나 탑골공원에서 10분간 휴식하며 정비. 개관한지 며칠 되지 않은 싱싱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들러 풍문여고 - 덕성여고 - 정독도서관 - 북촌한옥마을까지. 그리고 뒷풀이 장소로 점찍어 둔 종로3가의 삼해집까지 또 걸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대더니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지리' 쪽은 아무 것도 없는데, '역사' 쪽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갖고 있다. 부럽다.
엘리베이터에서 8층을 누른다.
포토 존, 사진찍기 좋은 곳에 선다.
일단 셀피부터 만들어두고 시작한다.
경복궁과 무악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 입장료가 무료~
광화문 앞의 세종로에 행사가 한창이다. '실패박람회'란다.
세종문화회관도 잘 있는 것 같다.
1987년 쯤인가? 그때 한번 들어가본 것 같다.
의정부가 있었던 터라고 한다. 발굴작업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의 인솔자 이현군 박사는 다음 번에 저 뒤에 멀리 보이는 능선을 따라 걷는 답사를 제안한다. ㅎㅎ
옛지도와 함께 하는 조선의 중심부 탐구~~~
오늘의 답사 참가자들 인증 사진.
이제 걷기 답사를 시작한다.
교보문고 건물 앞에 있다. 고종 황제의 여러 가지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라고 써 있다.
서울 도심의 주말은 시끄럽다. 참 시끄럽다.
청계 광장에 소라가 서 있다.
푸드 트럭도 서 있다.
요상하게 생긴 소라 아랫 쪽에 써 있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 뭔 도깨비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밤에 와보아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현군 박사는 부지런히 답사객들에게 지혜를 흘리고 있다. 알아서 챙겨가야 한다.^^
옛지도와 함께 하는 답사이니 옛지도 하나 떨구어놓자. 구글에서 검색한 이미지이다. 수선총도.
서울 중심부를 흘렀던 하천이 청계천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지도이다. 청계천은 경복궁의 동쪽과 서쪽을 흐르던 두 하천이 모여서 흘렀었다. 옛날에는...
복원된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 수돗물이 쏟아지는 곳. 수돗물을 끌어다 쏟아붓는 것이다. 소량의 지하수도 추가된다. 물을 끌어다 쏟아붓기 위해 전기료 등 운영비로 1년에 75~80억 정도를 사용하는 것 같다. 수돗물 값은?
줄줄 잘 흘러간다. 내가 낸 세금이...
모전교는 부근에 과일가게들이 있었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쏟아진드아~~~~~~~~~~~~
광통교 아래.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을 옮기면서 옛 터의 병풍석 등을 가져다가 석교의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근사한 장식이 된 석재가 중간 중간에 보이는 것이다.
광통방 아래에 위치하여 광통교 혹은 광교라 불리웠다.
경진지평. 경진년에 땅을 평평하는 공사를 했나부다.
계사경준. 계사년에 다시 또 준설을 했나부다.
다리 아래 석재의 틈새에 집을 마련한 생명체. 아래 쪽에는 비둘기 똥이 잔뜩 떨어져 있다. 지날 때 조심~
청계천은 좁은 물길이다. 집중호우가 내려 수위가 급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알아서 잘 도망가야 한다. 그러한 대피 방법 중의 하나.
수선전도와 함께 하는 서울 나들이.
이현군 박사의 강의를 몰래 청강하는 왜가리.
산책 중인 조손.
지난 번에 왔을 때보다 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어 놀랐다. 여기서 지난 번이라 함은...저런 나무들이 없었던 시절을 의미한다. 오랜 만에 왔다.^^
삼일교 아래. 불, 꽃길.
옆에 물길이 있고 폭우로 빗물이 과하게 유입되면 청계천 쪽의 수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여. 물론 대피하라는 경고 방송을 먼저 할 것이고. 그런데 그런 방송의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후일 한강에서 발견될 것이다.
곳곳에 수문이 숨어 있다.
반대편에도 있다. 대피하라는 경고가 나오면 대피해야 한다. 존버하지 말자.
수표교터 표지판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청계천 복구 공사를 하면서 하천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게 만들어 장충단 공원에 있던 수표교를 원위치로 옮기질 못하고 있다고 한다.(먼젓번의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아주신 김석용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시작하면서 철거하였다가 1965년 장충단 공원 입구의 현 위치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장충단 공원 입구에 옮겨져 있는 수표교.
(2017년 3월 25일 촬영)
수표교 터가 있던 곳에서 메기들이 그 때를 추억하고 있다.
이곳에서 청계천과 헤어진다.
청계천과 교감하고 있는 지오트립, 지리로트래블, 지오이미지, 월배닷컴의 남호석 대표이사.
수표로.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빗방울 하나 두울 세엣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냥 간다. 왜? 우산이 없다.
육의전빌딩.
육의전빌딩 앞에 있는 경시서터 표지석.
탑골공원. 앞으로 자주 와야 할 것 같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답사코스에 탑골공원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 화장실.
원각사지 10층석탑. 유리관 안에 모셔져 있다.
탑골공원의 중심, 팔각정.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객들.
선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은 헤어~
탑골공원과 주변의 역사에 대한 강의중. 주변에 요정이 많았고, 한잔하면 악단을 불렀고, 그래서 악기 수요가 있었고, 그래서 인근에 낙원악기 상가가 성업하게 되었고, 공원 북쪽에 있는 유진식당이 맛집이고, 등등등...
어제 바에서 모신 보드카가 나의 아침을 힘들게 했다. 처음으로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정해놓았던 알람 시간 보다 늦게 일어났다.
6시에 알람을 설정했었는데, 7시 넘어 일어났다.
호텔 건물 배치가 ㅁ자 모양이다.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10시에 출발한다고 하였으니 여유가 넘친다. 천천히 짐정리를 하고 버릴 것 버리고 버리고 버린다.
오늘은 트빌리시 시내 이곳 저곳을 탐방한다. 나리칼라 요새를 들러보고, 점심 식사를 하고 트빌리시를 벗어나 므츠헤타로 갔다가 다시 트빌리시 탐방을 이어간다. 그리고 출국~
9시35분에 로비로 내려왔다. 호텔 밖 거리를 잠시 나가본다.
쇼타 루스타벨리 거리.
쇼타 루스타벨리는 타마르 여왕 시절 대문호였던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루스타벨리 거리는 트빌리시에서 볼거리, 먹거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루스타벨리 동상이 있는 곳에서 자유 광장까지 이어지는 도로 양측에는 19세기의 건물들이 즐비한데, 이 건물들은 박물관, 미술관, 극징과 의회, 관공서 건물들로 이용되고 있으며, 마치 역사 깊은 유럽 도시를 보는 것 같게 한다고 자료집에 설명되어 있다.
메리엇 트빌리시 호텔. 묵직한 석조.
이 동네 자동차 번호는 진짜 뭔가 있는 것 같다. 킁~
9시59분. 탑승 완료, 출발한다.
10시4분. 호텔 부근이라 금방 도착했다. freedom square 자유 광장. 성 조지아 상이 있는 곳이다.
성 조지아는 황금빛으로 빛날 때, 나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
10시11분. 나리칼라 요새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주차장 도착.
케이블카 탑승대. 줄을 주욱 선다.
쿠라 강의 건너편 언덕위로 보이는 요새, 나리칼라 Narikala fortress.
요새 옆쪽으로 언덕위에서 트빌리시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조지아의 어머니.
연인들의 뽀토 뽀인트. 의자 뒤의 내용은 사랑을 축원하는 내용일 것이다. 아님 말고!
10시36분. 탑승. 요런 작은 차를 타고 올라간다. 최대 8인까지 가능하다. 동양인의 경우. 저쪽 덩치들은 6인까지!
전임 '친미' 대통령이 트빌리시에 만들어 놓은 것들. 유리를 참 좋아 했나보다. 쿠라강의 유리로 덮인 다리, 평화의 다리라고 불린다. 트빌리시에서 도보로만 건너는 다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하나 만들자 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앞쪽에 있는 요상한 모양의 전위적인 물건은 콘서트홀이라고 한다. 친미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건설 중단된 물건이다. 콘서트 홀이라고 한다.
그 위의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대통령궁. 역시 유리 덕후! 돔 모양의 지붕이 유리.
트빌리시 성 트리니티 대성당도 두드러지게 눈에 띤다.
진짜 대성당이다.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성당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전에는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가장 높았는데...
쿠라 강변의 절벽 위에 Statue of King Vakhtang Gorgasali. 그리고 Metekhi St. Virgin Church.
앞쪽의 다리는 Metekhi Bridge.
조지아의 어머니.
Public Service Hall은 모양이 특이하여 어디서나 눈에 띤다. 시민들의 모든 민원 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해주는 곳.
삼성동의 무역센터 비슷하게 생긴 밀레니엄 호텔, 그리고 그 앞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 조지아 상.
조지아의 어머니 상의 뒷모습. 왼손에 와인잔(크기도 하다.)을 오른손에 칼을 들었다(무서운 엄마.).
좋은 뜻을 갖고 오는 손님은 와인으로 죽여주고(?), 나쁜 뜻을 갖고 오는 침략자는 칼로 죽여준다!
앞 쪽은 절벽이라 접근 불가.
쿠라 강이 지나는 트빌리시 시내 경관.
10시57분. Narikala 요새 쪽으로 이동한다. 줄지어 천천히 천천히.
나리칼라 요새는 4세기 경 페르시아 인들이 짓기 시작했고, 8세기경 아랍족장이 궁을 지으면서 완성되었다. Narikala는 '튼튼한 요새'를 의미한다고 한다. 상부 요새와 하부 요새로 되어 있고 조망이 뛰어나 트빌리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아래쪽으로 바크탕 고가살리 왕의 동상과 옆의 교회가 가까이 보인다.
성벽에서 인증 사진 만들기.
(무엇이 부끄럽다고 스티커로 가리라 하시나....)
멋쟁이 블라디미르 박.
11시6분. 언덕길을 내려간다. 올라올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했지만 내려갈 때는 걸어서 내려간다.
벽을 따라 올라가는 덩쿨이 등나무가 아니다. 포도나무다. 포도도 달려 있다.^^
11시19분. 나리칼라 요새 아래쪽의 유황 온천장. 온천 때문에 트빌리시 생겼고, 트빌리시라는 지명이 '따뜻한 곳'을 뜻한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6세기경 이베리아의 고가살리 왕께서 매사냥을 하면서 이쪽까지 납시셨는데, 매에 잡힌 다 죽어가던 꿩이 이곳의 물을 마시더니 푸드덕 거리며 날아서 도망갔다고........
이것을 보고 감탄한 왕께서 온천 주위의 나무를 베어버리고 트빌리시를 세웠다고 한다.
쿠라강변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동상의 주인공. 바크탕 고가살리 왕. 이 아저씨가 트빌리시를 세웠단다. 그래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매사냥이나 다니던 사람인데...
이후 트빌리시의 온천장은 크게 늘어난다. 13세기에는 63개 정도의 온천장이 있었을 정도라고. 이후 점차 줄어들어 트빌리시를 여행한 러시아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10개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정도의 숫자가 남아 있고.
골짜기 저 윗쪽에 있는 파란 타일 건물이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유황 온천장이라 한다.
이런 판떼기가 붙어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이...1829년 6월27일에...했단다.
트빌리시 온천장의 특징으로는 가족탕이 있어 가족이 함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온천 체험을 희망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위한 예약이 이루어졌다.
11시28분. 큰 길가로 나와 버스에 탑승하였다.
대통령궁이 가까이 보인다.
11시46분. 서울식당에 도착하였다.
주택가에 위치한다. 레스토랑 서울.
김치찌개, 돼지고기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밥공기 하나 더 추가해 먹었고.
소주 한 병 딱 시켜 먹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옆지기의 만류에 뜻을 접었다.
12시43분.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선다.
트빌리시 북쪽에 위치한 므츠헤타로 갔다. 즈바리 수도원과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엘 들렀다.
1시13분. Jvari 십자가 교회 도착. 즈바리가 '십자가'란 뜻이다.
중세에는 교회 주변에 성벽과 요새를 세웠었다고 한다. 그것의 파괴된 흔적들이 남아 있다.
므츠헤타 십자가 교회는 조지아 건축의 기념비적 작품이며, 코카서스 지방의 기독교 순례자들의 종교 성지이다. 4세기에 교회가 건축되었는데, 성 니노에 의해 조지아 왕 미리안 3세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기념하여 이곳에 십자가를 세웠다. (이하 생략)
경치가 좋다. 인증 사진 찍는 뽀인트. 두 강의 물색이 다를 때가 많다는데 오늘은 그놈이 그놈이다.
쿠라 강의 흐름을 막고 있는 댐. Zahesi 수력 발전소이다.
Zahesi 댐의 수력 발전소는 조지아에 최초로 건설된 수력발전소이다. 1927년에 건설되었다.
Kura강과 Aragvi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Aragvi강을 따라 북상하면 카즈베기가 나온다. 카즈베기? 가본 것 같다.^^
즈바리 수도원에서 보인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마을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
십자가 교회 안의 십자가.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 585~604년 카르틀리의 공장 스테파노츠 1세가 십자가가 있던 자리에 수도원을 세운 것이 지금의 수도원이다.
조지아의 성당 중에서 6세기의 건축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즈바리 수도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웨딩 촬영 나온 팀. 일요일이었다.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예쁘구나.
조지아 물장수.
항상 물을 많이 마시는 습관이 들어 있다. 해외 여행을 할 경우 버스에서 장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때 생수를 하루에 한 병이나 이런 식으로 주면 난 죽는다. 다행히 이번 여행팀도 생수는 얼마든지 마시라고 하여 다행이었다. 열심히 마셨다.
1시34분. 출발.
므츠헤타 산 정상에 자리잡은 즈바리 수도원. 높은 곳에 위치하여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인다.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에서 본 모습.
1시52분.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1시53분. 버스에서 내려 UNESCO 세계문화유산 동네 골목길을 걸어간다.
성당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에 관광객 상대 노점상들도 있다. 번잡스럽지는 않다.
이쪽에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저쪽 산위에 즈바리 수도원.
입구 맞은 편에 화장실이 있다. 깨끗하다. 물론 당연히 유료다. 이곳을 두 번 들른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판떼기.
점자 안내판도 있어 신기했다. 처음 보았다.
Svetitskhoveli 대성당.
위대한 건축물의 건축가는 제왕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인가? 늘 슬픈 전설이 흐른다.
이곳의 건축가도 팔이 잘렸고, 그 제자들이 그를 위하여 망치를 든 잘린 팔의 부조를 만들어 놓았다고.
예수가 못박힐 때 그곳에 있던 유대계 조지아인인 엘리야, 그녀는 로마의 군인에게서 예수가 입고 있던 옷을 사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누이 시도니아가 성의를 만졌다가 격정 속에 죽었다. 옷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아 할 수 없이 같이 매장하였다. 그곳에서 후에 거대한 삼나무가 자랐다.
성녀 니노가 교회를 짓기 위해 삼나무를 베라 했다. 그 나무로 기둥을 만들었다. 사라졌다. 성녀 니노가 기도하여 다시 나타나게 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교회를 만들었다.
이렇게.
작은 교회 위에 커다란 성당을 만들어 씌운 것이다. 11세기에 건축가 아르수키제에 의해서.
저 안쪽은 신계, 이쪽은 인간계.
인간계에서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녀와 남.
한 쪽 벽에는 요괴 같아 보이는 것들의 그림도 남아 있다.
2시30분.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을 나선다. 성당을 둘러싼 방벽은 1787년에 에레클레 2세에 의해 축조되었다.
성당과 주차장 사이에 수많은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분들을 위해 30분의 쇼핑 타임.
3시에 모이기로 약속.
옆지기와 주차장의 그늘에 앉아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약속 장소. 수시로 이렇게 물을 뿜는다. 온도를 낮추어주는 냉방 효과가 탁월하다. 그러니까 하는 것이겠지만.
약속 장소를 찾아왔더니 다들 한 잔씩 하고 있다. 호프 한 잔 얻어 마셨다.
3시19분. 일어난다.
대성당 주차장. 수많은 웨딩 차량들. 오늘이 길일인가보다.
3시21분. 버스는 출발했다.
3시52분. 시오니 Sioni 교회. 성녀 니노가 만들었다는 교회이다.
여기도 웨딩 팀이 있다. 확실시 결혼 길일인가보다.
교회 내부. 제단.
결혼 축하~
모두의 선한 소망이 이루어지길~
결혼식 팀이 바뀌었다. 확실히 오늘이 길일이다.
조지아 교회에서 사용하는 십자가는 독특하다. 약간 양쪽 끝이 쳐진 모양.
성녀 니노가 조지아에서 이것이 십자가다 라고 처음 만들어 보여준 것인데, 눈앞에 보이는 재료가 포도나무 밖에 없었고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게다라 포도나뭇가지 두 개를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었단다.
두 시간의 시내 관광 자유 시간이다. 4시에서 6시까지. 이곳에서 모이기.
기원전 8~7세기에 조지아에서 발견된 술마시는 사람 조각상. 17배 확대 제작한 짝퉁.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여요.
조지아에서 재배되는 포도 품종이 500가지 넘는단다.
난감하다. 혜초여행사 담당자가 트빌리시까지 쫓아와서 비행기 시간이 늦어져 저녁을 먹으려면 먹으라고 1인당 20돌라씩 나누어주었다. 점심으로 들러던 한식당에서 마구 배를 채운 것이 아직 안꺼졌다. 뭐 먹으러 들어가긴 싫다. 카페 같은데 들어가서 커피 등을 마셔볼까 했더니 옆지기가 싫단다. 그래서 배회했다.
시오니 교회 주변의 카페 골목을 돌고, 아래쪽에 보이는 쿠라 강을 건너는 Metekhi 다리를 건너 공원을 산책했다. 그랬더니 보이는 유리 덩어리인 평화의 다리를 건너 돌아와서 에레클 2세 거리, 시오니 거리, 코테 아프카지 거리 등을 배회했다. 다리가 아파 교회 앞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부부 세팀은 유황온천 체험하러 갔고, 나머지도 스르륵 사라졌다.
메테키 다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고가살리 왕의 동상.
나리칼라 요새까지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케이블카는 밤 12시까지 운행을 한다. 와~
쿠라강, 메테키 다리, 나리칼라 요새.
Rike Park
평화의 다리.
The Bridge of Peace. 바닥도 유리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조금 실망.
카페 골목을 두 바퀴 돌았다. 카페 골목에서 본 간판.
Kote Afkhazi 거리에 있는 유대교 회당. 조지아 정교 신도 비율이 60% 정도라고 한다. 소비에트 연방 지배의 영향인지 러시아 정교도 10%. 그러니까 다른 종교 신자도 많다는 이야기겠지. 즈바리 수도원으로 예수님 성의를 가져온 엘리야도 유대인이었으니 유대교 회당이 보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 언덕 위의 조지아 어머니는 묻는다. 와인 마실래? 칼 맞을래?
메테키 다리에서 본 콘서트 홀과 대통령궁.
6시. 와인 마시는 사람 동상 앞에 집합.
6시10분. 버스 승창 완료. 공항으로 달린다.
6시28분. 공항 도착. 공항 건물 들어오면서 바로 보안 검색을 한번 거친다.
공항은 트빌리시 동쪽에 있다.
비행기의 이륙 방향이 북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모양이다. 떠서 좌회전 쫘악~ 해서 남쪽으로 날았다.
6시47분. 티케팅. 2주일간 함께 하며 고생했던 블라디미르 박과 바이빠이~
세관 통과
101 게이트에서 트빌리시의 무료 와이파이를 즐긴다.
공항에 해가 저문다.
8시반. 보딩 시작.
zone 1. 먼저 탑승한다. 제일 뒷 자리. 28A
A320기종이다. 아담한 크기.
9시19분. 엔진에 힘을 가하기 시작한다.
9시26분. 택싱 시작. 뜬다~ 바로 앞쪽에 애기들 많이 탔다. 와 시끄럽다.
10시40분. 기내식 나온다. 와 애기들 시끄럽다.
11시58분. 애기들이 운아. 와 시끄럽다.
12시30분. 도하 공항에 랜딩.
창밖의 도하. 불야성.
비행기 화면에 비행기가 Doha에 있다고 나온다.
12시39분. 계류장에서 버스로 이동한다.
대기한다.
시간대가 달라졌다. 1시간 늦어졌다.
도하 시간 12시10분. 보안검색 통과.
1시46분. 보딩 시작한다.
2시. 탑승.
B777-300ER. 크다~
기내식이 나왔다. 너무 피곤하다. 먹는 것도 귀찮다. 귀찮으면 안한다. 안 먹었다.
피곤하다. 졸립다. 눈이 아프다. 안경이 없어진 줄 알고 여기저기 찾는다. 이런! 쓰고 있다.
비몽사몽. 영화를 돌린다. 어벤저스 인피티니 워. 세번을 돌렸다. 더빙으로 한 번, 안더빙으로 두 번. 토막 토막 보았지만 여러번 보아 짜집기 하니 영화 내용이 들어온다.
도하에서 인천까지 이렇게 날아왔다.
서해 바다의 상공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꺾어가면서 들어왔다.
오랜 만에 보는 우리나라 하늘이다.
우리나라 땅이다.
우리나라 공장, 농경지다.
5시15분. 랜딩.
대기하다가 하기.
평소 같으면 자동 체온 검사기계를 그냥 통과하여 쭈욱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사람들을 길게 줄을 세웠다. 뭐지?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있었다는? 한 사람씩 모든 입국자의 체온을 수동으로 잰다. 자동 기계보다 수동 기계가 더 신뢰할 만하다? 그럴수도.
여권에 대한민국 입국 도장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이 입국 심사하는 창구로 갔다. 실은 자동출입국 심사창구 쪽 줄이 더 길었더라.
직접 심사하는 쪽은 줄도 없다. 여권 주니 스캔하고는 가란다. 사람 손을 거쳐도 도장을 안찍어준다.
여권을 새로 만들었기에 도장들로 빨리 채우고 싶은데...ㅎㅎ
짐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비지니스 클래스를 이용하신 분들은 진즉에 짐을 찾아 놓았다가 먼저 간다고 인사하고 사라진다. 코카서스 때문에 모인 모임. 짐이 나와 찾는대로 인사하고 집으로.
드디어! 입국했다. 이 끈적하고 뜨끈한 대한민국의 공기가 그리웠다. 푸하~
6시28분. 6100번 공항 리무진 탑승.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정시 표를 구입한 사람부터 태운다. 그냥 교통카드로 결재하고 기다렸다가는 못 탈 수도 있다. 2터미널을 거쳐서 오기 때문에 버스에 손님들이 이미 가득이다.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70분을 달린다. 버스에서도 비몽사몽.
귀가. 아들의 환영.
씻고, 저녁 먹고, 짐 풀고, 뻗는다.
8월6일이 다 지나간다~
신기하다. 한군데 몰아서 도장을 찍어주더라. 그리고 출입국에 이용된 교통 수단이 표시되는 것도 처음 구별했다. 공항을 통하면 비행기, 육로 국경 통과시에는 자동차 그림이 찍힌다.
예레반 시내 관광을 하고 조지아의 트빌리시로 가는 일정이 기다리는 날이다. 트빌리시는 세번째 가는구나.
잠이 깼다. 5시11분이더라. 알람이 필요없다. 알람은 6시.
예레반의 하늘이 밝았다.
호텔에 딸린 수영장. 인어가 한 마리 노닐고 있다.
7시20분에 식사하러 움직인다.
8시40분. 모든 정비를 마치고 로비로 집합.
여유가 있어 공화국 광장으로 나가본다.
자동차 번호판에 눈이 간다. 이게 뭐야~~~~~~~~~~~~~~~~
모르겠다. 이 동네의 번호 발급 시스템에 대해. 이건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러시아 번호판의 777도!
8시56분. 출발. 8월4일 예레반에서의 이동 코스이다. 호텔에서 출발하여 빅토리 파크 - 마테나다란 - 케스케이드 공원 - 올드 베이징. 그리고는 조지아의 트빌리시를 향하여 이동하였다.
메리엇 예레반. 이틀 밤을 신세졌다. So long~
9시7분. 승리 공원 Victory Park. 어떤 victory를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승리 공원을 조성했다. 그 중심에 '아르메니아 어머니' 상이 있다. Mother Armenia.
어머니께서 칼을 들고 계시다. 힘을 통한 평화를 상징하는 상이라고 한다. 그냥 칼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이 칼집에 들어 있다. 네놈들이 덤비면 칼을 뽑겠다라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강자의 이미지인데, 아르메니아는 숱한 외침에 당하기만 한 나라가 이렇게 하는 것이 좀 아이러니로 보였다.
소비에트 연방에 있었던 나라들의 공통점이랄까....아들을 전장에 내보낸 강인한 어머니 상,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이다. 소비에트에는 천연가스가 풍부하니 꺼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킁~
9시28분. 아르메니아의 고문서 박물관, 마테나다란
Masrop Mashtots Institute of Ancient Manuscripts. 중세의 문서를 보관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관중의 하나이다.
Matenadaran은 문서 보관소를 의미한다.
마테나다란에 보관된 기록물들은 1997년 UNESCO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
Mesrop Mashtots는 405년에 아르메니아 문자를 창제하여 아르메니아의 국가적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확립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 창제한 것은 36개의 문자였는데 나중에 3개를 추가하였고, 소문자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언어는 달라졌으나 문자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고대의 자료를 현대인이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을 알 수 없다고.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고대에 사용되었던 필기장은 양피지. 매우 고가의 것이었다. 그래서 한번 사용한 것을 지웠다가 다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10세기에 중국에서 종이 제작법이 전래된 이후 많은 책자가 만들어졌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성경의 번역.
그리스 책자의 번역도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스 원본이 사라져 이곳에 보관된 책자를 다시 그리스어로 역번역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1500년대 베니스에서 인쇄해 온 책자.
암스테르담에서 인쇄해 온 책자.
18세기 이후에는 아르메니아에서 자체적으로 인쇄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양피지 책. 28킬로. 송아지 660마리를 사용해야 제작할 수 있는 분량.
글자와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된 염료를 전시한 공간도 있다.
붉은 색의 염료에 대한 설왕설래. 연지벌레 혹은 깍지벌레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염료인데...
내부에서는 해설사가 나와 영어로 전시 공간에 있는 것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실내는 사진 촬영 금지 상태. 통역을 들으며 위의 내용을 메모만 할 수 있었다.
그냥 밖에서 폴짝폴짝 뛰기만 한다.
학예사가 안내를 마친 것이 10시10분.
자...이제 기념품점.ㅎㅎ
10시20분. 마테나다란을 나선다.
마테나다란에서 케스케이드 공원까지는 그냥 도보로 이동한다. 두 지역 사이에 아르메니아 문자를 하나씩 벽면에 그려놓았다.
전차다. 서울에 있던 전차를 1960년대인가 모두 없애버렸다던데...
10시35분. 케스케이드 야외 조각 공원.
언덕에 조성되어 있다. 지하에도 전시 공간이 있으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덕을 따라 한 층 하 층 조성된 전시 공간은 계단을 통해 혹은 지하의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오르내리면서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언덕의 정상에는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연방 50주년 기념탑이 있다. 꼭데기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걸어서 갈 수는 있었는데...
자본주의의 소비 문화를 풍자하는 두 작품이라고 한다.
콤롬비아의 유명 작가 작품들이다. Fernando Botero. 통 큰 작품들을 주로 만드나보다.
한국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
실내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실내에도 층이 있다. 층마다 이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큰 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문 밖으로 나가면 또 다른 전시 공간이다.
놀고 있지.
놀아보자.
사람을 끌었으면 물건을 팔아야지. 기념품 판매점 입구에 전시된 멋진 작품. 유리.
쇼핑하는 처억~
하는 척~
지용호 작가의 작품 앞에서 ..
예레반의 케스케이드 야외 조각 공원 입구에는 탁자에 설계도를 놓고 고민하는 인물상이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 신고전주의 건축가로 유명한 Alexander Tamanian이다. 예레반이 통째로 그의 작품.
아르메니아 지폐 500드람 권에 모셔져 있다.
Alexander Tamanian의 조각상 앞에서 남긴 단체 사진.
가운데의 예쁜 아가씨가 아르메니아 현지 가이드를 맡아 주었던 아르미네~
11시25분. 예레반을 떠난다. 재밌는 곳이었다.
11시33분. 식당. 老北京, Old Beijing. 중국 음식점이다. 세계의 큰 도시, 웬만한 작은 도시에 중국 음식점이 없는 곳이 있을까?
대충 마구마구 주워먹는다. 외국의 중국식당 좋아한다. 다양하고 많다. 앞에 음식이 쌓여 있다. 한 접시 먹고 접시를 통으로 치워야 하는 그런 양식당과는 다르다. 그냥 계속 쌓여 있어서 음식을 먹는 순서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고 그냥 내 손 닿는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백주라도 하나 있으면 더 좋고.
젓가락 봉다리에 젓가락 사용법이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 것이 재밌다. 러시아 어다.
12시10분. 식당을 나서 출발한다. 아르메니아를 떠난다.
12시12분. 떠나는 우리 일행에게 아쉬움을 표하는 Vardan Mamikonyan Statue.
12시52분. 경지. 아직 밀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지도 있다. 수확이 이루어진 경지에서는 짚을 모아 건초 더미로 쌓아 놓앗다.
1시9분. 세반섬. 중간에 들릴 곳이 없으므로 운전기사 아저씨가 상당히 열심히 운전하고 있다. 그냥 지나간다.
2시9분. Ijevan의 큼지막한 슈퍼마켓. 화장실을 이용.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에서는 가이드가 무엇인가를 쇼핑을 해준다. 오고가는 무엇인가겠지. 냉커피 하나 얻어 마셨다. 와우! 달다~
2시24분. 충분히 쉬다가 출발. 운전기사도 음료수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했다. 우리는 기다려주었다.
부지런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조지아 와인을 한국에서 주문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적포도주인 Saperavi와 백포도주인 Thinandali를 그 연락처를 통해 구입해보았다. 이들 외에 Saperavi의 업그레이드 버젼인 Mukuzani 도 있다. 세 가지를 소개해주더라.
포도를 그냥 먹는 것과 와인으로 먹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와인으로 제조하는 포도는 육즙이 70% 이상되어야 한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재배되는 포도 종류가 500가지 쯤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와인 제조 가능한 것은 50가지 쯤.
한국에서 즐겨 먹는 포도 거봉은 육즙 대신에 과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런 류의 포도는 와인으로 제조하는 것이 불가하단다.
아르미네의 한국어 공부 및 한국에서의 공부에 대한 썰~
3시57분. 국경. 아르미네와 이별.
출국 수속 & 입국 수속.
4시23분. 조지아 버스 탑승.
4시29분. 모두 탑승 완료하여 출발한다.
5시8분. 이건 뭐지. 어머니가 어린 아이들에게 칼을 들고 있게 하고 있다. 두 아이들에게 칼을 들게 한 조지아 어머니상??
5시48분. 트빌리시에 들어왔다. 케이블카가 있다.
그 옆으로 보이는 Kura 강변의 조각상. Statue of King Vakhtang Gorgasali.
대통령궁이다. 휘날리는 국기~ Five Cross Flag.
유명한 Public Service Hall도 보인다.
5시54분. 호텔에 도착하였다. 매리엇 트빌리시.
호텔에 도착하면 일단 쉰다. 편하다.
7시28분. 저녁을 먹으러 호텔을 나선다.
7시41분. 식당에 도착. Shadow fo Metekhi.
'메테키의 그림자'라는 이름의 멋있는 식당. 쿠라 강변에 위치한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해줄 사페라비.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내가 쏜 것이잖아....^^
식탁에 불이 붙었다. 고기를 불에 살짝 끄슬리면 잡내가 없어진다고 한다.
공연이 있는 식사이다. 멋진 공연. 근사한 곳이라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서로 찾기에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이라고 가이드가 그런다.
발코니에서 트빌리시의 쿠라 강변 야경을 잡아본다.
저쪽에 대성당이 있고, 저 멀리 산꼭데기의 퍼런 것은 TV 방송탑이란다.
한국에서 한국까지 함께 한 혜초의 일꾼과 함께 한 컷~.
조지아에서 계속 함께 한 '글로발 조지아 투어'의 일꾼과 한 컷~
쉐도우 오브 메테키의 일꾼들.
9시37분.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출발.
9시47분. 호텔 도착.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는 몇몇이 호텔 바에 남았다. 불러 내리기도 했다. 보드카 한 잔. 처음에 남자 한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불러내려진 분이 계산을 해버려서 좀 죄송했다. ㅎㅎ
보드카 한 잔 했더니 그냥 저 속으로 쭈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일은 아침식사가 7시부터 제공되지만 일정은 10시부터 시작이다. 여유가 흘러 넘친다~자자~
7시 넘어서 식당을 찾아간다. 식당이 3층에 있다는 안내를 어제 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3층에 내렸더니 객실 밖에 없다. 왔다 갔다 헤메는 모습을 본 호텔 직원이 식당을 찾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잡아야 한다. 무조건 "YES!" 따라오란다. 묘한 곳에 있더라.
8시반에 로비로.
8시59분. 출발. 예레반을 출발하여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정신의 고향이라 할만한, 하지만 지금은 터키 영토에 편입된 상태인 아라랏트 산 턱밑의 코비랍 교회를 거쳐 에키미아진으로 간다. 여러 교회를 들러 예레반으로 귀환하는 코스다.
9시29분. 창밖으로 멀리 아라랏트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코비랍은 저 산 아래에 위치한다.
흰머리가 Ararat, 왼쪽의 검은 머리는 little Ararat.
안내하는 가이드가 날씨가 좋아야 한다, 일찍 가야한다고 여러번 강조하였다. 날씨가 좋아야 아라랏트 산 정상의 만년설 부분이 제대로 보인다고. 보!인!다!
아르메니아의 Ararat 산은 인근의 네 나라가 영주권을 주장했었단다. 오스만 투르크, 제정 러시아가 붕괴된 이후, 케말 파샤와 스탈린 사이의 밀실 협약을 통해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터키는 아라랏트 산 일대를 차지해버린다. 아르메니아는 그야말로 잘 자고 일어났더니 땅을 남의 손에 의해 다른 손으로 빼았긴 형국이 되어 버렸다. 수도인 예레반에서 매일 같이 보이는, 자신들의 영토가 남의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가진 것도 없고, 경제력도 국력도 약한 나라이다. 아라랏트 산을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올 방법은 요원하다. 그래서 가슴에 담고 있는 방법이란 것이....... 터키에 착한 대통령이 나와 자기들에게 그냥 돌려주는 것을 기다린다. 1915년의 대학살에 대한 사죄의 의미라는 빌미도 있으니까. 물론 터키는 대학살이란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ㅠ.ㅠ
비닐하우스다. 비닐하우스 대단지다. 비닐하우스가 있다니. 형태와 구조가 희한하다. 무엇을 재배하고 있을까?
자주 다니던 지오트립 답사팀과 함께 갔다면 "스톱!"을 외치고 버스를 세워 내부 구경을 해볼 시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것도 볼 수 있는 그런 여행이 아쉽다.
9시44분. 아라랏트 산 아래의 코비랍에 도착하였다. 산 아래로 구불구불 흐르는 아라스 강이 두 나라의 국경선이다.
먼저 포토존에 멈춘다.
이곳을 방문하면 남겨야 하는 필수 사진이다.^^ 2018년8월25일자 중앙일보에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실렸다. 내가 찍은 사진은 봉우리에 구름이 적다.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은 구름이 많다. 가이드가 이곳을 일찍 가야 한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가 뜨면 만년설의 빙하를 달구고, 녹은 물이 증발하면서 봉우리 위에만 구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낮이 되면 봉우리는 구름으로 덮여 위쪽이 안보이게 되는 것이다.
포토존 뽀인트는 코비랍 교회 들어가는 길목의 포도밭이다. 그냥 남들이 정차하는 곳에 따라서 멈추면 된다.
아르메니아 와인 혹은 꼬냑의 원료가 될 것이다.
코비랍 교회.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파견된 성 그레고리(257~331)를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아르메니아로 36명의 수녀단이 다시 파견되었고, 이들은 모두 순교한다. 이후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는 알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죽어갈 때 공주의 꿈에 성 그레고리가 나타났고, 13년간이나 지하감옥에 갇혀 있었던 그는 왕의 병을 고쳐준다. 이에 감복한 왕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코비랍 교회에 도착.
Khor Virap에 대한 간략한 안내 자료.
4번 뽀인트에 교회가 위치한다.
조 위까지 조금 걸어올라가야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온다. 홍수가 잦아든 뒤 육지를 발견하고 노아가 '예레바츠'라고 외쳤단다. "찾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노아의 방주가 걸린 땅이 아라랏트 산이었고, 그 코앞에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이름도 "예레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아라랏트 산에 더 애착을 갖는지 모르겠다.
홍수에 떠밀려 표류하던 노아가 육지를 찾기 위해 날려 보냈던 비둘기, 그 비둘기의 자손이겠다.ㅎㅎㅎ
코비랍 교회는 성 그레고리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교회 내부.
성 그레고리와 티리다테스 3세. 왕은 그의 왕관을 머리에서 벗어 손에 들고 있다. 뒤에 배경으로 교회가 있고. 나라를 교회에 바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사진의 왼쪽 건물에 지하 감옥이 보전되어 있다.
고통받는 성 그레고리.
안쪽 구석에 조그만 구멍이 바닥에 뚫려 있다.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둡고 덥다. 가시는 분들은 꼭 들어가 보시길~
두 아라랏트 산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 남겼다.
아라랏트 산과 코비랍 사이에 녹지대가 분포하는 것은 그 사이로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Aras 강(Arax 강이라고도 불린다.)이다.
우리나라처럼 대치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비무장지대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양측의 경계는 국경선인 Aras 강 자체일 뿐이다. 그래도 양국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 때문에 국경 초소가 양의 양안에서 마주하고 있다. 생긴 것도 똑같다. 철골조의 탑 위에 감시 초소. 사진 왼쪽의 터키 초소는 흰색, 오른쪽의 아르메니아 초소는 초록색이다.
Aras 강은 길이가 1,072km에 이르는, 코카서스 지방에서 가장 킨 강이다. 터키에서 발원하여 아르메니아를 지나 아제르바이잔에서조지아에서 흘러온 Kura 강과 합류하여 카스피 해로 유입된다. 이란에서 발원하는 지류도 있어 4개 국을 흐르는 국제하천이다.
교회 앞쪽에 조성되어 있는 묘지.
얼레...
교회에서 놀고 있던 비둘기가 이 아이들과 동기가 아닌가 싶다.
방주에서 육지를 찾던 노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이야기에 착안한 장사꾼의 상술이었다. 비둘기를 구입하여 '노아처럼' 날려보내는, 일종의 '방생을 하는' 유료 체험이겠다. 다른 생물의 방생은 그야말로 생태계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보내버리는' 방생이다. 하지만 이 비둘기의 경우는 다르다. 비둘기는 강력한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손님이 구입하여 교회에서 아라랏트 산으로 날려보내면 잠시 후에 그 비둘기가 다시 상인에게 돌아와 있다. 그 비둘기를 다른 손님에게 또 판매한다. 참 좋은 상술이다.^^ 상품의 재사용이 가능한, 이것도 친환경일까???
10시33분. 아라랏트 산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며 떠난다.
10시52분. 아라랏트 산의 모습이다. 봉우리의 빙하가 녹은 물이 증발하여 형성된 구름으로 봉우리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졌다.
예레반 서쪽에 위치한 도시 에키미아진을 향하여 이동한다. 에키미아진은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뽀인트이다.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성 그레고리를 통해서 였지만 그 계기가 큰 희생이 있었으니 36명의 수녀들의 순교였다. 그와 관련된 가야네 교회와 흐립수민 교회가 에키미아진에 있으며, 여러가지 기독교의 성물을 보존하고 있는 성 마더 대성당도 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점심 식사를 한 식당도 있다. 중요하다.^^
11시26분. 가야네 Gayane 교회에 도착하였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Gayane 교회.
아르메니아 포교를 위해 떠났던 그레고리로부터의 소식이 끝기자 이번에는 수녀단을 파견하였다. 그 수녀단을 이끈 수녀가 Gayane이다. 함께 떠났던 수녀들 중에 흐립수민 수녀가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라는 질문에 거울은 "흐립수민"이라고 대답할 정도의 미녀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한 로마 황제가 탐을 낼 정도로.
황제의 미친 손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는 선교단에 자원한 것이다. 하지만 눈이 뒤집힌 황제가 이정도로 포기하지 않았다. 병사들을 보내 잡아오라고 하였다.
이들의 압박을 받은 아르메니아 왕은 전국을 뒤져 수녀단을 모두 체포하였다. 잡아놓고 보니 흐립수민 수녀의 미모에 아르메니아 왕 티리다테스 3세의 눈도 돌아갔다. 자기에게 오면 다른 수녀들 모두를 무사방면하겠다고 하였으나 가야네 수녀를 비롯한 모두가 반대하며 같이 순교하였다. 그 수녀단의 단장 가야네 수녀의 이름을 딴 교회이다.
630년에 건축하였고, 1652년에 재건되었다. 다시 확인한다. 이 동네는 지진이 잦은 곳이다. 왜? 코카서스 산맥이라서! 그게 뭐? 지각판의 경계 부분이라서!
교회 입구로 들어간다.
교회 내부.
....
가야네 수녀. 수녀 주변에는 병사들로부터 고통받으며 순교하는 다른 수녀들을 묘사하였다.
두 수녀는 천사들의 마중 속에 예수님께로. 그런데 손 모양이...수결인... 부처손?
11시37분. 가야네 교회를 나선다.
11시44분. 에키미아진 성 마더 대성당.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게이트.
성 고레고리에 의해 301-303년에 건축된 성당이다.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체험한 자리에 성당을 세운 것이다. 건축 이후 심한 정치적 격변을 겪는 동안에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480년에 복원되었다. 이 때 원래 원통형의 둥근 아치형이었던 천장이 현재와 같은 십자형 구조로 바뀌었고, 618년에는 건물 위부분의 둥근 목조 지붕이 동일한 모양의 석조 지붕으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에치미아진 성 마더 성당은 고대 건축의 정수이자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의 원형으로 꼽히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서 성당건축 발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00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지방의 작은 수도원은 제때 제대로 보수가 되질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대주교가 있는 대성당은 보수 공사를 수시로 하는가부다. 공사중~
아르메니아는? 지진이 잦은 곳!
여러 차례의 붕괴와 보수가 반복되고 있다. 중앙의 큐폴라 부분 및 제단 일대가 모두 공사중이라 들어가볼 수 없다.
2010년에 남동향에서 촬영한 깔끔한 사진을 한번 보자. 교회건축 양식에서 한 자리 차지할 만 하다. 근사하다.
첫번째 십자가가 못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알려진 롱기누스의 창이다. 창두 부분만 남아 있다. 원래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에 보관중이던 것을 옮겨왔다.
"예레바츠!"(찾았다)를 외친 노아, 그가 타고 움직였던 방주가 있었다. 그 방주의 부서진 파편의 아주 작은 조각이 보관되어 있다. 십자가 가운데 박힌 보석의 가운에에 있다. 크기는 이쑤시개의 1/4토막 만하다.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작은 파편이 남아 있다. 십자가 모양의 가운데 박힌 보석의 가운데 들어 있다. 크기는 이쑤시개의 1/4토막 만하다.
지붕은 돔형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다.
공사중.
에키미아진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50,000드람 지폐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돈으로 10만원이 넘는 지폐다.
(출처: 위키피디아)
12시.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쇼핑을 하는 다른 멤버들의 분위기에 맞추어 쇼핑하는 척을 하는 중~
12시25분. 출발.
12시30분. 식당에 도착했다. Machanents Tourism and Art라는 기관이면서 Mechanents Guest House도 겸하는 곳이다. 그래서 식당이 있다.
고춧가루였을 것이다. 매우 맵다고 했다. 먹어보니 그렇게 공포스럽게 매울 정도는 아니다.
앙증맞은 다기.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고 보전하는 등의 여러가지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좋은 말씀을 전한다.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교육하고 있단다. 그들이 만든 작품들이 실내의 도처에 전시되어 있다.
밖에도 좋은 말씀이 아르메니아 어로....
1시35분. 버스 탑승, 출발.
1시40분. 흐립수민 Hripsime 교회 도착.
1995년에 교회 주변에 녹화 사업을 실시했단다.
교회는 395년에 수녀의 묘가 있던 곳에 세워진 것이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618년에 다시 세워진 것이며 고전적인 아르메니아 건축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중앙 제단.
지하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외부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따로 전시된 묘비 뿐이다. 흐립수민 수녀의 묘비. 로마 황제 및 아르메니아 왕이 뿅 간 미모였다고 한다.
결혼식이다. 8월3일이면 금요일인데, 아르메니아에서는 아무 날이나 날잡아서 결혼하나부다.
1시53분. 교회를 나선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여러 대의 차량들이 줄지어 달려간다. 결혼식 차량 행렬이라고 한다.
2시. 즈바르트노츠 Zvartnots 사원. 아르메니아 왕이 세례를 받았던 장소라고 한다.
역시나 간략한 안내를 친절하게 해주는 안내판이 있다. 아르메니아어, 영어, 러시아어.
2000년에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St. Gregory the Illuminator 라고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즈바르츠노츠 성당은 7세기 중엽 아르메니아 정교 총대주교 네르세스 3세가 성 조지를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930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져버렸다. 1900년대 초에 유적지 발굴이 이루어졌다.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유적지. 돌판구이용 판 위에 올려진 삼겹살 고기가 된 느낌이다.
독수리가 조각된 석재의 일부.
무너진 건물을 일으켜 보자~
지나가던 놈이 쳐다보는 눈빛이 편치 한다.
2시16분. 즈바르츠노츠 성당 유적지를 떠났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으로 돌아왔다. 학살 추모공원에 들렸다가 유명한 공장 NOY를 방문했다. The Club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메리엇 예레반 호텔로 걸어왔다.
썰.
아르메니아 국내보다 국외에 더 많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살게 된 배경. 1915년의 대학살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아나톨리아 지방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사람 150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노리던 아르메니아를 장악한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사이의 갈등이 아르메니아 인에 대한 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직접 살해한 경우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이란 북부의 사막으로 강제 추방 때문에 발생했다. 추방된 사람들은 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부분이 아사하였다고 한다.ㅠ.ㅠ
2시34분. 미국 대사관 옆을 지난다.
미국 대사관 건물들은 대부분 튼튼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면에 아르메니아와 미국의 우호 증진을 희망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2시43분. 학살 추모공원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많은 유명인들이 기념 식수한 나무들이 있었다. 그런데 상당 수의 나무들 상태가 안좋은 것이 안타까웠다.
나무마다 이런 명판이 세워져 있다. 이건 체코 대통령. 2016년 방문.
추모 기념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미국에서 단체로 사람들도 있었다. 아르메니아 후손이란다. 버스 4대.
탑. 갈라지는? 달라붙는?
닫히는 것일 수도, 열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하더라.
꺼지지 않는 불 앞에 많은 꽃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아이 하나.
대학살 그리고 이어진 강제적인 이산, 디아스포라. 그 아픔이 서린 곳.
전시관이 땅 속에 들어 있다. 뒤에 쳐져 딴 짓하고 있으니까 블라디미르 박이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한다.
1908년에 '젊은 투르크 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투르크의 구원을 위해 제국의 기독교인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11년의 제4차 의회에서 전국민을 강제로 이슬람화시킬 것이며, 그것이 안된다면 기독교인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르메니아 인들을 절멸시킬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하 생략)
아르메니아 인들의 디아스포라, 그리고 타국으로...
3시11분. 학살 추모공원을 나선다.
3시19분. NOY 공장 도착. 브랜디, 와인, 보드카를 생산한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음~ 좋아~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꼬냑 공장 NOY. 포도가 너무 달아 와인 제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브랜디를 제조한다고 한다.
이곳 시음장은 주류를 구입하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호객 행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입장료를 내야 한단다. 희한하다.
시음용으로 나오는 꼬냑은 연식이 어려서 제대로 된 것을 마시려면 사야 한단다. 블라디미르 박이 판매점에 가서 두 병을 사왔다. 오면서 식식 거린다. 신용카드 리더기가 고장나서 현금으로 샀다고. 그러면 회사에서 비용처리가 안되어 그냥 자기 돈 나간 것이라고 궁시렁거린다.^^
회사 입구의 전시품. 탐내지 말지어다~
NOY 술공장이 1877년부터였다고 자랑한다. 회사 직원이 나와서 가이드해준다.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는다. 영어다. 우리 가이드가 통역해준다.
술 공장은 과거에 성채였던 곳을 활용하고 있다. 성의 지하실 및 지하 통로가 와인을 저장하여 숙성시키는데 아주 좋은 조건이 된다고 한다.
요새였던 곳이라 땅 좀 파면 이런 대포가 종종 나온다고 한다. 이제는 장식품일 뿐.
과거에는 이렇게 도기 항아리에 술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다고 한다.
2012년에 열린 술잔치에서 자기들이 상받았다고 자랑~
보기만 해도 취한다.^^
이거 내꺼~
이것도 내꺼~
약 15톤짜리 통이란다. 진짜로 술통 속에서 수영하다 빠져 죽을 수 있는 크기다.
성채의 지하 비밀 땅굴. 술공장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포도 농장에서 이 통로를 통해 포도를 운반했단다. 뜨거운 햇볕을 받지 않는 저온 유지 마법이 걸린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버려진 공간이다. 습도가 너무 높아 이용이 곤란하다.
이런 통을 아무리 쳐다보아야 마실 수 없다. 마셔볼 수 있는 것이 있는 곳으로 간다.
웰컴이란다. 나도 웰컴이다~
년식에 따라 세 가지 음료를 시음할 기회를 준다. 역시 스무살 짜리가 제일 낫다.
몇몇 분들은 입맛에 안맞는 모양이다. 버려진 잔들 모두 내 앞으로 집합!
시음장 방문 기념으로 요고 하나씩 준다. 소주 한잔 용량이다.
판매점에서 나도 구입해보았다. 역시 신용카드 리더기에 문제가 있단다. 할 수는 있는데 중복 처리 가능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꺼려 하더라. 할 수 없다. 미국 돌라를 사용하여 구입. 86돌라. 지갑이 말라간다.
4시37분. 출발.
바람이 많이 분다. 하늘 저쪽이 뿌옇다.
4시45분. 호텔 도착.
쉬다가 샤워를 하려고 했는데, 샤워 타월이 없다. 뭐 이런 호텔이 별이 다섯개 씩이나.
원래는 영어 좀 했어야 하는데 좀 그런 옆지기에게 부탁했다. 카운터에 샤워타월 좀 가져다 달라고. 20분이 넘어도 안가져 온다.
6시45분. 로비에 모인다.
6시55분. 버스타고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출발.
7시6분. 도착. 지하에 위치한 THE CLUB.
전채 요리. 일식집에서 주는 마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은 없다. 하지만 1인당 4개씩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맛은 없는데, 먹다 보니 먹을만 하다.^^
고기에 입맛대로 원하는대로 소스를 찍어 먹으란다. 어떤 맛의 소스인지는 하나씩 테스트 해보면 된다.
커다란 생고기 덩어리 하나를 준다. 바닥돌은 뜨겁게 달구어진 것이다. 역시 자기 입맛대로 대강 잘라가면서 먹는다. 고기는 참 좋다. 맛도 좋다.
먹음직스럽게 잘 잘라가며 드시는 분들도 있고, 나는 마구 잘랐다가 제대로 못한다고 혼났다. 여러번 자르기 귀찮아 큰 덩어리로 대충 해체했을 뿐인데. 내가 뭘.ㅠ.ㅠ
식사하면서 생각났다. 가이드들에게 호텔 방에 샤워 타월이 없더라고 이야기했다. 예쁜 아르미네가 호텔로 전화하더라.
9시5분. 식사를 마쳤다. 수다 시간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어제의 그 길을 따라 걸어서 왔다.
금요일 밤이다. 불금이닷.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의 인구는 무려 백만 명이나 된다. 백만 명 도시의 번화가 금요일 밤거리 모습.
8시55분. 출발. 세반을 출발하여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까지 간다. 중간에 가르니 신전, 아짜트 계곡, 게그하르트 동굴수도원을 들릴 예정이다.
작은 마을, 도시 Sevan.
호텔을 한번 뒤돌아 보고 떠난다.
9시3분. 길가의 조형물. 어떤 의미나 사건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그냥 전망대는 아닐터인데.
9시10분. 멀리 보이는 플랜트. 발전소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찾아보았다. 흐라즈단 Hrazdan 화력 발전소였다.
9시27분. 이건 뭐지? 버려진 고철을 모아둔 것 같다.
9시32분. 메마르고 거칠어 보인다. 이미 수확이 끝난 경지. 수분수지 면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낮은 골짜기에 가옥들이 모여 있다.
아르메니아는 내세울 만한 자원도 없다고 한다. 그나마 흑요석?
길가의 노두에 서커멓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게 흑요석이라 한다.
세반에서 예레반을 잇는 도로를 왼쪽으로 벗어나 가르니를 향한다. Azat 강 협곡 쪽으로 간다.
10시10분. 가르니.
가르니 신전을 방문하고 인근에서 버스를 내려 4륜구동 SUV에 분승하였다. 급경사지를 지나 아짜트 계곡으로 내려갔다. 주상절리의 바다에 빠졌다.
가르니 신전 입구. 차량과 상인들로 번잡하다.
Garni temple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많이들 착각하게 만드는 팻말. 무슨 Prize를 받았다는 것이지 heritage가 아니다.
GARNI
General historical stetch를 보자.
배치도. 1번이 입구, 5번이 태양신전, 7번이 목욕탕 유적, 6번은 파괴된 궁전.
위 사진의 배치도의 1번에 해당한다. 입구. 다 부서진 것을 가능한 만큼 복원해 놓았다.
가르니 신전은 아르메니아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기원전 1세기에 네로 황제의 후원을 받아 태양신 미트라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건축했다. 가르니 신전의 고전적 스타일은 그리스 아테나의 신전과 매우 유사하다.
기원전 1세기에 건축하였으나 여러차례의 지진으로 다 부서졌다. 신전 부분만 복원하였으나 워낙 새것처럼 복원하여 UNESCO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없다 한다.
로마식 목욕탕의 유적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목욕탕 내부 시설의 일부.
탕 바닥 부분. 작은 타일을 깔아서 무늬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로마식의 증거라고 한다. 바닥에 로마글자도 보인다.
가르니 신전이 아짜트 계곡의 절벽 위에 있다. 그래서 아랫쪽의 주상절리들이 잘 보인다.
여행사의 상품 중에 "아짜트 계곡 조망" 이런 식으로 안내 자료가 만들어진 것이 있다고 한다. 그 상품을 이용해 여행하는 객들은 이곳에서 이렇게 '조망'하고 간다고 한다.
우리 팀은 계곡 아래로 내려가 트래킹을 한다.
지진에 의해 붕괴되었으면 가능하면 원래의 석재를 이용해 붕괴된 모습으로 두었다면 세계문화유산(여기에 등재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다.)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새로운 석재를 이용했으니 '유적'이라고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많이 찾는다.
신전 아래의 계단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이것을 신전을 오르는 사람들이 절로 고개를 숙여 경배하는 자세를 만들려 했다고 설명한다.
파괴된 궁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 몇 줄 안되니 모두들 집중하여 읽어보고 지나갑니다~
기둥의 석재가 대부분 새 것이다.
내부의 모습도 보면 거의 새(?) 건물같다.^^
가르니 신전의 복원 상태에 대해 고민이 많은 아르미네. 아르메니아 현지 로컬 가이드.
2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새롭게 재탄생된 신전.
비석의 상태를 보니 좀 된 것 같다. 하지만 글자가 그림이다. 지나간다.
가르니 신전에 출몰하는 거리 악사. 국내 방송인 세계테마기행인가 뭐시긴가에도 나왔단다. 거리악사이지만 방송에 나온 순간 연예인이 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방송에. 이곳을 찾는 한국 사람들이 이 아저씨를 그렇게 찾는단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수많은 거리 악사의 한 명일 뿐 그렇게 뭐 어떤 그런 머시기는 아니란다.
그래도 옆에 앉아서 들어본다. 두둑의 소리를.
duduk.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인 피리의 아르메니아 이름이다. 음색이 너무나 슬프다. 수많은 외침을 견디어 낸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성정이 스며든 악기라 한다. 그러면서 한국인들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한다.
싫다. 왜 슬픈 것이 어울려야 하지?
하여간 듣고만 있어도 슬프다. 그래서 슬픈 분위기가 필요한 영화의 OST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Passion of Christ, Gladiator 같은...
빠져든다. 두둑의 음색에, 그 분위기에, 참 좋기는 하다.
10시58분. 가르니 신전을 나선다.
골목길에서 외국인만 보이만 음악이 나온다.
11시1분. 버스에서 내려 SUV에 분승한다. 다섯 대.
11시12분. SUV에서 하차하였다. 원래 1시간 코스로 계획된 것이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나이가 어마무시.
걷기 힘든 분은 차가 따라 오니 차를 타라고 안내할 정도. 뭐 그래서 코스는 어쨓든 대폭 축소되었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주상절리의 경관은 머리 속의 모든 메모리를 날려버린다!
와....지구에 이런 곳이 있다!
주상절리가 무엇?
주상절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런 것은 메모리에서 지운다. 그냥 눈앞의 장관에 빠져든다. 빠져들어간다~ 가즈아~
머리 위의 돌 덩어리들이 과연 떨어질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위로 콕콕 찍어보는 아줌마.
비로서 이해된다. 아! 우리가 코카서스에 있었던 것이지. 이 동네는 화산 활동이 많았던 곳이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지 등등이.
1시간 코스를 절반으로 줄였다.
12시40분. 타고왔던 차량에 탑승하여 Azat 계곡을 벗어난다.
12시50분. 정차된 버스 옆에서 하차. 바로 식당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식당에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늘 즐겨 먹는 얇은 빵을 만드는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다.
밀가루 반죽한 것을 밀대로 얇게 편다.
넘겨 받아서 베개 같이 생긴 것의 위에 펴서 모양을 잡는다.
화덕 안쪽의 벽에다 붙인다.
20초 쯤 익힌다.
꺼내서 집어 던진다.
줏어 먹는다. 당연히! 먹을 만 하다!
이번엔 고기를 익히는 화덕이다. 뚜껑을 열고...
잘 익은 고기를 꺼낸다.
여러 가지 고기, 감자 등이 아주 자알 익었다.
토기 주전자 속의 와인도 아주 자알 익었다. 소위 말하는 하우스 와인^^
바베큐. 든든한 식사.
1시7분. 식당을 떠난다. 자알 먹었다.
1시12분. 버스 출발.
1시28분. 게그하르트 동굴사원에 도착하였다.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던 창, 롱기누스의 창을 보관하였었다고 알려진 곳이다. 지금은 예키미아진의 대성당으로 옮겨 보관 중이다.
배치도를 보면 이렇게 생겼다.
게그하르트 Gegrard의 간략한 역사. 내용을 번역해 보면, 그러니까.. 음 여러분이 읽어본 내용 그대로다. 여러분의 번역이 정확하다. 인정한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표식을 재밌게 해놓았다.
이렇게 생겼다. 들어가본다.
동굴 사원의 문짝이다. 롱기누스의 창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동굴 사원의 내부. 1층.
성화.
이 문양이 그러니까..... 뭐? 이제 뭔가 들었다는 기억조차 없다.ㅠ.ㅠ
어이할꼬........에이멘!
수도사들이 씼던 곳. 마셔도 된단다. 아마도.... 레알?
고급 문화 체험 여행을 표방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름 유명한 중창단이라고 소개한다. 말레이시아인가 쪽으로 해외 공연을 갔다가 귀국한 팀을 바로 섭외 했단다. 동굴 사원의 2층. 음향의 반향효과(메아리 효과)가 매우 좋다고 하면서 체험해보란다.
소리에 취한다. 노래에 취한다. 음악에 취한다. 성가에 취했다.
공연팀과의 기념 사진. 천정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강한 빛 때문에 얼굴들이..ㅎㅎ
블라디미르 박 가라사대, 비싼 여행을 오면 그만큼 챙겨 가는 것이라고. 비싼 혜초의 여행팀에서만 이런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와우~~~
2시25분. 게그하르트 사원을 나와서 출발한다.
3시10분. 예레반.
3시24분. 재래시장을 먼저 들른다. 지도에 GUM Market이라고 나온다.
보통은 해외 여행을 하면서 재래시장을 들린다고 하면 좀 무서운, 지저분한 그런 분위기를 상상하곤 하는데,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시장은 그렇지 않았다.
깨끗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바닥 청소도 열심히 해주시고.
흥정도 열심히 해주시고.
왔다갔다 하는 것도 열심히 해주시고.
마치 곶감같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
이렇게 생겼다. 이게 어떤 것이고, 어떻게 만드는 것이고, 어떻게 먹는 것이고, 어떤 맛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하시길...
견과류를 다양한 종류를 모아 세트로 포장을 예쁘게 해놓았다.
시장의 규모는 상당히 큰데 구매자들은 많지 않다. 아니 한산하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럴까? 오후 3시반이니..
각 판매 코너마다 일련 번호가 붙어 있다.
그대는 누구? 돼지?
해외 여행 중 가장 곤혹스런 코스가 시장이다. 난 쇼핑 안한다. 그냥 시간을 죽이는데, 좀 심심하다.
시장 안쪽에 있는 여인상. 포도를 주렁주렁.
4시. 먼저 모인 멤버들은 먼저 버스로 간다.
4시14분. 출발. 쇼핑을 조금 더 하신 분들이 계셔서 버스에서 조금 기다렸다.
오! 전차닷!
4시21분. 공화국 광장에 도착하여 하차. 공화국 광장이라 공화국의 주요 시설이 몰려 있다. 주정부 청사 같은..
오늘의 숙소는 메리엇 예레반 호텔.
공화국 광장에 있다.
방에서 쉬다가 저녁 식사를 위한 이동. 버스로 이동하여 식사한 이후에는 걸어서 호텔로 이동(위 지도에서 초록색 경로)하였다.
6시45분에 로비로.
7시. 버스 승차 출발.
7시8분. 식당 도착. 하차. 오늘의 요리는 모듬 바베큐.
외국의 국빈이 오면 들릴 정도의 식당이라 한다.
격조 높은 곳이라 전문가들의 전통 공연과 함께 한다.
한 입으로 두둑 두 개 불기. 심지어 콧구멍으로도 분다.
아르미네가 흥이 올랐다. 아르메니아 전통춤을 정식으로 배운 춤꾼이다.
우리네의 농악패 정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같이 어울리기 시간.
다들 전문가들로 보여 이들의 CD를 현장에서 구입하였다. 가격은 10돌라.
CD 표지의 사진에 나온 등장 인물들이 오늘 공연자들과 일치한다.^^
전문가들의 이름이 모두 'yan'으로 끝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다.
그런데 CD에 조금 하자가 있다.
1. 2번과 4번 트랙이 같다. 잘못 만들어진 CD이다.
2. 음질이 안좋다. 마치 식당에서 공연하는 것을 그대로 녹취한 듯한 분위기다.
귀국하여 한번 들어보고 버렸다.(__)
8시45분. 식사를 마치고 걷는다.
공화국 광장의 분수대에서 쑈를 하고 있다.
역사박물관앞의 분수대이다. singing fountain이라고 maps.me에 나온다. 9시 시작.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까 장난감을 파는 상인, 간식꺼리를 파는 상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광장 한 켠에 앉아 구경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들이 아르메니아 말이 아닌 한국말을 한다. 와~ 이 먼 타국 땅에서 어둠 속에 아무 곳이나 앉았는데, 한국 사람옆이냐...와~
트빌리시를 출발하여 조지아의 국경도시 Sadakhlo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아르메니아로 넘어간다. 하그파트 수도원, 사나힌 수도원, 미코얀 형제 박물관, 세반나반크 교회까지 들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경로. 화면 캡처를 여러번 하여 하나의 지도로 만들었다. 이동 거리 260km.
트빌리시의 여명. 멀리 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 트빌리시 대성당이 보인다.
앞쪽에 나뭇잎을 여러장 겹친 모양의 지붕을 가진 건물은 트빌리의 Public Service Hall이다. 트빌리시의 모든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어떤 업무든 민원인은 이곳을 찾으면 모든 일을 볼 수 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작은 도시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레디슨 블루 호텔 앞에 서울 강남 삼성동의 무역센터 건물이 옮겨왔다???
Millenium Hotel이었다.
7시40분에 짐정리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왔다.
7시55분에 출발. 항상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이 이루어진다. 늦게 나오거나 모여서 전체의 일정이 지체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멤버들 같다.
트빌리시 시내를 지난다.
길거리가 매우 깨끗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아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찍 청소부들이 청소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8시6분. Ortachala 국제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썰~
여자 혼자 미성년의 자녀와 외국 여행시의 상황.
1. 여자의 여권에 남편의 아내라는 표기가 있는 경우. 통과.
집사람 여권의 이름에 (spouse of LEE)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왜 있지?
여권 신청할 때 배우자 있음 표시를 신청하면 해준다. 여권 신청 서류에 그냥 체크 표시 하나만 하면 된다.
2. 1의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영문으로 등본을 신청, 출력받아 갖고 다니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을 해도 여자가 남자 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성과 엄마의 성이 다르고, 그러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의 경우 입국할 때 세관에서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고 한다. 심할 경우에는 미성년 아이를 납치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왜? 가족임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입국 거부된 사례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팁을 가르쳐준다.
8시반. 해가 버스창의 왼쪽에서 강하게 파고든다. 남쪽으로 버스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알려준다.^^
풀숲 사이에 거위떼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메스티아에서 본 코쉬키라는 돌탑이 메스티아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조지아 여러 지방에서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메스티아 말고 다른 두 군데서 보이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8시37분. Jandari. 아제르바이잔 타운이라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사람들이 약 80프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사이가 극도로 안좋은데 그것은 국가 대 국가의 경우이고, 그냥 민간인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그냥 일상 생활을 아무 문제없이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아를 왕래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이곳을 지나면서 이들과 상업적인 거래 등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아의 경찰서.
건물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커다란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8시39분. Marneuli Police Station. 도시의 경찰서는 규모가 커진다. 하지만 외벽을 유리로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경찰서가 같다. 이런 눈에 보이는 행정을 통해 '투명한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심고자 했다. 전임 '친미'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추진하여 경찰의 비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단속을 하면서 돈을 받아 챙기는 모습은 완전히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 한다.
8시 40분. Marneuli Air Base.
조지아 유일의 공군 기지이다. 남오세티아 분쟁 때 침공해온 러시아군의 비행기를 두 대나 격추했다고 자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믿을 수 없다고...
아르메니아 코앞에 있는 국경도시 사다클로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들이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독특한 모습이 나타난다.
세제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잔뜩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다.
길가에 이렇게 세제를 쌓아놓고 판매하는 노점, 상점들이 계속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아무렇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향하는 쪽의 길가에는 없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를 향하는 도로 쪽에만 있다.
작은 내륙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외국과의 교통에 어려움이 많다. 동, 서, 남쪽의 국가들과 모두 사이가 안좋아 육로 교통이 막혀 있는 상태이다. 오로지 북쪽의 조지아를 지나 러시아와 교통하면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다. 그래서 일상 생활용품의 가격이 매우 비싼 상황이라고 한다.
조지아에 왔던 아르메니아 사람이 귀국하는 길에 길가에서 이런 상품들을 구입하면, 귀국하여 꽤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재판매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9시. Sadakhlo 도착.
9시6분. 국경 검문소, 세관 도착.
출국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기의 모든 짐을 자기가 갖고 통과해야 한다.
조지아에서 출국 심사를 받고 나오니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짐을 싣는다. 아르메니아 세관까지 실어다 준다.
조지아 출국 직전에 보이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입국 심사를 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권을 스캔하는 컴퓨터가 freezing.
9시46분. 입국심사를 모두 받고 통과하였다. 아르메니아 버스에 짐을 싣는다.
9시49분. 버스 출발. 아르메니아 지도를 한장씩 나눠준다. 받는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왔더니 주변 경관이 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Debed 강 골짜기를 따라 연결된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하그파트 수도원엘 먼저 들렀다가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사나힌 수도원을 방문하고 미코얀 형제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가 세반 호수를 향해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아르메니아 현지 로컬 가이드는 예쁘장한 '아르미네'. 2007년 대학에 최초의 한국어 학당이 생겼고, 1회 졸업생. 한국에 2회 다녀옮.
아르메니아는 외국인이 부르는 나라 이름이고, 자국민들은 하야스탄 Hayastan이라고 한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민족 영웅 하이크 나하페트의 이름에 땅을 의미하는 astan을 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아르메니아는 고대 그리스어식 이름인데, 이것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아르미나라고 부르던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5세기부터 독자적으로 창제된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의 면적에 300만 명 좀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소 코카서스 산맥이 지나는 지역이라 고원 및 고산 지대가 많다. 그래서 인구의 97%가 해발고도 800~2,400미터의 지역에 집중 분포한다.
인구 300만 중 100만 명 정도가 수도인 예레반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은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다고 한다. 외국에 있는 아르메니아인은 7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1915년 터키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 사건 때문에 외국으로 도피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프랑스에 가장 많은 숫자가 거주. 그들의 고국 왕래가 잦다보니 대충 프랑스어가 통할 정도라고 한다.
초기에 고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한 사람들의 경우에 많은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인임을 숨겨고 살았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인임을 숨기기? 쉽다. 개명을 하면 된다. 모든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끝에 'yan'이 붙는다. 'yan'을 떼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알려지면서 차별대우가 많이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겠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Cher도 아르메니아계라고 한다. 본명은 Cherilyn Sarkisian.
별다른 산업이 없는데도 아르메니아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고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많은 해외동표들이 기꺼이 내놓는 기부금의 영향도 클 것이다.
10시40분. Haghpat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haghpat는 '단단한 벽'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사나힌 수도원을 만든 건축자의 아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건축 기술을 배운 아들이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질 못했다고 한다. 새로운 수도원인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여 찾아와보았더니 아주 단단하게 잘 만들어져서 haghpat 라는 말을 내뱉었고, 이후 하그파트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물론 이곳을 자기 아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아들의 재능과 기술을 인정해주었고.
하그파트 수도원은 966~967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991년에 완성되었으며, 학자들의 양성 기관 기능을 했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양피지 책자를 제작, 관리하던 곳이기도 했고.
정교회의 경우 내부에 의자가 없는 곳이 대부분인데, 하그파트 수도원에는 장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샹들리에.
건물 상태가 메롱이다. 낡은 상태로 그냥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설 보수를 위한 예산이 없다고 한다.
안내하던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은 차라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비싼 입장료를 받아 그 돈으로 수도원을 보수했으면 싶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인정하지만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문화적 종교적 자존심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인 교회, 수도원의 입장료가 없다.
이렇게 놓고 가는 작은 정성으로는 택도 없다.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이드가 이야기 했는데, 한쪽에서 먼지가 퍼지지 않게 가림막으로 하고 뭔가 하고 있었다. 뭐지?
문화재 복원 전문가라고 했다. 할아버지 혼자 작업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아니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원 봉사.
이런 자원 봉사자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어 바닥이 곱게 닳았다.
골짜기 건너편의 산 위에서 연기가 계속 나고 있다. 별로 탈 것도 없어보이는 산이길래, 궁금하여 질문하였더니 나중에 알려준단다. 이런!
하츠카? Khachkar. 12-13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아르메니아 고유의 예술품이다. 'cross-stone'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010년에 UNESCO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대부분의 하츠카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예수상은 포함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하츠카는 영혼의 구원을 기원하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묘비석으로 사용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거나 교회 건축 등을 기념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그파트 수도원의 하츠카는 그 예술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그파트 수도원의 커다란 하츠카에는 에수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극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이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묘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츠카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 보다 상세한, 아주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들었다. 들었다 확실히. 듣기만 했다. 메모를 못했다.ㅠ.ㅠ
도서관 쯤 되겠다. 장서실일까. 바닥의 구멍 속에 양피지로 된 기록물들을 "숨겨" 두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문화재들이 보존될 수 있었고, 예레반의 고문서 박물관인 마테나다란에서 수집하여 복원 및 연구되고 있다.
하늘로 뚫린 구멍. 환기, 조명용?
하그파트 수도원. 아주 자연친화적인 상태이다.
하그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비잔틴 양식의 교회 건축 요소와 아르메니아 전통적인 고유의 건축 양식을 결합하여 건축한 독특한 교회 건축의 사례로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지붕과 벽 등에서 풀이 잘 자라고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그파트의 사진이 이렇게 생겼다고 하면서 사진 한장씩 찍고 가라고 했다. .
작은 둥근 고깔로 덮인 톡 튀어나온 부분이 큐폴라라고 부르는 건축 구조이다. 아르메니아의 교회, 수도원 건물에서 많이 보인다.
고원 지대를 가르고 푹 꺼진 부분으로 Debed 강이 흐른다. 왼쪽으로 보이는 고원 모양의 평지 쪽에 Haghpat 수도원과 짝을 이루는 Sanahin 수도원이 있다.
낭떠러지, 급경사지의 급커브 구간. 무사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일 것 같다. 폴짝 뛰어 오르는 작은 염소 조각상이 있다.
11시35분. 식당엘 들렀다. Hotel Qefo에 딸린 공간이다. 내부는 시원하다. 메뉴는 케밥.
식사를 하는데 전문가들이 나와 음악을 연주해준다. 귀에 조금이라도 익은 것으로는 '백만송이 장미' 하나 밖에 없었다. 두어 번 반복해서 연주한 것 같다.
후식.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 않는데, 자꾸 눈치주어 어쩔 수 없이 먹었다. 산딸기와 함께 먹으니 별미이기는 했다.
12시32분. 식당을 나섰다.
산 위에서 뿜어져 올라오던 연기의 정체를 확인했다.
12시50분. Alaverdi 구리 공장. 소비에트 연방 시절은 계획 경제를 추진했다. 이곳에 공장을 짓고 원료는 다른 곳에서 가져왔다. 그렇게 가동했다. 연방 탈퇴 이후 원료 공급이 없다. 그래서 공장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라고 한다. 최소한도의 가동만 하고 있다고.
이곳의 공장이 한창 활발하게 가동할 때는 골짜기 윗쪽의 마을에서 Debed 강변에 위치한 공장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출퇴근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운영할 정도였다.
지금은 가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혹시 케이블이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는 비행체를 위해 차량을 케이블 구간 중간에 멈추어 두어 잘 보이게 해놓고 있다.
1시7분. Sanahin 수도원. '먼저 만들어진'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하그파트 수도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내부가 횡~하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수도사들이 공부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저 안쪽부터 성적순으로 앉았다는 농담을 가이드가 한다.
역시 수도원의 조명 시설. 천정에 뚫린 구멍.
옛날 성경책. 아르메니아 문자이다.
밖으로 나오니 아르메니아 민화를 판매하고 있다.
보수 공사를 하긴 하려는 모양이다.
제련공장의 연기는 해롭다. 가능하면 멀리 보내기 위한 몸부림. 연도를 공장이 있는 곳에서 산등성이 반대편으로 연결하여 뿜어내고 있다.
옛날 먼 옛날 우리나라 장항에서도 제련소가 운영되었고 굴뚝이 산봉우리 위쪽에 위치했었었었었다. 먼 옛날에...
1시42분. 미코얀 형제 박물관. 전시용 미그기, 그리고 그 뒤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미코얀 형제 모두가 천재. 형은 정치가, 동생은 과학자. 형인 Anastas Mikoyan은 소련의 정치가로서 소련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까지 올랐었다. 동생인 Artem Mikoyan은 소련의 제트 전투기 미그기의 설계자이다.
아르툠 미코얀의 동상.
MIG-21기가 하나 전시되어 있다.
나도 왔다 갔다~~~~
미그기와 관련하여 유명한 한국인이 있다. 노금석 대위.
그는 1953년 9월 21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이륙하여 MIG-15기를 몰고 월남하여 김포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미그기 기밀을 얻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었었는데, 노금석 대위는 그 사실은 모른 상태였다. 그래도 현상금 10만 달러(당시 10만 달러면 쫌 쎘을 것 같다.)를 받았고, 부산으로 월남했던 어머니와 상봉도 했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받아 미국의 방위 사업체에서 근무하였다고 한다. '자유를 찾은 미그 15'라는 책을 남겼다.
1시48분. 출발하여 데베드 강 하곡으로 꼬불꼬불 돌아서 내려간다.
하염없이 버스는 달린다.
짬을 내어 가이드는 우리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아르메니아 출신 예술가. Aram Khachaturian 아람 하차투리안이 작곡한 발레음악. 아르메니아가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녀의 이름이 Gayane이다. 하차투리안은 자신의 발레작품명으로 가이느, 가야네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음악이 "칼의 춤" Sabre Dance이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귀에 익은 음악이다. 들어보자.(아래 링크)
아르메니아는 대부분 고원 지대이다. 여름이 건조하다. 그래서 일찍 건초 작업을 한다. 7월말인데 벌써 초지대가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8시30분. 길가의 농가. 여러가지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슬레이트를 지붕 재료로 사용한 가옥들이 많이 보인다.
3시45분. 딜리잔. 아르메니아는 70프로가 산지인데 숲은 13프로 밖에 안된단다. 아르메니아 전국에서 숲이 가장 우거진 곳이 이곳 Dilijan National Park이다.
가진 자원의 상업적 이용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국제학교라고 한다. UWC Dilijan College. 1년 학비가 3만불 정도이며 한국인 학생도 재학중이라고 한다.
3시54분. 길을 따라 작은 호텔들이 줄지어 있다.
길가의 화장실을 들렀다.
어느 분인가 옥수수를 샀다. 배당되었다. 하나씩 먹어야 한다. 크기는 무진장 크다. 뒷쪽 좌석에서는 사람들이 몇번 씹다가 그냥 멈추었다. 폐기 처리. 미안했다.
4시12분. 긴 터널에 진입. 터널 이름은 모름. 터널 들어가기 전에는 숲이 우거졌는데, 터널을 나오지 황량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단다.
4시23분. 세반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세반 호수는 길이가 60km에 이른다. 해발고도 1900미터에 위치. 가장 깊은 곳은 90미터 정도. 25개의 유입 하천이 있으며 호수 바닥에서 용출하기도 한다. 유출되는 곳은 한 곳.
소비에트 연방 시절은 계획 경제에 따라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이용해야만 하는 자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세반 호수의 물도 '환경'의 개념은 없고, '물자원'으로만 보여 마구 빼썼다. 그 결과 수심이 30m이상 낮아져 세반호수의 아름다운 섬이었던 세반섬이 육계도가 되어 버렸다. 독립 이후에 세반호수의 수위를 높여 다시 '섬'으로 만들고 싶어하나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armenia.org의 세반 호수 지도. 글자들이 재밌게 생겼다.^^
sevan이 '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반 호수는 '검은 호수'이다.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높은 곳에 위치하여 구름과 가깝다. 하얀 구름과 비교되어 검게 보인다.
2.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칠 때면 물 표면이 검게 보인다.
라고 하는데,,,,
검은 색이 아니라 녹색이다. 왜? 이유는 모른단다.
그 원인을 파고들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시30분. 세반섬에 도착하였다. 정상에 위치한 세반교회, Sevanavank 교회를 둘러보고 유람선으로 유람을 좀 하였다.
세바나반크 교회의 표지석.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교회, 수도원은 두 개의 건물만 남아 있다. 나머지는 모두 파괴된 상태이다. 건물 하나는 St. Arakelots, 하나는 St. Atsvatzatzin 에게 봉헌되었다고.
오가다 만난 사람과 같이 한 장 남겨본다.
세바나반크 교회에 대한 설명은 아래 사진으로 대신~
대도시에 있는 교회가 아니었던 고로 자그마하다. 작은 섬에 있던 작은 수도원.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정면에 zvari와 십자가.
교회 안에 있는 독특한 하츠카. 하나님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변발이다. 몽골 침입의 영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츠카 가운데 묘사된 예수도 변발. 거참~
이게 웬말인고~~
교회 안의 자연 조명과 인공 조명.
교회 출입문의 장식. 포도.
문에 계신 예수는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손가락은 수결을 맺고 있다. 이것은 또 불교의 영향일 것이라 설명한다. 문화는 오고가고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섞이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문에 장식된 다른 인물들은 뉘신지....기억에 없다.ㅠ.ㅜ
교회 뒷동산에서..
......
작은 교회 건물로 들어가보았다.
세반호수에서 노니는 제트스키.
왔다갔다 하면서 한번 타 보라고 꼬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월석? moon rock이라 한다. 호수 밑바닥에서 채굴된단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걸 이렇게 가공하여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나는 관광객은 혹해서 사고 싶어한다.
유람선을 향한다. 그냥 배에 오르면 재미없다. 그래서 물결이 일 때 부교가 흔들리고 물을 뒤집어쓰는 경험을 제공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끄러져 떨어지면 본인 책임이다.
부두를 떠난다.
배에서 본 세반 교회.
배 옆으로 다가와 자꾸 뱅뱅 돈다.
이렇게 근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배를 내려 제트스키를 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타보고 싶다.
섬 뒷편에는 아르메니아 대통령 별장이 있다. 빈집처럼 보인다.
5시43분. 날이 어두워진다. 호수를 떠난다.
5시52분. 호텔에 도착하였다. Harsnaqar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세반호수.
호텔 시설이 좀 달랐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을 제공. 가동이 되었다가 안되었다가 했다. 그래서 3층까지 가방을 들고 올라갔다. 이럴 때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끌고 가기를 하고 싶은데, 들은 척도 하질 않고 먼저 가버리는 룸메.
녹색 호반의 세반섬.
7시에 식사. 경사지에 만들어진 건물. 식당이 로비보다 한 층 아래에 위치한다.
오늘의 주 메뉴는 가재 튀김.
어느 분인가 와인을 기부하셨다. 아르메니아 와이의 대표 브랜드.
karas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인류 문명이 만든 최초의 와인 산지인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에서 생산된 elegant wine이라고 병에 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