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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기가 막히다. 수능 추위.

수능은 연기가 되었지만 추위는 연기가 안되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는 새벽에 길을 나섰다. 차를 중동고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하기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7호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3호선의 8번 출구옆 주차장에서 랑데뷰.

다섯 명의 답사객은 지오트립 2호차를 타고 철원으로 달렸다. 논스톱.

 

11월18일의 전체 이동 경로도.

철원군에서의 전체 답사 경로. 김화읍을 지나 생창리로 향했다. 앗차차... 유턴하여 생창리 마을회관,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를 찾아갔다.

십자탑 탐방로 답사 후에 점심 식사. 용양보 탐방로 답사 후에 갈말읍의 승일교, 동송읍의 직탕폭포와 고석정을 답사하였다.

 

DMZ 생태공원 답사경로이다.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은 이렇다.

 

철원군 DMZ 생태평화공원의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탐방로 지도는 이렇게 생겼다.

방문자센터에서 시작한다.

 

북으로 성재산과 계웅산이 에워싸고
남으로 화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고장 생창리는

고구려시대부터 김화군의 중심지였다. 병자호란 때 청 10만 대군에 맞서 용전분투했던 흥명구공과 유림장군의 충절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제 정선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일제시대인 1914년 3월 1일 노상, 노하, 내동, 신흥리를 병합하여 생창리로 개칭되었으며, 1953년 수복되면서 옛 김화군에서 철원군 김화읍으로 바뀌었다.

남북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10월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 재건촌을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이젠 사랑과 정이 넘치는 전원마을이자 남북 통일의 물꼬를 트는 통일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진격로였고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남진로였으며 6.25때는 피비린내 나는 철의 삼각지 전쟁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곳이다.

라고 철원군에서 소개하고 있다.

 

생창리를 찾아 열심히 길을 달린다.

(조서현 선생님 작)

 

길 옆의 구조물들이 분계선으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어렸을 때는 '멸공 통일'이었는데,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나니 '멸북 통일'로 구호가 변하였구나.

 

생창리 마을회관,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이다.

철원군의 DMZ 생태평화공원 탐방은 매일 10:00, 14:00 2회 출발(화요일 휴무)하며, 1회 40명으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안내인의 동반하에 탐방할 수 있다. 숙박 및 식사 가능.

 

왔다고 셀피 하나 만들어둔다.

 

생창리는 1970년에 조성된 마을이다.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

 

방문자센터 바로 옆에 '사라진 마음, 김화 이야기관'이 있다. 아직 개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김화이야기관 앞에 있는 비석. 2010년에 세운 것이다. 1970년에 입주하였으니 40주년 기념비가 되는 갑다.

 

1,2호 차의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기념 사진.

 

출발 준비를 한다. 여러 가지를 챙긴다. 방문 차량 위에 모자를 하나씩 쓴다.

 
방문객들은 목거리를 하나씩 받는다. 사전 예약했기에 개인별로 지정되어 있다. GPS 발신 기능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는...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장비가 추가된다. 임시 출입증을 달고,
 
블랙박스 카메라 앞에 차단막을 설치한다. 군부대 주둔지를 들어가기 때문에 영상 기록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렸다.

후방CP 앞에 주차장이 넓직하게 마련되어 있다. 넉넉하게 주차한다. 개인 정비하고 출발한다.

 

탐방로 입구. 날씨가 추운 날이었기에 대체로 중무장.

 
(이태우 선생님 작,  TAEWOO GEOGRAPHIC)
 
춥다. 날도 춥고 탐방로 양쪽을 가로 막은 철조망도 춥고, 일정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지뢰 경고판도 춥다.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이정표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 안내판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답사 안내는 강원대학교 김창환 교수님께서 맡아주셨다. 그 수고와 열정에 감사감사감사 드린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다리가 아파 앉아 쉬고 싶었지만 벤치에 앉지는 못했다. 벤치에 내린 서리가 녹아 물이 흥건했기에.

 

높은 산은 아니지만 상당한 경사 부분도 있어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도로를 만들면서  깎아낸 절토면에 드러난 것이다. 그때 그시절의 녹슨 포탄이다. 위험하지 않기에 방치된 것이겠지.

 

이제 능선 위로 다 올라왔다. 십자탑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 위의 쉼터와 초소. 나란이 나란이.

 

다 왔다. 이제 계단 몇 개만 올라가면 된다.

초소 윗쪽으로 은폐할 수 있는 뚜껑 모양의 구조물이 재미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을 가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에서는 뚜껑 열려 있다.

 

십자탑 입구.

 

십자탑은 산정부에 위치하므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주어야 한다.

 

십자탑은 성재산 산등성이에 조성되었다. 그 서쪽 아래 보이는 곳이 유곡리이다. 평지로 지나는 민통선 구간이라고 한다. 사진 상에 남과 북의 민통선이 모두 보인다. 잘 보면...

 

십자탑이다.

 

승리의 십자탑이다!

 

1979년에 세웠다는 표지석.

 

탑은 이렇게 생겼다.^^

 

추웠다. 콧물을 찔찔 흘리면서 올라왔다. 눈이 살짝 내렸었나보다. 아직 녹지 않았기에 내 발자국을 남겨 보았다.

 

김창환 교수님, 강의 중. 진지한 수강생들.

 

남쪽으로는 사진 촬영을 해도 되나 북쪽으로는 촬영을 하지 말라고 안내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오성산을 찍어볼까 했는데, 말았다. 찍지 말라는 것 찍어다가 공개하면 여럿 불편해질 수 있기에...

그런데 그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세상에 무엇하러 그런 통제를 하는지 모르겠다. 왜 북한 쪽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북한을 남한에서 촬영하면 북한에서 싫어해서 북한을 보호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뭐야!

중간에 있는 OP? GP? GOP? 

그런 것은 연말 연시만 되면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이미 다 공개된 부분 아닌가?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런 "관행적인 통제"가 풀리게 되겠지. 그 때 또 가지 뭐! 아님 말고!

 

하산한다. 올라 올 때와는 다른 코스로. 보다 짧은 코스, 하지만 경사가 더 급한 코스로.

 

성재산 삼거리 뽀인트.

 

지뢰 안내판도 있다. 많은 전쟁 영화에 지뢰가 등장한다.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엑스트라 배우가 밟으면 바로 터진다. 주인공이 밟으면 뗄 때 터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엑스트라고 주인공이고 없다. 그냥 밟으면 터진단다. 

 

지뢰의 무서움과 비인간성에 대해 서로 토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

 

DMZ의 생태 환경 안내.

 

터덜터덜 내려간다. 세 시간 코스의 탐방로이다. 배고프다. 많이 고프다.

 

방문자 센터의 식당. 줄서서 배식. 좋다. 배불리 먹었다. 좋다.

 

식사 후에 바로 오후 일정 시작이다. 1호차, 2호차 출발.

 

용양보 탐방로를 찾는다.

 

암정교.

 

지금은 난간 조차 부서져 앙상한 모습으로 남아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다리는 1930년대에 세워진 콘크리트 교량으로 철원~김화~화천(춘천)을 연결하는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김화군의 상징물이기도 하였었다.

 

육로 교통이 발달했던 중심지이기에 도로 원표도 보전되어 있다.

 

화천 43.9km, 원산 153.5km, 회양 57.4km 등의 거리 표시가 보인다.

 

1호차를 따라 달린다. 용양보를 향해 달린다.  탐방로의 양 옆으로 지뢰 주의 표시판이 달린 철조망이 이어져 있다.

 

용양보통문이다. 추진철책이 지난다. 무서워서 사진 안찍었다.

 

용양보통문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계웅산 철책신설완공 기념비.

 

용양보와 통문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만들어졌다.

 

용양보주차장이다.

 

용양보 안내판.

 

용양보. 옛 금강산전기철도의 교량을 이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1919년 착공해 1924년 1차로 철원~김화 구간을, 1931년 2차로 철원~내금강 전구간 116.6km를 개통하였다. 부설 목적은 김화, 금성, 창도 지역의 유화철을 전쟁 전략물자로 수송하고, 서울에서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금강산에 유역변경식 발전소를 건설해 철도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나머지 전력은 서울과 수도권에 판매하였다. 하지만 1944년 전쟁물자 부족이 심각해진 일제는 창도~내금강 구간의 궤도를 철거하였고, 이후 한국전쟁으로 전 구간이 폐선되었다.(DMZ 생태평화공원 스토리텔링, 107-108)

 

다 망가진 출렁 다리. 한국 전쟁 기간 중 이 지역을 수복한 이후  DMZ 경계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의 풍상에 낡아 밧줄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습지 저쪽에서 추위, 아니 인간들을 피해 쉬고 있는 고니. 망원으로 쭈욱 땅겼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진 상태가 그러하다.

 

용양보와 내 그림자.

 

아쉬움을 뒤로 남기며 DMZ 생태평화공원을 떠난다.

용암대지이다. 한탄강이다.

승일교, 직탕폭포, 고석정을 방문하였다.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에 경로 표시. 한탄강 변의 용암대지 위를 달려본 것이다.

 

그렇다. 용암대지이다. 한탄강을 따라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승일교에 대한 간단한 설명.

 

승일교. 1999년에 통행이 금지되었고, 2002년에 등록문화제 26호로 지정.

아치형 교량인데, 북쪽 구간과 남쪽 구간의 디자인이 다르다. 이것은 북한에서 절반을 만들었고, 나머지 구간은 수복이후 남한에서 만들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지만, 미군의 기록에 의하면 일제가 건설하다가 만 것을 미군 공병대가 마무리한 것이라고 한다.

 

새로 건설된 승일교.

 

승일교와 관련된 부분을 설명해주시는 중.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추워지기 시작한다.

 

승일교...춥다.

 

한탄강이다. 직탕폭포이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강변으로 얼핏 보이는 주상절리. 아....시멘트 칠을 해 놓았다.

 

나이아가라 폭포. 폭포수가 콸콸 쏟아진다.

 

나이아가라 폭포. 배 타고 저 폭포수 아래를 들락거리는 체험을 해보아야 했는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폭포는 점으로 떨어지는데, 나이아가라...아니 직탕폭포는 주욱 이어진 면을 이루며 떨어진다는 면에서 특색이 있다고 한다.

 

고석정이다. 자꾸 고속정이라고 오타가 난다.ㅠ.ㅠ

 

고석정 안내판. 지오파크이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1억 년이나!

 

'정'은 없고, '고석'만 있다.

 

'고석'이다. 화강암 기반. 현무암에 뭍혔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배 타는 곳. 다음에 타자.

 

고석정 안내, 설명.

 

부정합이란?

 

강을 건너는 섶다리.

 

임시 부설 섶다리.

 

고석이 외로워 보인다. 

 

추워 보인다.

 

근사하고 튼튼한 정자가 있어 이것이 고석정일 것이다 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콘크리트 정자.

 

고석정랜드의 힘쓰는 아저씨. 임꺽정?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함께 답사에 참여하셨다. 오랜 만에 뵙는 반가운 분들도 있었다. 아쉬운 이별. 1호차를 탈까, 2호를 탈까 하는 망설임도...

 

오후 5시 10분. 고속터미널을 종착점으로 하는 차량 탑승, 달린다. 날이 저문다.

 

어두워진다.

 

차에서 깜빡 잠들었다. 아주 잠깐. 차가 많이 막힌다는 내용의 대화 소리에 잠이 깼다. 예정되었던 경로를 살짝 바꾸는 것 같았다. 성수동이었다. 한강을 건넜다가 다시 오는 것 보다는 이 동네에서 헤메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서둘러 인사하고 내렸다.

오후 7시. 스맛폰에서 지도 검색하여 건대입구역을 찾았다. 길가의 수많은 식당들을 구경만 하면서 지나갔다.

 

오후 8시. 홈, 스윗 홈.

 

2017년 11월 18일 추운 토요일의 답사를 마쳤다. 온 몸이 쑤신다.

 

 

 


 

 

사족. 김화읍 생창리를 찾아가는 도중에 길가의 커다란 돌덩이리가 눈에 들어왔다. "박정희장군전역공원". 이게 뭐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54169.html

 

정식, 공식 명칭은 '군탄공원'이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표지석을 세운 것이라 한다. 웃긴다.

사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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