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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에 이현군 박사의 교동도 답사기가 실렸었다. 간결하게 교동도의 특징을 아주 잘 담은 답사기였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18/2014111802094.html

그곳을 2016년 3월 26일 토요일에 답사하였다. 이번에도 지오트립의 멤버들과 함께 하였다.

6시 좀 넘어 집에서 출발하여 전날 설치한 AR 기능을 하는 네비의 도움을 받아 중동고등학교로 달렸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리다가 남팀장의 차로 갈아타고 강화도로 달렸다. 중간에 두 분을 더 모시고서.

전체 이동 경로의 모습은 요정도 나온다. 중동고 기점으로 왕복 211km 쯤 되었던 것 같다.

 

강화도에서 교동도의 구간만 확대하였다. 카메라 모양의 아이콘들이 있는 곳이 정차하여 답사한 뽀인트들이다.

 

강화터미널에서 다른 멤버들과 모여 세 대의 차량으로 나누어 타고 교동도로 출발하였다. 검문소에서 대표자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임시출입증을 받았다. 교동대교를 건너니 섬이라는 인상보다는 그냥 어느 한적한 지방 농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화개산을 올라 팔각정에서 교동도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내려와 화개사, 교동향교, 교동읍성을 답사하였다. 대룡시장내 식당 '소풍'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부근의 대룡시장 골목을 답사하였다. 교동도내 농경지의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두개의 커다란 저수지 중에서 난정저수지를 들러 해안의 철책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았다. 강화도 교산리로 이동하여 고인돌군의 일부를 보고 강화 풍물시장에서 답사를 마감하였다.

적접 지역이라고 하던가...교동도 전체가 민통선 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자세한 지도를 구하기도 어렵다. 포털 사이트에 공개된 지도에서도 교동도 지역은 대충 나올 뿐이다. 그래서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더 자세한 지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화개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지역이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경작지중 논의 비율이 전국 수위 수준이라던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화개산 등반코스와 교동항교, 교동읍성, 그리고 대룡시장 쪽으로의 이동 경로가 잘 나와 있다.

 

지오트립 팀에서 지방 답사를 하게 되면 거의 중동고등학교 지하주차장에 차를 맡긴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른 시간. 햇님이 출근하신다.

 

중동고등학교 정문 옆에서는 양주동씨의 '어머니 마음'을 읽어볼 수 있다.

 

해를 등지고 서쪽의 웨스트를 향해 한강변의 도로를 따라 달린다.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상가의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터미널이 나오고 거기서 왼쪽 끝으로 가면 화장실이 있다.

 

오늘의 답사 예정 인원이 모두 모였다. 인사를 나누고 세 대의 차를 이용하여 교동도로 향한다. 교동대교가 연결되면서 섬이지만 섬이 아니게 된 교동도. 한강 하구의 민통선 내에 위치하기에 경비를 담당하는 군의 검문을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밤 12시 전에 섬을 나와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들었던 것 같다.

 

 

검문소에서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이런 임시출입증을 받고 들어간다. 물론 잘 보관해야만 한다. 나올 때 반납을 해야 하므로. 

 

교동도는 지금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군현으로서 교동현(喬桐縣), 교동부(喬桐府)였던 곳이라고 한다. 높을 교자에 오동나무 동자를 쓰는 교동이다.

(위에 링크한 이현군 박사의 자료에서 가져온 교동부 지도)

 

화개사에서 오늘의 진짜 답사를 시작한다.

 

일단 가볍게 뒷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화개산.

 

경내에 재밌는 글귀가 보인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고. 벌렁벌렁 눕다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화개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코스 안내.

 

두발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중간에 위치한 암각화.

 

화개산 봉수대. 화개산을 오르는 중간에 멀리서 아스라이 들리는 확성기 소리도 있었다. 뭔 말인지 전혀 알 수는 없었다.

 

화개산 정상에 오르면 내가 있.....

 

정상에는 산불감시탑과 팔각정이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의 봉우리 위이니 전망은 당연히 좋다.

 

남쪽으로 석모도가 보인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측량표도 한쪽에 있다.

 

의외로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팀이 모여 끼리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더라.

 

교동도의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경지의 모습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멀리 오늘의 답사 포인트 중의 하나인 난정 저수지가 보인다.

 

북쪽을 보면 산 아래로 교동도의 2대 저수지 중 하나인 고구 저수지가 보인다. 두 저수지가 있기에 교동도에서 벼농사를 널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저수지에서 논으로 물을 보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논에서 나오는 물을 다시 저수지로 퍼올린다고 한다. 2년 전 심한 가뭄을 겪어 한강물을 교동도로 퍼오는 시설을 해놓았다고 하였다.

 

산을 천천히 내려왔다. 화개산 중턱에 위치한 자그마한 절집, 화개사. 깔끔하다.

 

기도중이라는 팻말이 있고 아무도 안보인다. 조용하다. 닫혀 있다.

 

 

교동향교로 향한다. 2년 전 와보았던 곳이라 그런지 반갑다. 막 아는 채를 해주는 것 같다. 왼쪽에 차량출입금지, 오른쪽에 하마비가 있다. 차든 말이든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는 말씀.

(이현군 박사 글 인용) 대부분의 향교 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대소인원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교동향교 하마비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고 적혀 있다.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모두 공자를 모신 사당인 향교 입구에서는 말에서 내리라고 세운 게 하마비다. 교동도에서 높은 사람은 수령과 변장이니까 둘을 꼭 찍어서 이렇게 적었나보다. 변장은 군사 우두머리이다. 교동도의 남쪽 남산포가 옛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 있던 곳이다. 삼도는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섬이 수군 중심지였던 거다.
분단 때문에 우리 생각도 막혀버려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거지 한반도 전체 지도를 놓고 보면 수군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위치가 교동이다. 향교 뒷산은 269m의 화개산인데 교동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향교 설명문을 읽어보았다. 지금은 화개산 남쪽에 향교가 있지만, 영조 17년(1741)까지는 화개산 북쪽에 있었나보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 초상화를 가지고 오다 이 곳에 모셨다고 전해지는 곳이 교동향교이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를 향해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산 위의 팔각정이 보인다. 아...옆의 산불감시탑도 보인다.

 

향교의 외삼문 앞에서 잠시....문들이 모두 작다. 이 때는 모두들 키가 작아서였을까 하니면,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라고 그런 것일까. 그리고....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향교 안내자료를 스캔하였다.

 

새로 선출된 31대 전교의 임기가 금방 시작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향교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깔끔하다. 지금도 운영 중인 것만 같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

 

공자가 제자들을 은행나무 아래서 가르쳤다고 한다. 그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하며, 공자를 모신 곳에서는 은행나무를 상징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은행나무잎을 교표에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교동향교에도 은행나무가 당연히 심어져 있다.

 

교동읍성이다. 세상에나. 이게...이게... 이렇다.

 

읍성 안내판.

 

읍성의 남루였던 곳이다. 돌에 새겨져 있다.

 

교동도도 강화 나들길 구간의 일부로 치는 것 같다.

 

우물 정(井)자 모양의 석재로 쌓은 우물들이 보인다. 예전 사용하던 식수원이었으리라. 이곳은 황룡의 전설과 연결시켜 놓았다.

 

교동부지에는 남아 있는 시설이 아무 것도 없다.

 

 

교동부지를 차지했던 일제 강점기의 가옥. 폐가가 되어 있다.

 

교동부지 뒷 편의 언덕 위에는....혼자 서 있다. 어떤 사연의 보호수인지 표지판까지 달려가서 확인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그냥 왔다.

 

연산군적거지. 

 

이곳 저곳의 석재를 모아 놓은 것이겠지 하며....지난다.

 

점심은 소풍가서 먹었다.

(사진 제공 남호석 사장. 그냥 가져왔지만 제공했다고 치기로 하고..)

시간의 흐름이 조금 멈춘 곳. 교동도의 대룡시장이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끌고 있다.

 

 

 

 

 

 

 

 

환경이 오염되지 않았고 논이 넓기 때문일까, 제비집이 굉장히 많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나즈막한 처마 아래의 제비집에 신기하여 많이 건들려는 모양이다. 그 특유의 '예쁘다~' 하면서 만지려고 하는 손길. 야생의 생물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그래서 제비집에 손을 대지 말라는 주의글이 이곳저곳에 적혀 있다. 손대지 말지 말입니다.

 

정육점의 고기가 먹음직스럽다.

 

 

추억의 포스터들.

 

 

난정 저수지.

 

난정저수지에 태양광 설치를 반대하고 있었다.

 

저수지에서 주변 농경지로 물을 공급하는 수로.

 

민통선 내의 지역이므로 철조망은 너무 익숙하다.

 

난정 저수지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농경지.

 

저수지로 물을 퍼올리는 양수장.

 

저수지와 연결되는 농수로.

 

농로를 따라 농경지를 가로질러 달렸다.

 

간척으로 조성된 평야 지대이므로 외곽을 따라 방조제가 건설되어 있다.

 

방조제를 따라 철조망. 철조망 밖은 다른 세상이다. 저 편이 북한이라고 한다. 능력자가 작정하면 헤엄쳐서 건널 정도 밖에 안된다. 중간에 뻘이 있으므로 쉴수도 있으리라. 경비 철저!

 

경비 초소는 야간에만 근무한다고 한다. 주간에는 전자제품을 이용한다. 이상 증후가 있는 경우 대기조가 즉각 출동하여 대처한다. 이상한 사람들이 철조망 밑에서 뭔가 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왔으니.....출동해야지. 건장한 해병대원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다. 철조망 사이로 누군가 북쪽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이 카메라로 포착된 것 같았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면 뭐가 나온다고 그것까지 뭐라하는지...전원의 핸드폰 사진들을 검열했다. 아무도 없다. 다들 노회하다. 딱 뜨는 순간 문제가 될만한 사진들은 이미 다 "알아서 지운" 후였다. 씁쓸하다.

과거에는 해상 교통의 요지로서 수군이 주둔하기도 했던 곳. 분단되면서 민통선 북쪽에 위치해 외부와 단절되었던 곳. 교동대교가 건설되면서 다시 외부와 '교통하고' 있는 곳. 교동도의 모습을 일부 살펴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날씨 좋았고 좋은 분들과 재미있는 답사를 하였다. 답사라는 것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실감하였다. 민간인을 지날 수 없었던 민통선이라는 것도 지나다닐 수 있고, 보안과 관련하여 미리 쫄며 조심하는데, 그러한 정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풀렸다. 앞으로 우리 땅의 답사를 다니면서 더이상 쫄지 않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교동도를 아쉬운 마음을 두고 떠났다.

 

강화도로 다시 넘어왔다.

교산리 고인돌군.

이쪽 저쪽으로 돌아가는 두 길을 표시한 것이 아니다. 양쪽에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 노래라니....고인돌 노래라니...

고인돌군.

 

고창의 고인돌군과 비교하면서 고인돌 문화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다.

 

고인돌군 주변에 묘지가 있었는데, 그곳에 여럿 박혀 있는 막대기. 뭘까? 공설묘지 경계봉이다.

 

강화군은 이런 마크를 사용한다. 물결치는 세 줄기는 강이겠고, 불은 딱봐도 불이다.

 

교동도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에 인삼 재배지에서 잠시 멈추었다.

 

음지 식물이기에 이런 막을 설치해주어야 한다. 아직 철이 아니라 인삼이 없다.

 

강화 풍물시장 주차장에서 오늘 답사 모임을 해산하였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신 분들도 계시고 개인 승용차를 갖고 오신 분들도 계셨다.

저녁 약속을 하고 차량 두대가 대청역을 향해 달렸다. 서울이 당신을 웰컴한다는 전광판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대리기사와 동승할 기회였다. 그렇게 3월 26일의 답사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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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 소나타 트렌스폼. 2009년식. 

2년 전엔가 처음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동 걸고 움직이다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자 시동이 멎었다. 겨울철 추운 날 아침 출근길이었다. 그리고는 없었다. 두어달 지나서 다시 한번? 겨울에만 가끔 나타났다. 3,4분만 지나면 문제 없었다.

이쪽 사람들이 '냉간시 시동꺼짐'이라고 표현하더라. 네이버 검색어에도 있다. 3,4분 예열을 하고 움직이면 문제없다. 시동 걸고 rpm 안정되면 바로 출발했을 때 가속페달로 계속 가속하는 중이면 문제가 없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회전을 한다든지, 출입구의 차단기를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면 시동이 꺼지곤 했다.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번 겨울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기어를 중립으로 하고 시동버튼 누른다. 그리고 다시 기어를 주행모드로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도로에서 뒤에 다른 차가 가까이 붙이 있을 경우, 내차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면 추돌의 위험도 있을 수 있기에 조치를 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카센터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을 때는 가려고 마음 먹었다가 퇴근하면서부터는 잊어버리기 때문에 계속 늦어진 것이다. 동네 카센터를 갔다. 문제 현상에 대해 인터넷에서 많이 검색하고 갔다. 그런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면, 듣는둥 마는둥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하자는대로 했다.

쓰로틀바디 청소를 했다. 배기가스가 지나가면서 그 찌꺼기인 카본이 쌓여 막힐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다음 날도 문제. 이건 아니었다.

퇴근하며 차를 맡겼다. 보다 심도깊게 차를 살피고 대책을 찾아보겠다고 하길래. '아이들'을 교환하였다고 했다. 이게 뭔가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아이들 베어링'을 교환하였다는 것 같았다. 이틀 후 문제가 재발했다. 지난 3월 16일 저녁에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주차장에서 벗어나자 마자 문제가 발생하여 기사가 놀라더라. 다시 출발한 이후는 아무 문제없이 귀가했다.

작은 카센터에서는 안될 것 같아 북부 서비스센터 입고를 고민했다. 점검 예약을 하려고 하니 인터넷 상으로 예약 가능일자가 나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전화를 했다. 4월 18일인가 되어야 예약일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엔진 문제도 잘 처리하는 곳을 대신 이용하면 안되겠냐고 했다. 할 수 없으니 그러자고 답했다. 

오늘 오후에 조퇴하고 차를 갖고 갔다. '냉간시 시동꺼짐'. 대책은 ocv 교체라고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를 겪었다는 것이겠지. 이곳에서 처리하였다는 것이겠지. ocv 교환을 이야기하면서 이게 안되면 쓰로틀바디도 교환해야 할 것이라고 하길래 다 바꿔달라고 했다. 비싸단다. 그래도 해달라고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 쓰로트바디가 부품 공급처에 없다고 한다. 재고가 없기 때문에 주문해야 구할 수 있다고....

다행이었다. ocv 교환으로 정리했다.

부품비와 공임, 그리고 부가가치세까지 하여 152,680원 나왔다. 140,000원으로 깎아주더라. 고맙다고 했다.

이제 문제가 없어야 할텐데....

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m

1주일 되었다. 이상없다. 잘 작동한다. 일부러 전에 시동이 꺼졌던 상황을 여러번 재현해 보았으나 시동이 꺼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nf 쏘나타 클럽을 찾아 검색해보았다. 2011년부터 이같은 문제를 ocv 교체로 해결하였다는 글이 보인다. 현대에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개선된 부품이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선된 부품으로 교체하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고.


그러면 말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기존에 판매된 자동차들에 대해 리콜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실망이다. 먼저 구입했던 베르나를 이용하면서는 다음에도 현대차를 재구매하는데 대해 꺼리낌이 전혀 없었다.

이젠 아니다. 현대차 실망이다.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뒷처리는 제대로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현대차는 자사의 차량 문제에 대한 뒷처리가 너무 엉망이다.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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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고속 인터넷의 세계에 빠져서 그 속으로 떠도는 동영상들을 많이 만나보았었다. 어느날 모 ftp 사이트에서인가 다운로드 받은 것이 있었다. 용량도 어마어마했다. 약 45기가바이트. 다운로드 받고 보니 블루레이에서 그대로 떠낸 것이었다.

"007 : 카지노 로얄"

컴퓨터로 감상하였으니 오디오 부분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하지만, 화면은, 화면은....

블루레이를 알게 되었다. 빠졌다. 투자했다. 지금의 작은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블루레이 매체 사모으기는 계속되고 있다.

블루레이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사이트가 dvdprime.com이다. 2월 말에 게시글 하나가 눈에 띠었다. 발매된지 꽤 되었지만 매체에 문제가 있다고. 제대로 재생이 되질 않는다고...나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고 흠뻑 빠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당 부분이 '공각기동대'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온 것이었다. 내용도 화면도 대단했다. 생각할 꺼리도 많았다. DVD 구입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2편도 구입했다. 블루레이로 나오길래 그것도 구입했다. TV 시리즈도 있다는 데 그것은 구입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충성할만한 것 같지는 않았다.

헌데 그들 중에 일부를 OVA 형식을 내놓은 것이 나왔다. 샀다. Stand Alone Complex. 블루레이 세장으로 구성.

이 시리즈의 매체중에 재생안되는 것이 있다고 했다.

확인했다.

이것은 Individual Eleven의 디스크이다. 뒷면인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문제없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디스크 두 장은 문제가 있다. 디스크 뒷면의 색이 '바랬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디스크의 색이 바래다니...ㅎㅎㅎ

디스크의 바깥쪽 부분이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Solid State Society'는 전혀 재생이 되질 않았다. laughing man은 중간부터 재생이 되질 않고...

사이트 dvdprime.com에 보니 같은 문제를 보고하는 사용자들이 꽤 여럿 있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구매기록을 찾아보았다. yes24.com에서 5년 전에 구입했다. 오래 전의 것이라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고객센터에 문의글을 남겼다. 제조사로 확인한 것 같았다. 답글에 보니 제조사에서 착불로 보내달란다. 확인해보고 조치하겠다고. 

dvdprime.com에서 먼저 문제 제기한 사용자는 제조사에 직접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그 사용자도 매체를 자기들한테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글을 후속 게시물로 올려놓았다.


바빠서 잊고 있다가 10일 저녁에 제조사 지정 택배사 사이트에서 예약을 했다. 예약이 제대로 되었는지 11일 오전에 확인도 했다. 오후에 택배기사님이 오셔서 수거해갔다.

어찌 처리될까...

원래 블루레이 저장매체는 인간수명보다 길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중간에 색이 변색된다는 것도 우습다. 이제는 구입하면 꼭 포장을 뜯고 매체의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기존 비개봉 상태의 것들도 하나씩 뜯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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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사람이 아들 옷을 사준다고 롯데백화점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서너 시간을 보내고 왔다. 집에 와서 내놓은 것이 영화관람권 두 장.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을 백화점에서 주었는데 날짜가 내일까지라고 하면서 이것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날짜 지나기 전에 사용한다고 바로 롯데시네마 사이트에서 표를 예매했다. 화제의 영화 '귀향'. 어찌 볼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마침 잘 되었다 생각하고 예매했다.

예매하고 났더니 아들이 관람권의 날짜가 오늘까지가 아니라 내년까지 라고 했다. 다시 보니 2017년이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아들은 안본다고 하여 집사람과 둘이 다녀왔다.


주연을 맡은 소녀 강하나. 참 곱다. 재일교포 4세이며 연기를 공부 중이란다. 조정래 감독이 일본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한다. 일본어에 당연히 능통하고 한국말도 잘 하기에.

1943년. 거창 산골의 소녀는 이렇게 끌려 갔다.


영화가 끝나고 후원자 명단과 함께 그때 고생하셨던 분들께서 그린 그림들이 화면에 하나씩 올라온다.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 그랬다. 감독은 이 그림을 보고 영화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

강제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태워졌다.ㅠ.ㅠ

어이할꼬. 

살풀이 춤을 전공한 춤꾼이라는 최리.

4.3사건을 다룬 지슬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 귀향에서도 굿을 모티브로 하여 풀어낸다. 진혼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이들도 '용서'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꽃같은 소녀들을 지옥으로 끌고간 백정들, 그들을 용서할 수 있나? 굿을 통해 귀향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좋았다. 영화 자체는 너무 좋았다. 잘 만든 좋은 영화다.

그들 중에서 착한 놈은 있다며 빠가야로 하나 끼워 넣은 것도, 그 놈들에 대한 판단이 유보된 것은 마음에 안든다. 하지만 그놈들에 대한 관심을 접고 '소녀들'에 촛점을 맞추었기에 영화가 끝나고도 가슴속을 먹먹하게 하는 여운이 깊고 길게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강하늘이 연기한 정민이가 그 힘든 고통을 겪고 귀향하는 것으로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혼만 굿을 통해 돌아오는 귀향이었다. 수십년 그 땅에 버려져 있다가 이제서야 혼만 귀신이 되어 돌아오는 귀향이었다. 하.....

이렇게 보기 좋았는데.... 이런 소녀들을......

이렇게 그냥.....그냥 이렇게....

엄마를 자꾸 부르며 무릎에 머리 기대고 칭얼대는 아기...저리 예쁜 아기를....

영화 마지막 타이틀 롤 올라가는 것 끝까지 보고 나왔다. 7만5천 여 명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영화. 뜻있는 연기자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영화.

반응이 꽤 좋다. 롯데시네마 노원관의 2개 관에서 상영 중이다. 9관 조조 상영에 자리가 거의 다 채워졌다. 대박 나야하는 영화다. 그러할 것이다.

얼라덜이 많이 찾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까?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하게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나중에 2차 매체로 다시 발매되겠지. 그 때 다시보자.


나중에 알고 보니..................

http://m.star.mt.co.kr/view.html?no=2016022608441534393#imad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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