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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가 밝았다.

1월이 시작되었다. 네번 째 날. 점심도 먹지 아니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버스. 처음 이용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요금이 7,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새 16,000원이 되었다.

 

고속도로를 이리저리 달려 공항에 도착하였다.

 

식당부터 들렀다. 난리다. 줄~줄~줄~ 몇 개 안되는 식당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줄이 짧아 보이는 중국음식점에서 해결.

일행을 만나 인사를 하고 수속을 밟고 게이트에서 대기한다.

 

비행시간 12시간20분. 징그럽다. 게다가 창가자리. 잔다, 잔다, 잔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환승을 한다. 비행 정보 화면을 보면, 대충 대권항로를 그리면서 날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위협 때문인지, 동해를 직선으로 지나지 아니하고 일본 쪽으로 약간 우회한다.

 

토론토 공항에서 환승을 기다린다. 식당 테이블에 태블릿이 설치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간단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화면의 메뉴를 통해 해당 식당의 음식을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토론토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쿠바의 아바나로 날아간다. 또 창가자리. 머리 위를 보니 환풍기의 바람나오는 구멍마다 눈길이 간다. 에어 캐나다 이사람들. 비행기 청소 좀 하자!

 

1월4일 17시0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1월4일 15시25분에 토론토에 도착하였다. 환승 대기하다가 1월4일 18시40분에 토론토를 떴다. 쿠바 아바나에 도착한 것은 1월4일 22시15분. 한국에서 1월4일 출발하여 12시간20분 비행, 3시간30분 환승대기, 3시간35분 비행을 하였는데, 현지 도착 시간은 1월4일이다. 시차를 체감한다. 한국보다 14시간 늦다.

 

생각보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세 팀 정도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였다.

입국 과정이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처리되었다. 다만 보안 검사에서 다른 팀의 한국인 쓰루 가이드가 갖고 있던 깃발을 달고 있던 안테나를 압수 당하는 모습을 보니 우습기도 하였다. 우리 팀 중에서 셀카봉이 길다고 압수 당한 멤버도 있다고 한다.

 

현지인 가이드 아벨리오. 자신을 나훈아라고 불러달라 했다. 고향역을 잘 부른다나. 북한에 12년 간 거주하면서 한국말을 익혔다고 한다. 잘한다. 북한에서 대학생활을 했는데, 북한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서로의 부담감, 그리고 감시 등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대화 조차 전혀 없었고.

한국인 관광객이 지난 해부터 급증하여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다며 좋아한다. 쿠바에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가이드가 4명 밖에 없다고 한다.

자신을 포함한 관광 가이드, 버스 기사 모두 정부 공무원이라고 한다. 버스 및 회사도 모두 정부 소유, 어쩐지 버스 껍데기 포장이 모두 같다 했다. 버스는 중국산이다. 쿠바 전체에서 개인 사업자는 5%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적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으로서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 연예인, 유명한 운동선수 등은 개인적인 수입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월급이 매우 적고, 어떻게 일하든 똑같이 받게 되므로 근로 의욕은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당연할 것이다. 1960년대부터 배급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적은 월급을 보충하는 수단인 것이다. 배급을 받으면 되므로 일을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구시가지는 스페인 스따일, 신시가지는 미국 스따일이라고 한다.

 

아바나에는 비가 내린다. 캐리어 가방이 물에 젖어 나왔다. 내일 우산을 준비하라고 한다.

 

역사적인 건물. 그란 까리베 리비에라 호텔에 체크인.

 

내일 아침 789. 7시 기상, 8시 식사, 9시 출발.

 

창밖을 본다. 유명한 말레꽁 해변이다. 드디어 쿠바에 온 것을 실감한다. 잔다.

 

푹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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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4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캐나다 토론토에서 환승, 쿠바 아바나 도착.

산티아고데쿠바까지 여행하고 항공편으로 아바나로 귀환.

비냘레스 일대를 보고 아바나에서 날아오름. 그랑케이먼 제도에서 환승, 자메이카 킹스턴 도착.

킹스턴 - 오초리오스 - 몬테고베이. 몬테고베이에서 날아올라 미국 마이애미에서 환승, 멕시코 칸쿤.

칸쿤에서 하루 쉬고, 치첸이사를 거쳐 메리다. 셀레스툰 공원, 욱스말을 여행하고 메리다에서 멕시코시티로 날아감.


멕시코시티에서 푸에블라, 촐룰라, 테오티후아칸 등지를 돌아봄.


쿠바


자메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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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est Day

라는 제목의 영화.

'시티 오브 데드'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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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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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읏!



http://www.imdb.com/title/tt2630992/




킬링 타임용 영화라는 표현이 있다. 이 영화는 킬링하는 타임도 아깝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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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raveltip.org/countries_visited.php

 

에서 만든 지도.

방문해본 나라들.

쿠바, 자메이카, 멕시코는 내년 1월 방문 예정이라 가불하여 찍었다.

많이 다녀본 것 같기도 한데, 빈 칸 아직도 너무 많다.

아프리카에도 좀 찍어보아야 할 것 같은데...

 

(수정) 다녀왔다.

 

2020년 1월까지의 기록. 조금 더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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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쿠바, 자메이카, 그리고 멕시코


쿠바를 먼저 간다. 시가, 사탕수수의 나라.


쿠바에서 그랑케이먼을 경유하여 블루마운틴과 레게 음악으로 유명한 자메이카를 간다.


멕시코다. 와우. 칸쿤에서 하루를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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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서도 종종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특히 자다 깼을 때, 문득 문득.


1. 대학 4학년 가을이었나, 신검 통지가 왔다. 고민하다가 눈을 핑계 대보기로 했다. 서울대학병원 안과에 가서 병사용 진단서 발급을 신청했다. 눈에 안구고정제라고 기억되는 약물을 주입하고 약 30분 쯤 기다렸다. 빛만 보면 눈이 부시고 아팠다. 이상한 도구를 사용해 '안구'를 들여다보더니 뭐라뭐라 기록하더라. 이것으로 방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신검 판정 기준에 대한 것도 모르겠고 하여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무엇이 나온들 어떠하랴. 


2. 수원병무청에 가서 신검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대학을 가지 아니한 친구인데, 왜 지금 받지 하는 궁금증은 끝나고 풀렸다.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애매하여 확실히 하지 않았다. 시력검사도 다시 받았다.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은 '면제'였다. 완전 신체 건장인데... 너 뭐냐? 군대 기간보다 더 긴 기간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가부다 했다. 내가 사는 세상과는 조금 다른 험한 세계를 살았던 친구.


3. 대학원 진학을 하면서 군대 입영 연기를 했다. 5학기를 다니고 마칠 무렵 '석사 장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6개월 훈련받고 소위 임관하면서 군대를 마친다고 하는. 괜찮아 보였다. 학기를 마치고 졸업까지 남은 마지막 '방학'의 기간을 석사 장교 준비로 보내기로 했다. 시험 기출 자료와 원서를 구입했다. 지원서를 보고 좌절했다. 원서 양식이 굉장히 길었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주욱 긴 종이였다. 양면. 오만가지를 기록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를 좌절하게 한 것은 추천인 2명이었다. 국회의원 이상 급 2인의 추천을 받으란다. 제길...

또 하나 기출 문제를 보니 내가 오를 나무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8월을 헐렁헐렁 보냈다. 


4. 졸업식 행사장엘 가지는 않았지만 학교는 나갔다. 집에 오니 입영 영장이 와 있었다. 남들 처럼 어디로 도망갈줄 알았나? 날짜도 빠듯하다. 8월 30일 졸업, 9월 12일 입대. 그런데 방위였다. 대학원 대학 기간중 신체검사 등급 3급이 현역에서 방위로 바뀌어버렸다. 이런!


5. 1988년 9월 12일 51사단 방위병 훈련소에 입소했다. 수원역까지 전철로 가서 택시를 이용한 것 같다. 전혀 모르는 동네였으니까. 영장에 부대 명칭이 숫자로 나와 있어 어디 물어볼 데도 없었다. 택시 기사님들은 다 꿰고 있었지만.


6. 나름 나이 든 훈련병, 몸치, 힘들더라. 특히 먹을 것을 제대로 주지 않더라. 한 달의 훈련 기간 중 생각난 것이 짜장면이었으니.ㅠ.ㅠ

1988년9월17일 토요일이었다. 88올림픽 개막. 강당에 모으더니 올림픽 개막식을 보여주었다. 훈련병들은 1, 2중대 편제였는데, 미국팀이 입장하는 장면에서 2중대 아이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신기했다. 또 신기한 것은 1중대 애들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1중대가 2중대를 향해 기이한 것을 구경하는 표정으로 우로봐한 상태. 신기한 경험이었다. 왜 그렇게 했고, 왜 그렇게 안했을까?


7. 한달이 거의 다 되어갈 즈음 시험을 보더라. 군사훈련 과정에 대한 것들. 문제들이 대체로 쉬웠다. 대충 답을 표하고 나와서 빈둥거렸다. 고3때 교련 시간은 여름부터 거의 수업이 없었다. 교실에 오지도 않고 반장을 통해 자습이라고 통보되었다. 대학입시 준비하라는 것이었을텐데...꽉 막힌 인간인 나는 교련 시간의 자습이니 교련 교과서를 들고 자습했다. 몇 번을 읽었나 모르겠다. 덕분이 여러 해가 지난 후 훈련소에서의 시험을 수월하게 치루었다.ㅎㅎ


8. 훈련소 퇴소 이틀전인가.. 저녁에 쉬고 있는데 불려갔다. 입소할 때 작성해 낸 신상명세서에 나는 만능이다 라고 적어 냈었다. 이것저것 다 할 줄 안다고 적어내야 그래도 괜찮은 곳으로 배치받을 수 있다고 광명에서 방위 근무를 하던 선배의 조언 때문에. 아니었다. 그러면 아니 되는 것이었다. 군대는 그냥 중간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ㅠ.ㅠ

컴퓨터 좀 만져보았다 하여 그날 밤에 끌려 간 곳이 사단 전산실이었다. 훈련병들 시험 성적을 입력하는 것이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전산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면서 밤을 보냈다. 슬쩍 내 성적을 보았다. 3등이었다. 시험 성적과 사격 점수를 더하여 시상을 한다고 했다. 부상으로 휴가가 달려 있었다. 200미터 거리에서 측정한 사격 점수는 10발중 9발을 맞추었으니 기대해볼만 했다.


9. 아침 식사 후 오전 훈련 시작하려는데 또 불려 갔다. 눈치챘다. 시상 대상자다! 그런데, 시상 예정 인원 수보다 더 불려나왔다. 차렷 자세를 취해보라 하였다. 불려 나온 대상자들 중에서 다리가 붙지 않는, 소위 오다리 라고 불리는 훈련병들은 그대로 되돌려보내졌다. 성적순? 그런 것 없다. 사단장 앞에서 시상할 때 "자세"가 나와야 하기에.ㅎㅎㅎ


10. 시상 대상자가 되었다. 훈련 열외. 좋다. 그런데 계속 선착순을 시킨다. 제길. 잘못 왔다. 오전 내내 선착순으로 뺑뺑이. 오후에는 시상식 훈련이었다. 시상대로 걸어올라가기, 사단장 표창 받을 때의 자세 동작 구령 등등. 다음부터 군대에서는 상을 받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계기였다.


11. 훈련소 마지막 날. 연병장 정렬. 뙈약볕. 총검술 등 시범 보이고 시상식. 멍하게 지나갔다. 표창장, 메달을 받았다. 내무반에 들어와 짐을 싸고 휴가증을 받았다. 앗싸! 그런데 모두 빈 칸이었다. 다른 훈련병은 내용이 채워져 있는데, 조교에게 물어보았더니 배치받은 자대에서 처리하란다. 그렇다.

훈련은 51사단에서 받았는데, 배치받은 부대는 상급부대인 수도군단 사령부였다. 하여 상급부대의 병에게 하급부대에서 인사명령을 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12. 훈련소를 나오는데 부모님이 와계셨다. 서로 아무 말없이 버스타고 그곳을 떠났다. 나이들어 군대 가게 된 아들 녀석과 살갑게 이야기 나눌 거시기가 아니었다. 상받는 모습 보았다는 말씀만 하셨다. 좋아하셨는가 했더니 아니었다. 나중에 여쭈어보니 얼굴이 새까맣고 반쪽이 되어 있어 가슴아프셨단다.


12-1. 훈련소를 마치며 보급품을 받았다. 방위병 생활하면서 사용할 것. 전투복, 야상, 모자, 그리고 전투화 2켤레. 문제는 전투화였다. 훈련병들의 발 크기에 맞는 것으로 선별하여 나누어 주는 것이 매우 귀찮았던 모양이었다. 그냥 같은 사이즈의 전투화 두 켤레씩 받았다. 그렇게 떨어진 전투화가 발에 딱맞는 운은 내게 없었다. 작았다. 배치받은 부대에서 맞는 것으로 바꾸어 신으라고 했다. 나중에 배치받은 부대에서 군수담당하는 계원에게 사정 이야기했는데, 바꾸어주겠다며 전투화는 가져 갔으나 바꾼 전투화는 2016년 현재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 있을까?

부대 생활할 때는 내무반 침상 아래 버려진 전투화들 중에 대충 발에 맞는 것을 찾아 신었다. 제대하면서 버리고 간 것들. 양쪽 전투화의 년식이 서로 달랐다. 완전 거지 모습.


13. 1988년 10월 10일 이른 아침 비산사거리 부근에서 방위병들 모여 출근하는 뽀인트에 모였다. 신병이 늦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에 무진장 일찍 갔다. 대충 모여서는 줄을 맞추어 행군 비슷하게 부대로 향했다. 부대 정문을 통과했고 신병들은 사무실로 인계되었다. 


14. 수도군단 인사처 부관과 사무실. 나중에 보니 내가 근무하게 될 곳이었다. 신병훈련소에서 모든 것을 다 할줄 안다고 적어낸 신상명세서 때문이었다. 처음 도착해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내무반으로 인솔되려는 찰나 훈련소에서 모범용사 표창의 부상으로 받은 휴가증을 내밀었다. 혼내더라. 이런 것을 가져왔다고. 그러더니 내용을 채워 이런 저런 도장을 찍어서는 주면서 나가라고 했다. 3일짜리 휴가. 다른 곳에 배치받았으면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데, 불안해서 출근했다. 터덜거리며 걸어서 '퇴근'. 정문에서 잡혔다. 사무실로 끌려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하는데 행군 동작이 아니라고. 오늘 부대온 신병이다. 훈련소에서 받은 상 때문에 바로 휴가 받았다 라고 이야기 하니 내 머리 가까이 손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가라고 했다. 하여간 나도 눈치없고 고문관 기질을 갖고 있었다.


15. 불안하게 수요일까지 쉬고 목요일 아침에 출근 뽀인트로 갔다. 갔더니 쪽지 하나씩 들고 무언가를 외우고 있더라. 신병들 신고식 암기자료라고 했다. 뭐야 이거! 자기들만 쪽지를 갖고 있고! 옆에서 보면서 몇 개라도 외우려 했다. 출근하고 사복을 군복으로 갈아 입고 내무반 옆의 골짜기를 기어들어가 모여 서서는 바로 위 고참들이 신고식 훈련을 시킨다. 하나도 모르지 뭐. 좀 지나 내부반 옆의 작은 운동장에 모여 아침 점호를 했다. 그리고는 그날의 사역 지원자를 뽑았다. 벼베기가 있었다. 신병이 첫날 뭐 할 것 있나 싶기도 하고 해서 옛날 농군의 자손이었기에 손들고 나갔다. 주변의 눈초리가 이상했지만 나는 눈치 잼병이고 고문관이니 그냥 갔다. 다른 병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안양 평촌동의 어느 논으로 갔다. 낫질 낫질 낫질 낫질. 오전이 가고....점심 주더라. 논두렁에서 먹었다. 막걸리도 한잔 얻어 마셨다. 낫질 낫질 낫질 낫질...오후가 가더라. 해떨어지려 할 때 부대로 귀대하여 시간이 늦어 퇴근. 암기 사항 적힌 쪽지를 얻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에 본부대 방위병들 집합. 신병 신고식을 했다. 고참들이 별렀다 했다. 나를 잡으려고. 다행히 크게 흠을 잡히지 않고 통과했다. 퇴근.


15-1. 신고식을 마치고 점호 끝내고 퇴근 시간이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야상을 가방에 싸는 것이었다. 갖고 퇴근한다고. 없어질 수 있다고. 그런데 다니던 대학원 학과사무실에서 토요일 오후에 좀 나와달라는 연락을 받은 바 있었다. 그 큰 가방을 들고 경기도에서 서울로, 또 경기도로 돌아올 생각을 하니 암담하여 내무반의 옷장에 두고 가볍게 퇴근하였다. 월요일에 출근하여 보니 없어졌다. 새것. 언 놈이 훔쳐간 것이다.^^

고참에게 이야기하니 찾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단은 경비소대의 것을 하나 꺼내 주었다. 임시로 사용하라고. 내무반을 경비소대와 사무실 근무병들이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1주일을 그렇게 버티다가 수소문하니 남대문 시장에 군용 물품 파는 곳이 있다고 하였다. 일요일 아침 일찍 가서 돌아다니다가 하나 샀다. 허접한 것. 전투화도 거지, 야상도 거지, 그렇게 1년 반을 살았다.



16. 신병 시절 내무반 분위기는 참 흉흉했다. 이해가 안되었다. 왜 자기들 스스로 힘든 분위기를 만들고 힘들게 생활하는지. 2, 3일에 한번씩 집합이 걸렸다. 참 자주 집합했다. 삽으로 패기도 하더라. 그래도 세월은 지나갔다. 

부대출입증이다. 이게 아직도 집에 남아 있다니!!!


17. 업무는 인사처 부관과에서 방위병 인사명령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소집에서 소집해제까지. 대내 명령과 대외 명령이 있었는데 대외 명령의 경우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명령지가 육본으로도 송부되기에 틀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틀리면? 맞는다. 나? 맞았다. 뒤지게. 관악산을 넘어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다.


18. 부대가 관할하는 지역의 방위병 자원을 필요 부대에 배치 명령을 내리게 되는데 학력과 신검 등급을 기준으로 점수를 주고, 군부대부터 배치하고, 동사무소 근무 방위는 낮은 점수의 방위들을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어느날 퇴근 이후에 행정관 할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하더니 전철을 타고 갈아 타고 인천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게 왠 날벼락? 인천 남구의 병무청의 누군가와 소주 한잔 하시더라. 자리를 파할 때 1만원짜리 한장 받았다. 수고하라고 하면서 주더라. 이게 뭐지?


19. 매달 신병 입소가 이루어진다. 매달 그들을 분류하여 소집해제되는 부대에 맞추어 배치를 시킨다. 인사 명령이 관계되다보니 종종 쪽지가 전달된다. 그들에게는 우주의 기운이 함께 해주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20. 수작업으로 부대배치 작업을 하였는데, 어느날 전산화를 한다고 했다. 부대내 전산소의 병사가 담당으로 지정되어 병력 배치 과정의 알고리즘에 따라 프로그램을 완성하였다. COBOL을 이용했던 것 같다. 자료 처리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한다는 미명하에 데이터 파일을 열어볼 수 있었다. 편집기로 편집이 되더라. 그게 문제이다. 문제. 그렇다. 아는 사람은 안다.


20-1. 군부대 업무 전산화. 기가 막혔다. 각 부처마다 PC가 한대씩 보급되었다. 인사처에도 한 대가 설치되었다. 설치하자 마자 선임하사는 목공 문관에게 부탁하여 사무실 내에 별실을 설치했다. 그리고 문에 튼튼한 자물쇠. 컴퓨터 고장나면 큰 일 난다며 아무도 손을 못대게 했다. 창고에 가두어 두고 손안대기. 그것이 초기의 군부대 전산화였다.^^

컴퓨터에 워드 프로세서 있고, 옆에 프린터도 있었지만 제대, 아니 소집해제될 때까지 타자기 두드렸다. 4벌식.


21. 가끔 퇴근길에 행정관 할아버지에게 끌려나갔다. 안양 중앙시장인가의 술집을 몇 번 갔었다. 비슷한 연배의 문관 할아버지와 두분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소주를 사면서 종종 한잔 기울이는 자리. 거기에 '끌려 나갔다'. 수고한다고 고생한다고 술 한잔 사주시는 것이었지만, 고달픈 방위는 퇴근 시간 엄수가 최고의 보상이었던 것. 불편했다. "집에 가게 해주세요호!"

그래서 나중에 교사가 되어서도 칼퇴근을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게 된다..


22. 주업무는 인사처에서 인사명령을 다루는 것이지만 방위병은 실제로 부대 내에서 잡부였다. 오만가지 일에 동원되었다. 건물 철거도 했고, 아스팔트 포장도 했다. 원예도 했고, 도로 경계석 작업도 했다. 김장도 했고, 쓰레기 치우기도 했다. 팀스피릿 훈련에 동원도 되었다. 부대 내의 은밀한 장소인 벙커도 그때 들어가 보았다. 비취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시키니까 했다. 퇴근 못하고 하는 야근이었다. 그리고 의장대도 했다. 제길.

새로 바뀐 본부대장이 굉장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본부대장으로 발령되지마자 본부대원 전체를 강당에 모아 놓고 근무 자세 등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복장도 각을 잡고 입어라, 벨트의 바클이 정가운데 오게 맞추어라 등등도 이야기했다. 본부대의 현역과 방위병들로 급조되는 의장대는 장성이 부대 방문할 때 동원되었다. 예하 사단의 군악대도 동원되고. 추운 겨울에 군복 각 안나온다고 내복도 입지 못하게 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행사를 치루었다. 다행히 몇 번 하더니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흐지부지 되었다. 철모도 총기도 보급받은 적 없다. 모두 현역병들 것을 빌려다가 행사를 했다.


23. 1989년 가을. 인사처에 근무하는 모든 방위병들 집합이 있었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어느 하사관이 책상 서랍에 두었던 지갑의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의문? 그걸 왜 방위병들만 모아놓고 내놓으라고 하지?

여러차례 압박이 가해졌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찍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한 달쯤 지났을 때 부대내 기관중의 하나인 법무부 담당 하사관이 토요일 퇴근하며 들르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결백했기에 의심은 받고 있을 지언정 갔다. 협박이 들어왔다. 헌병대에 넘기겠다는 둥.

부관과 사무실로 왔다. 마침 퇴근 않고 있기에 이야기 좀 하자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두절미. 왜 나냐고 물었다. 그날. 사무실에 나만 있었지 않느냐고 하더라. 웃음이 나왔다. 사무실에 혼자 있는 상황에서 간부들 책상 뒤지는 바보가 어디 있을까 하고. 이런 사람한테 의심 받고 있었다니!!!!

수요일이었다. 전투체육의 날. 다른 병사들은 그날은 오후 근무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정관 할아버지는 뭔 일이 생길 줄 아냐며 나만 사무실에 남겨두고 나머지는 쉬게 했었다. 행정관 할아버지는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고, 나는 방위인사명령 매뉴얼 펴고 공부하고, 그렇게 보냈었다. 그런데 그날은 왠 일인지 내무반에 가서 쉬라고 나를 보내준 것이었다.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그 사정을 하사관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사무실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그 이후 압박은 사라졌다. 아주 더러운 군대 기억이다. 가끔 생각나고 그 때마다 기분 더러워진다.


24. 1990년 2월은 왔다. 대학에서 교련교육 2년 받으면 그때 군대 복무 기간을 3개월 할인해주었다. 그건 현역이고, 방위는 3주 깎아주더라. 그래서 2월 17인가에 '소집해재'되었다. 마지막에 3일 휴가 받았을 때 서울시교육청에 가서 군대 제대하니 교사 발령내달라고 신청했고, 3월1일자로 발령받았다. 군대 제대한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해서 부대에 연락하여 소집해재 인사명령 사본 떼다가 제출하는 과정을 따로 거쳤지만.

소집해제된다고 본부대장실에 가서 신고를 하는데 머리길다고 트집잡혔다. 진짜 머리 긴 놈은 업무 담당하는 놈한테 이야기해서 아예 신고 대상에서 열외시켰다. 넷 중에 세 놈만 들어가서 혼나고 나왔다. 그 놈. 법대 졸업하고 행시 합격한 놈. 나중에 보니 재무부 엘리트로 잘 나갔던데, 청와대 파견 근무도 하고. 지금은 어찌 지내나 모르겠다. (잘 지내는구나. 차관이라니... 네이버 인물검색에서 이름 검색하니 바로 뜬다.ㅎㅎ)

가끔 그 때 그놈들 보고 싶기도 하다.

소집해제증도 남아 있다. 이런 것이 남아 있어 군대의 기억이 종종 내 머리를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귀신이 따라 붙어서...


군대 끄읏!

그런데 기억 속에서는 없어지질 않는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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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시험장인 선덕고까지 가족이 모두 나섰다. 배달 완료.

미루던 작업에 손을 대었다. 오전에도 망설였다. 할까말까..

시작했다. 보조메모리로 사용하는 외장 SD card의 접속이 종종 작업 중에 끊어져 불편하였기에 하나의 메모리에서 작업을 하기 위해 시작했다.

올해 구입하여 수업용으로 쏠쏠하게 사용하고 있는 태블릿.

CUBE Stylus I7. 국내 업체가 지난 해에 수입하여 '코넥티아 M'이라는 상표명으로 판매되기도 했던 것.

메모리가 64기가 바이트이다. 그래서 256기가 바이트로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려 한다. 여름에 했던 것인데, 메모리 에러 발생 문제로 A/S 받았다. 제품 교체. 두 번을 이미 뜯었던터라 귀찮아져서 그동안 미루었던 작업이었다.

케이스를 뜯었다. 뚜껑 따기.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편하다는 선경험자의 조언에 따라 카드를 사용했다. 

포르투갈이었던 것 같다. 호텔 방 키.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중이다. 몇 번 뚜껑따는데 이용했더니 모서리 부분이 다 닳았다.

태블릿의 전원키 부분에서 카드를 끼워넣으며 사이를 벌리면 어렵지 않게 분해할 수 있다.


또 보는구나. 태블릿 내부. 배터리의 커다란 덩치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교체할 메모리 부분. 볼트를 열고 그냥 빼면 된다.


작은 볼트 뺐다.


메모리도 제거했다.


새로 교체할 메모리. 박스 열기 전에 사진에 담아본다.


이렇게 비닐 케이스에 들어가 있다.


두 메모리. 64G를 256G로 바꾼다.


뺐던 곳에 끼우면 된다. 볼트 체결.


그 다음은 그냥 윈도우 새로 설치하는 과정과 같다.

윈도우 10을 USB 메모리에 부팅가능한 상태로 옮겨 두었던 것으로 부팅하여 새로 설치하는 과정을 따르면 된다.

ISO 파일로 되어 있는 윈도우 시스템을 USB에 부팅 가능하게 넣는 것은 rufus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무탈하게 설치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산 태블릿에는 대부분 "Window 8.1 with Bing"이 설치되어 있다. 태블릿의 윈도우 8.1은 정품 인증 상태이다. 바이오스에 그렇게 박혀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상태에서 윈도우 10으로 업데이트 시켜도 정품인증이 대체로 따라온다.

뭐...그렇다.


그리고 태블릿에서 사용할 몇가지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내일 수업에 이용할 준비 끝~

충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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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4일 금요일이다.

숙소에서 짐을 챙겼다. 떠났다.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박물관을 관람.

수성 화산체의 교과서인 수월봉을 오르지는 않고 해안 탐방로를 따라 올레했다.

그리고 소인국 트래비 식당에서 점심을 찍고 금능해변에서 휴식.

번잡하다고 그렇게 강조한 제주공항에서 별로 번잡하지 않게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스마트폰 밧데리를 마구마구 희생시키다가 비행기 타고 서울로 날았다.

 

오늘은 오늘의 해가 떠오른다.

 

코오쓰를 보자.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거쳐 서쪽으로 웨스트.

수월봉 탐방, 그리고 오리엔트를 향한다. 점심을 먹은 식당까지 보인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건물은 흉내냈다가 맞을 것 같다.

 

박물관에 들어가 신기한 것을 구경하고

 

체험하고

 

사랑을 나누고

 

가방을 빼았아

수월봉으로 도망쳤다.

 

수월봉이다. 드디어 수월봉이다. 수월봉은 이런 곳이다. 수월봉은 이런 가치를 지닌 곳이다. 수월봉은 이래서 와볼만한 곳이다.

 

그런 수월봉에 왔다. 가보자!

 

화쇄류의 수평 퇴적층, 그리고 탄낭.

 

수월봉은 고산에 있으며 앞에 차귀도가 있다. 바다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방파제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진행하였다. 아......

역시 여러 장씩 찍었으니까...어쩌면 건질 것이 있을 것이다.ㅎ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식사. 소인국 트레비 한식당.

역시 뷔페식이다. 운영자로서는 노동력, 인건비 절감의 묘수이며,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자발적 노동의 현장이다. 물론 이용자의 노동에 대해서는 무임금이다. '셀프'라는 어마어마한 심리적 보상이 주어진다.

 

금능해변으로 바로 간다. 해변을 따라 산책하여 협재 쪽으로 가다 돌아온 코오쓰가 그대로 보인다.

다른 해변보다 금능과 협재에 모래가 많은 것은 위의 인공 위성 영상에 답이 있다. 해안선의 형태를 보면 양쪽이 바다 쪽으로 나가 있으며, 금능과 협재 해안은 내륙 쪽으로 들어와 있다. 포켓 비치(pocket beach)라고 한다. 이렇게 해안선이 안쪽으로 들어와 있으니 해안을 방랑하던 모래가 모여 사빈이라고 하는 해안 퇴적 지형을 형성한 것이다. 

 

 

건너편에 비양도가 보이는 바다.

협재와 금능이 있는데, 이번에는 금능을 찾았다.

협재나 금능 해변에 오면 다들 바다 색깔에 감탄한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모래에 있다. 패사 때문이다. 해변에서 조개껍질이 오랜 기간에 걸쳐 풍화되어 형성된 모래이다. 석회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석회질 비료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육지 위로 바람에 날린 모래는 물에 녹으면서 용암 동굴 내부에 석회동굴의 지형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림 공원 내의 협재굴, 쌍용굴에서 잘 볼 수 있다.

해변의 모래를 촬영하여 보았다. 조개 껍질들이 많이 보인다.

 

다들 바닷가에 멈추어 있다. 왜?

 

해파리가 무서운가보다.

 

그러나 이내 곧 가위 바위 보를 하더니...

(모두 가위만 냈다. 왜 그러지? 일치단결? 혼연일체? 부화뇌동?)

 

해변에서 모델 촬영도 해보고

 

해변 산책도 한다. 해변 산책은 꼭 바닷가에서 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체험이다.

 

중력과의 힘든 싸움도 해본다.

짬프! 업!

 

그러다가 빠져든다. 난 네게 빠져, 난 네게 미쳐.

 

나두~

 

그리곤 제주공항에 왔다.

 

 

표를 받는다. 좌석 번호 4C. 혹시 비즈니스 클래스?

내 팔자에 무슨....그런 것 없는 비행기였다더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모여서 짐을 찾는다. 가이드와 미팅. 캐리어 가방에 배터리를 수납하면 안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가방에서 빼놓았던 것을 항공사에 가서 찾아왔다.

주차장으로 이동. 버스를 타고 달려서 학교에 도착하였다.

 

늦은 시간이었는데 여러 분들이 남아 계시다가 마중을 해주셨다.^^

학생들 모두 해산시키고...

나도 해산시켰다.

 

이것으로 2016학년도 1학년 수학여행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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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이틀째. 11월 3일의 이동 경로이다.

숙소를 출발하여 해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성산 일출봉.

이후 북서쪽 내륙의 비자림, 점심 식사.

4.3평화공원.

감귤농장 노동자 체험.

제트보트 체험.

저녁식사, 레크리에이션까지 긴 하루였다.

 

동녁이 밝아온다.

 

햇님이 반짝.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식사를 줄지어 퍼먹고 꿀잠자던 학생들 몇을 깨우고 일정 시작 준비.

버스 출발~

 

성산 일출봉에 도착하여 반별로 단체 사진을 어수선하게 촬영하고 오름을 오른다.

1963년 아이슬랜드의 남쪽 바닷가 한 곳에서 바닷물이 부글거리며 끓고 용암이 분출해서 화산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섬이 수면 가까이 성장하게 되자 용암 분출이 멈추고, 바닷물에 뒤섞인 검은 화산재와 물방울, 그리고 하얀 수증기가 거대한 분수와 같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렇게 몇 달간 지속된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 바로 섯시(Surtsey)화산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산일출봉 (제주도 지질여행,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일출봉도 아일랜드의 섯시 화산처럼 용암이 수중 분출하면서 생성시킨 것이라고 카더라.

 

보인다. 일출봉이다.

 

학급별 단체 사진 촬영이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짧은 시간에 대충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도 여러 장씩 찍었으니 뭔가 걸린 것이 있겠지.ㅋ

 

일출봉이다. 웅장하다. 그래서 城山이다.

 

예전에는 좁은 골목길(?)에서 오르고 내리느라 복잡했었는데, 오르는 길과 내리는 길을 분리해놓았다. 오른다.

 

올랐다.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모르리. 그 즐거움을 셀피로 남긴다.

 

그리고 확인한다. 잘~ 찍혔다. 잇힝^^

 

옛날 옛적에 처음 왔을 때는 분화구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부서져 내리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데크를 만들어 놓으니 사람도 좋고 일출봉도 좋다. 동쪽을 향해 있어 새벽에 오르면 햇님이 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으리.

 

오른 자의 숙명. 내리리.

 

계단, 계단, 계단, 계단, 계단...

 

일출봉은 본래 섬이었다. 바닷 속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진 화산섬. 그런데 서귀포층이 퇴적되면서 모래가 퇴적되어 육지와 연결되었다. 이름하여 육계도 되시겠다. 육지와 연결하는 긴 띠 모양의 퇴적 지형은 육계사주.

 

아래로 내려오면 해녀의 집이 있다.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아마 자연산일 것이다. 멀리 우도도 보인다. 추천 여행지.

 

다음 여행지는 비자림이다.

북제주군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림에 들어서면 범상치 않은 기운이 엄습한다. 착생식물인 콩짜개덩굴이 푸른 비늘처럼 뒤덮은 회갈색 거목이 주목과 비슷한 바늘잎을 반짝이면서 사방에 가득 들어차 있다. 화산 분화로 생긴 토양인 송이를 깐 보행로의 붉은빛이 숲 바닥과 수피, 하늘까지 물들인 녹색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산간지대의 다랑쉬오름과 돛오름 사이에 긴 타원형으로 들어선 비자림은 면적 44만 8,000여㎡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최고령 나무는 900살에 육박한다. 두 번째는 2000년 ‘새 천년 나무’로 지정된 비자나무로 수령은 800살이 넘고, 굵기가 거의 네 아름에 키가 14m에 이르러 이 숲에서 가장 웅장하다. 이런 터줏대감 때문에 구좌 비자림은 ‘천년 숲’으로 불린다.

[네이버 캐스트]

 

 

우거져 있다.

 

탐방로를 따라 들어간다. 걷는다.

 

유명한 연리목. 너무 문대다 보니 하나가 되었다나 어쨓다나...

 

 

수령이 가장 오래된 나무도 뽀또 뽀인트.

 

나무에 구멍. 구멍 속에?

 

사진 찍어주니 난다 날아.

 

그렇게 좋아?

 

 

비자림 인근에 위치한 식당.

 

점심 식사 기념 사진 촬영.^^

 

그리고...그리고...그리고...

4.3평화공원.

홍보 영상물을 시청하고 내부 전시물을 관람하였다.

 

4.3평화공원내 기념관을 향한다.

 

공원 하늘 위로 까마귀들이...

 

공원내 각명비. 시간이 촉박하여 제대로 돌아보질 못하였다. 참 아쉬운 부분이다. 기념관 내부 관람도 필요하지만 이곳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령탑. 저 멀리 오름 너머로 빛내림 현상이 보였다. 

그리고 뛰었다. 버스를 타야만 했다^^

 

 

역시 길가의 억새는 예뻤다. 니네 엄마 누구니?

 

서귀포시로 다시 들어왔다. 예례동. 바닷가를 드라이브 혹은 산책하면 참 좋다. 참 예쁜 동네이다. 10여 년 전에 길을 잘못 찾아들어갔다가 심봤다 싶었던 동네이다. 바닷가 하예동까지 계속.

길가의 작은 감귤 농장에서 노동자 체험을 하였다.

 

느영나영~

 

나뭇가지가 안되어 보인다. 고생이 많다.

 

맛있어 보이는 놈으로

 

잘 골라서 딴다. 먹는다. 먹다 남으면?

 

한 봉지씩 들고 나선다.

 

그리고 대포항으로 나갔다. 이제 바닷사람이 되어본다. 여러가지 체험이다.

대포항을 나서 서쪽으로 항로를 잡아 하얏트 호텔 앞쪽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오쓰이다. 주상절리대 앞에서 한바퀴 돌아주고.

20여 년 전에 요트 몇 번 얻어타본 적이 있었다. 괜찮았다. 그래서 요트 한마리 장만하는 꿈을 갖기도 했었다. 꽤 비쌌다. 자격증도 있어야 한단다. 관두었다.

제트보트 재밌다. 이거 하나 장만할까나?

 

 

대포항에 있다. 제트보트 타는 곳.

 

뭐시 중한 줄 알어? 안전이여 안전!

 

안전 장비를 챙긴다.

 

보트를 타고 나선다. 휘익~ 다녀왔다.

 

주상절리대 앞에서 잠깐 배를 멈추었다. 왜 멈춘지는 모르겠다. 저 위 데크에 있는 탐방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뱅그르르 도는 보트를 보면, 타보자 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간 멈춘 찬스의 기회를 이용하여 몇 장 찍었다.

카메라, 휴대폰 소지 금지라고 했는데, 주머니에 들어 있길래 꺼내서 찍었다. 주상절리.

 

 

제트보트도 좋았어! 찰칵!

 

나중에 출발한 팀을 기다리며 세월을 낚는 조사의 실력을 구경한다.

해가 떨어진다. 물고기들은 대체로 안전하였다. 다행이다.

 

해는 떨어지고....한라가든으로 이동하였다.

한라가든에서

이런 것을

이렇게 먹고 났더니

뿌듯하였다.

 

저녁을 먹고 이동하였다. 어디로?

 

제주 써커스 월드로!

 

이런 곳이다. 예전에 와서는 써커스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학생들의 레크리에이션이다!

 

모여

 

앉아

 

보고

 

함께 하였다.

 

그리고 기록되었다.

 

경연이었으니 결과가 있다. 

얘들아~ 발표하겠어~

 

신났다~

 

여러분들 모두 잘 했고, 고생했어~

 

집에 가자~

숙소에 와서 모두들 일찍 코~ 잠.

아...치킨 먹고.

 

수학여행 이틀째 일정 끄읏~

 

To be continued...

 

그냥 가면 아쉬우니....반별 장기 자랑에서 1등한 팀의 공연 영상 중 후반 일부분. 

소리가 작을 것 같으니 볼륨을 올리고 재생 시작~

하면 조금 놀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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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어느날. 수학여행에 같이 가라는 지령을 받았다. 옴메나!

11월2일에서 4일 사이, 사흘 동안 탱자탱자 거릴려고 했던 속마음이 박살났다!!!

갔다. 교통편은 비행기. 좋구나. 내가 제주도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10월. 용산역에서 밤기차 타고 목포에 가서 아침 먹고 배타고 가다가 추자도를 지날 때쯤 마중나온 너울파도를 타면서 남해바다 용왕님께 오바이트 잔뜩 해드리고 석양과 함께 제주항에 입항했었는데...세상 좋아졌다.

 

김포항에서 제주까지의 오간 경로도이다. 서쪽의 붉은색 경로가 김포에서 제주, 동쪽의 쑥색 경로선이 제주에서 김포로의 이동선이다.

 

전 학교에 근무할 때는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김포공항에 모이도록 했었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 발생 경험을 즐길 수 있었는데, 역시 좋아졌다. 버스를 대절하여 함께 간다. 학교에 모여 내부순환로를 타고 김포로 갔다(아래 지도에서 보라색 경로선). 이른 새벽길이었기에 잘 갔다.

4일 저녁이 문제였다. 퇴근 시간대였기에 교통 체증이 대단했다. 그런데 버스 기사님이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오다가 노원이 아닌 의정부IC에서 빠져 의정부로 가다가 유턴을 하였다. 그리고 도봉로로 진입. 버스 전용차선을 이용하니까 보통 이용하는 노원IC에서 빠져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귀교할 수 있었다(아래 지도에서 쑥색 경로선). 기사님 대단하다.(아! A팀 1호 차량의 경우)

 

11월2일에서 4일까지 제주도에서 이렇게 돌아다녔다.

 

같은 경로를 지형기복도에 표시해보면 이렇다. 중심에 한라산이 있고 여기저기 종기처럼 보이는 것들이 그 유명한 오름들이다.

 

날짜별로 정리해보자. 11월2일의 경로이다. 수학여행팀을 소규모로 꾸려야 하는 규정 때문에 8개 학급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나는 선발대 A팀과 함께 하였다. 일찍 가서 늦게 오기.....A팀이었다.

제주에 도착하여 산굼부리를 제일 먼저 들렀다.

그 다음에 성읍 민속마을을 탐방하고 부근의 '황금성'에서 돼지고기를 주물럭했다.

식후에 인근에 위치한 '오늘은'이라는 카트 체험장에서 즐겼다.

그리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용눈이 오름을 올랐다. 바람이 참 시원했다.

그 다음에는 대포동으로 이동하여 주상절리 지형을 답사하였다.

여기까지가 첫날의 수학여행 코오쓰~

숙소인 폴에이 리조트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폴에이'라는 이름이 어색했는데, Pol-A라는 영어를 보고 이해가 되었다. 경찰공제회에서 운영한다는 정보와 더해서...

 

보자.

11월2일 새벽 5시에 학교 집합이었다. 깜깜하다. 물론 당연히(?) 100%가 시간 내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기다림~

 

모였다. 달렸다. 그리고 김포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직 어둡다.

 

표를 받았다. 33번 라인에 제일 끝이다. 가장 안쪽이다.

 

항공사를 통해 수속을 진행한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캐리어를 보냈다. 비행기를 자주 타보면 그냥 작은 짐만 들고 다니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버스를 타고 비행기에 도착. 에어부산. 비행기 참 잘 날게 생겼다. 형편 풀리면 하나 들여놓아야지.

 

탑승 중~

 

떴다. 아래로 인천과 영종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가 보인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니 아래로는 구름이 펼쳐진다. 잘 날아간다.

 

고도를 낮춘다. 구름 아래로 내려간다. 비양도가 보인다.

 

제주도 도착 기념 셀피. 몇 년 만이더냐.

 

네시에 일어나 12시에 예정된 점심 시간까지가 아득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제주 도착하니 햄버거를 나누어준다. 나는 안먹는 음식이었지만 그냥 흡입했다.ㅠ.ㅠ

 
배가 채워졌으니 걱정없이 달린다. 제주시를 벗어난 도로. 한갓지니 좋다.

 

첫번째 여행지. 산굼부리의 인공위성 영상이다. 입구를 지나면 억새밭이 반겨준다. 올 때마다 반겨준다. 여러 번을 왔는데 그 때마다 반겨준다.

 

산굼부리는 전체적으로 큰 대접모양을 하고 있는 분화구로 용암 분출로 인해 지하에 생긴 공간으로 지반이 침하하여 형성된 함몰분화구이다. 한라산 백록담보다 조금 더 크고 깊은 이곳은 비가 많이 와도 물이 고이지 않으며, 분화구 안의 일조량이 달라 난대·온대성 수목이 공존하는 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주도 산굼부리 - 지반함몰로 내려앉은 분화구 (위성에서 본 한국의 지형, 2007. 12.,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산굼부리 분화구는 한라산의 기생화산 분화구로 다른 분화구와 달리 낮은 평지에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졌고 그 모양도 진기하다. 외부주위둘레 2,067m, 내부주위둘레 756m, 분화구깊이 100-146m의 원추형 절벽을 이루고 있고 화구는 바닥넓이만도 약 8,000평이나 된다. 화구주위의 지면은 표고 400m의 평지이고 화구남쪽에 최고 표고 438m인 언덕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분화구의 표고가 낮고 지름과 깊이가 백록담보다도 더 큰데 물은 고여있지 않다. 화구에 내린 빗물은 화구벽의 현무암 자갈층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나간다. 그곳 사람들은 이 분화구 어딘가에 구멍이 있어 그 구멍이 바다로 통해있다고 하는데 일리있는 풀이이다. 이러한 화구를 마르(maar)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산굼부리가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에 몇 개 알려져 있을 뿐이다. [www.sangumburi.net]

산굼부리에 대해 폭발로 만들어진 마르형 분화구라고 보는 설과 함몰 분화구로 보는 설이 있다.

그곳에 도착하였다. 너 누구니?

 

산굼부리 사면을 따라 오르다보면 억새가 지천이다. 주변에 여러 오름들이 산재하며,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기도 한다.

 

폭렬공인지 함몰 분화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고도보다 분화구 내부 바닥의 고도가 더 낮은 것은 사실이다. 분화구 내부에서는 북사면과 남사면 쪽의 일사량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식생이 분포한다는데 거기까진...

 

언제 이런 억새밭에 빠져보랴. 신기한 곳이니 사진으로 추억을 남겨본다.

 

폼 잡고 찍고.

 

여럿이 모여서 찍고.

 

뒤돌아서도 찍어본다. 어...근데 이건 모지?

 

그리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

성읍 민속촌이다.

 

개인적으로 성읍민속촌하면 아래 사진의 추억을 갖고 있다.

1984년 10월이었을 것이다. 답사를 갔다. 대학동기가 올라섰다. 화장실. 흑돼지는 아니지만 돼지가 있었다. '돝통시'였다. 1986년 이후 여러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다시는 돝통시를 볼 수 없었다. 내 추억속의 성읍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관광객용 성읍으로 탈바꿈.

 

주차장에서 하차. 해설사가 세 분이 나오셨다. 반별로 답사 시작하는 것이 신났나 보다. 아이들 얼굴이 모두 밝다.

 

제주도의 전통 생활에 대한 재밌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학생들.

 

그러한 학생들의 모습이 흐뭇하기만한 담임쌤.

 

이것이 제주도의 전통 가옥.

 

돝통시 모형에 모형돼지가 놓여 있다.^^

 

저디 산 것 말이우꽈?

 

객사. '展'자가 새겨진 패가 내부에 놓여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나랏님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을의 역사를 상징하는 느티나무. 천년쯤 되었다고 했던가.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찍었다.

 

바람이 거세다. 날린다.

 

 

성읍민속마을 버스주차장 지킴이 1의 자세. 개팔자. 

 

버스주차장 지킴이 2의 자세. 개폼.

 

 

배가 그렇게 고프지는 않았지만 때가 되었으니, 일정에 있으니 식당으로 향한다.

 

여기에 가서.

이렇게 생긴 것을.

이렇게 먹고 나왔더니.

뿌듯하다.

 

다음 코오쓰. 카트 체험. 아이들 수학여행에서는 보고 걷고 하는 것보다 이런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경로도를 보면 뱅글뱅글 돈다. 내가 그렇게 돌았다. 나 돈놈이다.

성읍녹차마을 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녹차밭 한뙈기를 떼어 '오늘은카트레이싱'이라는 카트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안전교육을 받고.

 

이런 코오쓰를.

 

이렇게 달렸다. 돈다 돌아.

 

너무 재밌다. 그치~~~~

 

그리고 걸었다. 올랐다. 바람 맞았다.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에 올라

말구경도 하고

풍력발전기 구경도 하고

뭔가 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정상에 올라

바람 맞으며

분화구 내부도 살펴보고

 

멀리 동쪽에 위치한 일출봉도 조망하였다.

 

산을 오른 사람들의 숙명. 하산!

 

그리고는 다음 코오쓰로 떠난다. 길가의 흐드러진 억새가 예쁘다.

 

중문의 대포동 주상절리대. 바닷가에 데크라 설치되어 있고, 그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방문한다면 이곳보다는 쇠소깍 쪽이 더 좋을 것이라고 추천한다. 쇠소깍 좋다.

 

주상절리란 이런 것이다.

 

해변의 주상절리대 위쪽으로 안전하게 탐방할 수 있도록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주상절리는 이렇게 생겼다. 기둥모양. 국수바위.

 

11월3일에 대포항에서 출항한 제트보트가 주상절리대 아래쪽에서 잠시 머물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겨진 핸드폰을 꺼내 촬영하였다. 바다 쪽에서 주상절리대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바다에 빠트리면 '갤럭시 노트7'이라도 살 각오로 '노트3'을 꺼냈었다.

바다 쪽에서 본 대포동 주상절리대.

 

 

해변의 억새를 구경하며

 

야자수가 있는 길을 따라 산책하다가

 

꼬치구이 사먹고 초콜릿을 구매하.....

 

이제 하루 일정을 마감한다. 폴에이 리조트.

월드컵 경기장 뒷편에 위치한다.

 

서귀포에 황혼이 내린다.

 

깔끔한 숙소.

저녁 식사를 해치운다.

 

귀신들은 운동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은 조용히 잠들었다.

 

수학여행 하루 끄읏!

 

To be continued...

 

11월3일

 

11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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