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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및 답사/강원, 충청, 제주

20160726_괴산 답사

by 딱한걸음 201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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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해서 이현군 박사와 괴산 지역 답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지금은 괴산군 하나이지만 옛지도를 토대로 하면 괴산, 청안, 연풍 세 지역을 1박2일로 답사를 하게 된 것이다.

 

7월 26일(화) 괴산 일대에서 필요한 지역을 답사하고 청안을 거쳐 연풍을 지나 다시 괴산으로 돌아왔다.

 


중부 내륙 지방은 고추? 괴산군도 음성군도 고추를 지역 특산물이라며 상징으로 삼고 있다.

괴산 고추.

 

음성 고추.

 

괴산군의 지역브랜드 이미지에서 고추만지며 자랑하고 있는 이는 임꺽정이다. 임꺽정을 지은 벽초 홍명희가 괴산사람이란다. 이번 답사의 시작 지점인 이탄유원지 내의 제월대 앞에 문학비가 건립되어 있다.

 

 

1902년에 편찬된 괴산읍지에 포함되었던 지도이다.(옛지도들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가져왔다.)

 

첫번째 답사지. 이탄 유원지에 제월대 그리고 고산정이 있다.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24호. 1596년(선조 29) 충청도관찰사로 있던 유근(柳根)이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별서(別墅)를 꾸며 만송정(萬松亭)이라 부르다가 광해조에 이르러 어려운 정치를 피하여 이곳으로 하향, 고산정이라 개칭하였다. 맑은 냇물이 발 아래로 굽어보이는 벼랑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동남에는 제월대(霽月臺)라 이름한 암반이 있어서 정자 남쪽에 전개된 야산의 수려한 경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인조 때 명나라 사신 웅화(熊化)가 올 때 유근이 원접사(遠接使)로 나가 시문(詩文)의 교류가 두터워 태화가 「고산정사기(孤山精舍記)」를 지어 보내니 지금까지 명문(名文)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현판에 새겨 정자 안에 걸어놓았다. 그 밖에도 사부사(謝副使)가 지어 보낸 「만송정팔경시(萬松亭八景詩)」가 있는데, 만송정팔경은 일명 고산팔경(孤山八景)이라고도 하며, 만송정을 비롯하여 영객령(迎客嶺)·제월대·관어대(觀魚臺)·영화담(映花潭)·황니파(黃泥坡)·창벽(蒼壁)·은병령(隱屛嶺)의 여덟가지 경관을 일컫는다. 정호현판(亭號懸板)은 이원(李元)의 글씨이고, 「호산승집(湖山勝集)」의 현판은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의 글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 [槐山孤山亭─霽月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산정 아래로는 달천(괴강)이 흐르고 있으며 건너편에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커다란 분지 지형 내에 위치한다.

 

다음으로 괴강관광지였다. 한창 공사중이다. 찾아보니...조감도만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

 

괴산읍내로 향하였다. 괴산향교 - 읍사무소 - 도서관 - 경찰서 순으로.

 

먼저 괴산향교를 들렀다.

 

홍살문이 반겨준다. 날 더운데 고생 많다고....

 

말에서 내렷! 주차하고 걸어서 들어간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본다면 주차장 정도 표식이 아니었을까?

 

오랜 지역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라 그런지 오래된 나무가 많고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괴산향교의 보호수는 괴산5호. 1982년 지정 당시 220년이었으니 이제 수령이 250년 넘는다.

 

명륜당

 

입구는 잠겨 있다. 담 넘어로 내부 모습 한 컷. 동재와 서재, 내삼문 뒤로 대성전이 조금 보인다.

 

괴산유림회관. 향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교회 괴산지부이며 전통혼례식장, 인성교육장 등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지나는 시커먼 답사객.

 

옛지도를 들고 동헌을 찾는다. 혹시 읍사무소에 있을까? 없다.

대신 수준점이 있다.

 

읍사무소 부근에 도서관이 있다. 부근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가본다. 있다. 옆에 깨끗하게 보호되고 있다. 

 

괴산 보호수 1호님 되시겠다. 800년이 넘었다고. 도서관에 있다.

 

괴산동헌.

 

깔끔하다. 역시 잠겨 있다. 관리하는 곳을 찾아 열고 들어가볼까 하다가 안해주었을 때의 심리적 충격을 미리 예상하고는 그냥 참기로 했다. 대신 담 너머로 카메라를 디밀고 찍어본다.

 

괜찮다. 이렇게 보존하려면 역시 그냥 잠가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본다.

 

바로 옆에 괴산경찰서가 있다. 예쁜이들이 어서 와보라 한다. 이곳에도 보호수가 있다. 느티나무.

 

괴산 보호수 2호 되시겠다. 500년도 안되었는데(^^) 2호이다.

 

괴산버스터미널에 있는 주차장식당을 찾았다. 소개받은 곳이다. 점심으로 올갱이해장국을 먹었다. 사진은 다음날 아침에 찍은 것이지만 같은 메뉴라서 비슷하다. 올갱이에 계란을 한번 입혀 끓여내었다. 30여 년전에 처음 먹어보았을 때와의 아주 사소한 차이랄까.

 


괴산에서 청안으로 달린다. 지도는 26일의 이동 경로. 카메라 아이콘들 있는 뽀인트가 답사한 곳이다. 아니, 사진 찍은 곳들이다.

 

1872년 지방지도의 일부인 청안현지도.

 

독립된 현이었지만 이제는 괴산군 청안면이 되었다. 일부는 증평군에 포함되고.

 

청안초등학교를 찾았다. 동헌이 위치했던 경우가 많기에. 개교100주년이 넘은 학교이다.

 

역시나 대단한 나무가 있다. 무려 천연기념물이다. 165호.

 

 

담장 넘어에 면사무소가 있다. 7년 연속 인구증가를 축하합니다!!!

 

만세운동유적비.

 

역시 보호수. 회화나무. 68호.

 

동헌이다. 아주 잘 보전되어 있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 1405년(태종 5) 청안현에 도안현(道安縣)이 합병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마지막으로 1915년에 중수되었으며, 한때 청안지서로 사용되어 건물이 개조되었던 것을 1981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였다. 낮은 석축기단 위에 전면과 우측에는 네모로 가공된 주춧돌을 놓고 후면은 자연석 추춧돌을 놓았으며 기둥은 주로 두리기둥을 세우고 내부에 일부 네모기둥을 세웠다. 평면구성은 전면 한칸은 툇마루로 개방하고 그 뒤로 왼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 도합 6칸의 대청을 두고 오른쪽에 4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동쪽의 측면 한칸도 툇마루를 두었으나 여기에는 문짝을 달았다.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의 동헌건물이 익공집에 겹처마건물인데 비하여 이 건물은 민도리집에 홑처마로 하여 격식을 낮추었는데 이는 청안현이 큰 고을이 아니었음을 반영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안동헌 [淸安東軒]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곳은 살며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마루에 손바닥 딱 한번만 대보고 나왔다. 어쨓든 손 댄 것인가...

 

옆에 위치한 파출소에도 대단한 나무가 있다. 고려초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이다. 그런데 보호수 리스트에는 빠져 있다. 왜일까? 천년 가까이 되는 나무인데..

 

청안면은 행정구역으로는 괴산군에 속한다. 그런데 증평농협이다. 왜 그럴까?

괴산군 증평읍이 증평군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인 것 같다. 아래 링크 참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499940

 

다음에는 청안향교를 찾았다.

 

역시나 닫혀있다.

 

역시나 담 넘어로 카메라를 디민다. 명륜당과 대성전이 보인다. 그러나 동재와 서재는 없다.

 

괴산향교에는 사마소가 함께 있다. 사마소는 결과적으로 지역유지들의 압력단체로 변질되어(원래부터 그랬던 것일지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16세기 초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인 사마시(司馬試) 출신의 젊은 유림(儒林)이, 그 당시 지방자치 기관으로서 수령의 자문기관 노릇을 한 훈구파(勳舊派)의 유향소(留鄕所)에 대항, 향권을 주도하기 위해 만든 자체 협의기구이다. 대개 각 고을의 관아 근처에 자리잡고 하나의 특수기관처럼 행세하면서, 생원·진사의 친목과 학문, 정치토론 및 교육활동 등을 펼침으로써 각 고을의 교화와 지방 행정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 그러나 뒤로 가면서 점차 노골적인 압력단체로 발전하여, 유향소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수령의 지방통치에 간섭하기에 이르렀다. 또 노비와 토지를 확보하여 재산을 늘이고, 향리·백성을 함부로 잡아다 형벌을 주는 등의 폐단을 가져왔는데 이런 폐단은 특히 호남·영남 지방에서 심하였다. 결국, 이러한 폐단과 유향소와의 끊임없는 마찰이 문제가 되어, 1603년(선조 36) 류성룡(柳成龍)의 건의로 폐지되었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그 그릇된 습관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마소 [司馬所] (두산백과)

 

청안을 떠나 들린 곳은 우암송시열묘 신도비.

 

 

옆의 은행나무도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묘로 올라가는 계단. 여기까지...날이 매우 덥지만 않았다면 올라가보는 것인데, 너무너무너무 더워서...

 

화양계곡의 우암송시열유적도 찾아보려했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계곡을 올라가는 길을 막고 주차장 장사를 하고 있었다. 승용차 한대에 주차비를 5000원 내라고 했다. 동행자가 그냥 가자고 했다. 말씀하시는대로...

 

화양구곡과 우암송시열유적에 대해 깔끔하게 잘 정리해놓은 자료가 있어 그것으로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을 채워보자. 아래 링크 참조.

http://blog.ohmynews.com/cornerstone/147743

 

 

다음 답사지는 각연사

 

일주문 안쪽까지를 차로 들어가자는 의견을 제시한 멤버가 있었으나, 기각시키고 그냥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었다. 산사에 방문하여 요만큼 걷는 것은 참 좋지 아니한가?

 

각연사 경내의 모습. 조용하다.

 

기와불사를 해야할 사정이 있는데,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다음 기회로 미룬다.

 

대웅전이다.

 

 

살짝 지붕만 보이는 저 곳이 각연사에서 유명한 곳이다. 바로~ 바로~

 

비로전이다.

 

비로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각연사를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통일대사부도탑을 찾았다. 채소를 수확하시던 스님께 여쭈었다. 오신지 얼마 안되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신다고?

검색하였다. 아래 링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4423&cid=46656&categoryId=46656

이상하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태성리)에 있다고 나오는데, 주소를 검색하여 나오는 결과는 스님이 모르시면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음 답사지인 연풍으로 향한다. 지도는 1872년지방지도의 일부인 연풍현지도.

 

연풍에서의 답사 경로. 면사무소 - 연풍향교 - 연풍초등학교 - 연풍성지

 

 

연풍향교.

 

역시 잠겨 있어 담넘어로 카메라 디밀기. 명륜당 건물.

 

연풍초등학교 내에 동헌이 보존되어 있다. 동헌이 있던 곳에 초등학교를 만든 것이겠지.

연풍초등학교 내에도 역시 보호수가 있다. 두 그루이다.

 

학교 역사 100년은 기본이다.

 

동헌. 풍락헌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연풍초등학교 옆에 연풍성지가 있다.

 

 

 

다섯 성인상.

 

연풍성지에는 연풍향청도 함께 있다. 지금은 천주교 행사 장소로 이용된다.

 

김홍도가 연풍현감을 지냈었다는 것 때문일까 벽화로 작품들을 게시해놓았다.

 

연풍장날은 2, 7일.

 

수옥정을 찾아간다. 실패. 도로가 없다.

조령관을 찾아간다. 실패. 산길을 이리저리 한참 올라갔는데 도로가 공사중이라고 차단시켰다. 내려오다가 옆길이 있어 한참 올라갔는데, 길없음 상태. 흠...

 

수옥정 정자를 찾았으나 사람들은 관광지만 알려준다.

 

쉼터. 저 아래로 들어가지 마시오 하는 담장 틈새로 내려가면 계곡이 나온다.

 

수옥정 이야기는 이후 검색한 블로그의 내용으로 채워본다. 아래 링크.

http://m.blog.naver.com/esilvia/60165572500

 

유명한 맛집전문가가 추천한 민물매운탕집을 찾아갔다. 찾아서 갔다. 도착했다. 그런데, 그런데, 아 그런데....아무도 없다. 전화도 안받는다. 하필 그날 그때 바쁜 일이 있으셨나보다.....

 

그래서 대웅식당을 찾았다. 돼지갈비. 좋았다.

 

영빈파크에 숙소를 정하고...

 

씻고 빈둥거리다가 잤다.

 

 

 

 

 

 

 

 

 

 

2016년 7월 26일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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