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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및 답사/수도권

20120511_한양도성_광희문에서 동대문 구간

by 딱한걸음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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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11일 오후 한양도성 답사에 참여하였다. 서울시민대학의 이현군 박사 주관 강좌의 답사코스 중 하나였다. 이동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 도성과 이동의 수단이 되는 도로, 전차, 지하철 등 교통로의 결합이 주제였다.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에서 보면 E~D 구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답사하였다. 광희문에서 시작하여 성곽이 사라진 구간을 찾아가며 흥인지문까지 이동하면서 복원된 이간수문, 오간수문이 있던 곳, 구한말에 건설되었던 전차 차고지 등을 살펴보았다.

 

1902년 한양 지도. 한양의 모습과 도성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한양도에서 광희문, 흥인지문 주변 부분을 확대해보았다.

광희문에서 흥인지문 사이에 청계천의 물길이 도성 밖으로 빠지는 통로였던 이간수문과 오간수문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훈련도감에 속한 관청의 하나인 '하도감' 도 성곽 가까이에 표시되어 있다. 부근에 '훈련원' 표시가 보이는데, 조선 건국 초부터 있었던 군사훈련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 앞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훈련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도성 내에서 청계천의 하류에 해당하여 "아랫대(下村)"라 불렸으며, 청계천의 상류에 해당하는 인왕산 동쪽 일대는 "웃대(上村)"라고 불렸다고 한다.

 

광희동사거리에 위치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하여 답사를 진행하였다.

 

복원된 광희문. 문의 이름을 알려주는 현판은 도성의 바깥 쪽에만 달려 있다. 남산 방향으로 약간의 성벽이 남아 있다.

 

광희문의 홍예 부분 천장에는 용 두마리가 노닐고 있다.

 

1396년 한양도성을 창건할 때 세워진 4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은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도 사용되어 시구문으로도 불렸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 파손되었다가 1976년에 복원되었는데, 자동차 도로가 넓어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성벽의 돌들 중에는 사연을 새긴 각자성석이 보이곤 한다. 멀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읽어볼 수는 없었다. 멀어서 안보이는거다.ㅠ.ㅠ

 

각자성석의 내용은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것과는 다른 돌인갑다.

 

도로 건너편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도성이 분수계를 따라 축성되었으며, 도로 가운데 위치했던 광희문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복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 광희문의 통행가능한 폭은 승용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지금의 도로폭과 비교하면 도저히 원래 위치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교통이 발달하면서 도성의 성문은 수난을 겪게 된다.

 

전차의 궤도가 건설되고 노선이 확대되면서 도성은 파괴의 아픔을 겪었다. 서울 전차 궤도가 건설되면서 훼손되고 있는 숭례문과 도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광희문에서 도로 건너편에 도성의 흔적이 약간이나마 남아 있다.

 

광희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에 대한 안내판이 바로 앞에 세워져 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니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다. 그곳의 거대한 건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유려한 곡선미를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인 Zaha Hadid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벽들과 바닥, 천정들이 섞이고 확장되어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유기적인 구조로 표현함으로써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역동적인 공간 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격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DDP 옆으로 성곽 구간을 일부 복원해놓았다.

 

DDP를 포함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동대문 운동장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다. 

 

1968년 동대문운동장 보수공사 시 설치되었던 야간 조명 시설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봉화대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화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1955년 개최된 제36회 전국체육대회로 성화대에 불을 옮기는 최종 주자는 고 손기정이었고, 성화의 전국 일주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가 최초였다고 한다.

 

공원 내 한쪽 구석에 이간수문이 복원되어 있다.

 

돌의 일부에는 구멍이 파여 있다. 

 

그 구멍은 나무로 벽을 덧대는 용도였다. 성곽의 일부 구간이 이간수문이었고, 물이 흘러 빠져나가면서도 방어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일부 돌들에는 거울, 십자표식 등이 껌딱지로 붙어 있다. 성벽의 뒤틀림 같은 변형을 주기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된다.

 

발굴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2008년 9월초, 이간수문의 홍예 상단이 처음으로 노출된 모습.

2008년 11월 초, 호예 내부의 퇴적물 위에 놓여 있는 박석의 모습.

2008년 12월 초의 발굴 완료 상태. 퇴적물을 모두 제거하고 난 이후 드러난 이간수문의 축성 상태.

 

이간수문을 살펴보고 나오는 배나온 답사대원.....

 

 

청계천 지류 구간이 복개되었기 때문에 이간수문의 복원을 이렇게 해놓을 수 밖에 없었다.

 

패션 쇼핑몰을 지나간다. 외국인들이 참 많다. 도로와 골목에 오토바이가 참 많다.

 

청계천을 만나 오간수교 아래로 내려간다. 공사기간에 쫓겼을까... 오간수문을 저렇게 만들어놓았다.

 

오간수문이 있던 곳인 오간수교.

 

오간수교 아래 오간수문의 사진과 그림이 남아 있다. 그림은 오간수문 부근에서 청계천의 쌓인 토사를 준설해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여러 차례의 준설 공사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이 영조 때의 것이었다. 여러 마리의 소까지 동원되어 준설 공사를 하는 것을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오간수교 위에서 감독하고 있는 그림이다.

 

1760년에 영조의 명으로 청계천 준천을 마치고 그 과정을 4첩의 채색기록화로 남겼다. 김희성의  '준천시사열무도(濬川試射閱武圖)'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준천 작업을 묘사한 것은 수문상친림관역도(水門上親臨觀役圖)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중이다.

 

그리고 영조께서는 수고했다는 어필을 남기시었다.

준설해낸 토사의 양이 많아 청계천 부근에 假山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후 그곳에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살며 환경이 악화되자 꽃나무를 심어 그 향기가 널리 퍼져 芳山이란 이름이 붙었고, 이후 이곳에 들어선 시장은 방산시장이 되었다.

 

청계천의 유로는 평소에는 수돗물로 유지되지만.............

 

비가 오면 부근의 수많은 복개 하천들로부터 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수문들 중 하나. 자동으로 열린다. 사전에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하니 제발 말 좀 바로 듣길 바라요~

 

드디어 커다란 흥인지문을 만난다. 광희문은 4소문 중 하나, 흥인지문은 4대문 중 하나...건너편의 녹색 언덕은 흥인지문공원, 공위의 윗쪽으로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보인다.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에 '전차 차고 터' 표석이 있다. 구한말에 운행이 시작되어 1968년 철거된 전차의 차고지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와 구한말 전차 운영회사인 한성전기회사의 기계창도 있었다. 전차 운영이 필요한 차고지, 기계창, 발전 시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동대문 부근의 차고지와 발전소, 그리고 동대문의 모습을 보여주는 옛날 사진이다.

그리고 동대문 앞을 지나는 전차. 1960년대의 모습이다.

(위 두 사진 모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http://www.news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93402에서 인용)

 

다른 사진을 보자. 화력발전소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 준 덕택에 동대문의 홍예 사이로 전차가 달리고 있다. 동대문을 전차가 통과했던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전차의 크기가 커지면서 동대문을 우회하여 지나게 된다.

(https://pzkpfw3485.tistory.com/2242620에서 인용)

 

길건너의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는 '경성궤도회사 터' 표석이 있다. 1930년부터 1961년까지 똑섬, 광나루까지 다니던 궤도전차가 출발하던 곳이었다.

 

경복궁의 월대 복원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전차 궤도가 발견되면서 서울의 전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바 있다. 다른 곳의 노선은 모두 철거하였는데, 이 구간은 그냥 매립하고 도로 포장을 하였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흥인지문이 있는 구간은 성곽이 모두 사라지고 대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 1398년에 세운 한양 도성의 동쪽 문이며, 현재의 문은 1869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바깥쪽으로 방어를 견고히 하기 위해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렀는데, 이는 서울의 성문 중에서 유일하다.

 

흥인지문공원의 성곽구간을 답사하였다.

 

옹성을 갖춘 흥인지문의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멀리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방향으로 성곽이 이어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흥인지문 앞의 도로 건너편에 멋진 신식 건물이 보인다. 전차 차고지가 없어지면서 그 부지는 동대문 고속버스터미널로 이용되었다. 고속버스터미널이 폐쇄된 이후 주차장으로 이용되다가 들어선 JW 메리어트 호이다. 그 뒤로 동대문 종합시까지 전차 차고지와 발전소 부지였던 곳이었다.

 

...

 

오늘의 답사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호선 지하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4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광희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이간수문 - 오간수교 - 흥인지문 - 흥인지문성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2.7km,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그리고 흥인지문에 밤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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