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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키르기스스탄

20170802_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by 딱한걸음 201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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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일.

키르기스스탄을 떠나는 날이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간다.

오쉬의 썬라이즈 호텔을 떠나 육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들어갔다. 새로운 현지 가이드와 만나 안디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안디잔에서 마르길란까지 버스로 계속 이동하여 열차로 타고 타슈켄트까지 이동, 시티 팔레스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오쉬는 키르기스스탄의 남부 지역의 거점 도시라고 할만하다. 구글 이미지를 보다가 재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쉬가 거대한 선상지의 선정에 해당하고 그 북쪽으로 부채살 모양의 선상지가 펼쳐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경지 분포가 그렇게 보였다.

건조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물이다. 오쉬의 남쪽을 보았더니 거대한 Papanskoye 저수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공급되는 용수에 이 일대의 지역이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Papanskoye Vodokhranilishche is a reservoir lake that covers a surface area of 4 km2 (2 mi2), has an average depth of 64 meters (210 feet). Papanskoye Vodokhranilishche boasts a total water volume of 0.26 km3 (210,786 acre-feet), and has a total shore line of 13 kilometers (8 miles). The lake, which sits at an elevation of 1,256 meters (4,121 feet), drains a whatershed that covers 2,429 km2 (938 mi2) and has a residence time of 241 days (0.66 years).

https://ceb.wiki.ng/wiki/Papanskoye_Vodokhranilishche

 

아담한 썬라이즈 호텔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동네도 정전이 좀 되어주는 곳이다.

7시반에 아침 식사하고 8시에 바로 출발하였다.

 

벤츠 마을버스와 마티스 택시들.

 

전차가 다닌다.

 

마나스 아저씨가 나와서 배웅해준다.

마나스는 키르기스스탄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키르기스'가 "우리 40"을 의미한다고 했다. 12살에 자신의 40개 부족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해방하겠다고 나섰고, 키르기스 인들을 규합하여 그것을 해내었다는 이야기다. 마나스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 서사시와 함께 인류의 가장 위대한 구전 서사시로 평가되는 마나스 이야기는 약 5백만 행에 달하는 장대한 분량인데, 이것은 '오딧세이와 일리어드'를 합한 것의 약 20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구소련의 붕괴가 아니었다면 독립국가를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평가된다. 주변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하여 그것을 토대로 국가의 토대를 만들어갔지만 자원이 부족한 산악의 유목 민족으로서 국가 운영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차라리 구소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더 유리했었다고 하여 아무도 원치 않는 독립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국가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마나스 서사시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자 하는 것 같다. 곳곳에 마나스 동상을 거대하게 세워놓고 이 위대한 인물이 자신들의 선조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1995년에는 마나스 서사시 1천주년 경축 기념식도 성대하게 치루었다고 한다. 박물관도 만들었고.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의 국경 통제소이다. A373. 오쉬와 타슈켄트를 잇는 도로에 있다. 키르기스스탄 통제소와 우즈베키스탄 통제소 사이의 거리는 100미터 정도된다. 이 거리를 지나는데 두시간이 넘게 걸렸다.

8시반에 통제소에 도착하였다. 김클림군과 이별하고 줄을 섰다. 8시40분 정도부터 통과시키기 시작한다. 천천히 천천히...

키르기스스탄 국경통제소에 줄을 서 있다보니 노인,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줄과 관계없이 통과시켜주더라. 뭐 좋다. 헌데, 건장하고 잘 생긴 아저씨나 후리후리한 예쁜 처자들이 그냥 들어가는 것은 좀 궁금했다. 중간에 거간을 하는 사람이 있는 듯 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의 입국 절차에서 신기한 것은 소지한 모든 돈을 해당 통화 종류별로 모두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원화와 달러 조금 갖고 있던 것을 열심히 적어서 제출했다. 뭐라뭐라 한다. 아! 두 장을 적어오란다. 일행들에게 전파. 열심히 적어서 제출했다. 이런.. 뒷면에 서명하란다. 했다.

짐검사. 트렁크 까란다. 깠다. 감기약 갖고 있던 것을 보고 뭐라 하더라. 뭐냐고? 그게 뭐라고를 못했다. 어버버버버버... 통과는 시켜주더라.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은 먼저 귀국하여야 한다고 따로 떨어졌다. 승용차를 이용해 타슈켄트까지 직행, 그렇게 귀국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승용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커다란 버스에 올랐다.

우즈베키스탄이다. 국경통제소 주차장.

 

우즈베키스탄. 목화의 나라. 목화와 관련한 주의사항. 사진 촬영 제한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여 목화를 땄단다. 그 사진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고. 그래서 아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목화 수확하는 사람들에 대한 촬영 제한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어린 학생들은 목화 수확에 동원되지 아니하고 대학생 동원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를 안내한 현지 가이드 베흐조드 아저씨도 그러한 경험이 있고 그 때 만난 여학생과 여차저차하여 지금 아이가 셋이라고 한다.

수확철이 아니라 목화인지 뭣인지...난 모르겠다.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에는 목화방학이라고 있었단다. 목화 수확기에 부족한 일손을 학생들로 메우기 위해 학업을 쉬는 것이었다. 

기계로 작업을 하면 수확한 목화의 품질 상태가 좋지 않아 수작업을 선호한단다. 하지만 수확기에 일시적으로 전국 목화 농장에 노동력을 댈 수 없다. 그래서 과거 학생들을 동원한 것이다. 수고비를 주기는 하지만, 아주 저렴한 노동력이 되는 것이다.

 

목화 더미에서 쉬면서 잠을 자던 어린이 등 목화 수확에 동원되었다가 11명이나 사망했었다고..

 

그래서 Stop Forced Child Labor in Cotton이라는 시위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외국인들이 목화 농장에서 수확하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금방 나오는 내용)

 

 

안디잔에 도착했다. 오아시스 도시라고 소개했다.

 

깔끔한 식당이다. 간판은 '야민'이라고 읽는단다. "땅"이란 뜻. 개업한지 얼마 안되었다고 하더라. 진짜 깨끗했다. 서비스하는 사람도 많고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직원이 따라 나와서는 자기네 식당에 외국인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홈페이지에 광고로 사용하고 싶다고, 외국인들도 찾는 식당이라고. 모두들 오케이~

버스에 오더니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갔다.

 

이런 메뉴들이 있다.

 

식당을 나오면서 GPS data logger 작동시키는 것을 잊었다. 한참을 달려 주요 공업도시 중의 하나인 Asaka를 지나서야 생각이 났다. 그래서 경로 기록을 보면 중간이 끊겨 있다.ㅠ.ㅠ

 

우즈베키스탄은 키르기스스탄에 비해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덥다. 그래서 집 앞의 대문이 있는 곳에 포도를 심고, 그 덩쿨로 그늘을 만든다. 시원해 보인다. 포도가 열리는 오다가다 따먹기도 하고. 집 앞에 이 동네 빵, 난을 내 놓고 팔고 있다.

 

길가의 사람들.

 

우즈베키스탄, 더운 나라이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차량들이 아무리 더워도 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다니더라. 응?

 

그런데, 다마스다!

 

어, 다마스다!

 

떼 다마스다!

우즈베키스탄은 외국차를 수입할 때 관세가 120%라고 한다. 쎄다. 그럼 국산차는?

그게 대우자동차다. 옛날 옛적 대우자동차가 진출하여 생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우차가 우즈베키스탄 국민차가 된다. 티고, 마티스, 스파크 같은 차들은 승용차 혹은 택시로 이용하고, 다마스는 마을버스로 이용된다고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 다마스가 그렇게 많았던 것.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많은 양의 천연가스가 생산된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차량은 가스차라고 한다. 헌데 관광버스 같은 대형 버스는 가스차량으로 허가가 나지 않아 디젤을 이용해야 하고, 디젤을 판매하는 주유소가 많지 않아 주유소가 보일 때마다 주유를 하곤 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페르가나. 그 페르가나 주에 위치한 마르길란에 도착했다. 고속철도라고 한다. 2시40분에 역에 도착하였다.

깔끔한 역사이다. 역사 앞이나 주변에 얼씬 거리는 사람들이 없어 생소한 역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안 검색이 철저하다. 역사에 접근하기 전에 신분증 검사하고, 역사에 들어가면서 짐의 보안 검색이 이루어진다.

참고로 역사 안에 있는 화장실도 유료이다. 500솜.

와이파이 되긴 하는데 거의 안된다. 붙들고 늘어져 카톡 메시지 두어 개... 앵그리 버드 2를 붙들고 시간을 보낸다. 맞은 편에서는 트렁크의 잊혀진 비밀번호 찾기 놀이를 하고 있다. 번호 하나씩 맞추어 보기.^^

 

대기하다가 3시50분에 플랫폼으로 나간다. 잠깐 정차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짐을 올리고 승차하여야 한다고 했다. 4시5분에 출발하는 열차인데, 역에 매우 빨리 일찍 서둘러 도착한 것은 열차가 언제 출발할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란다. 늦게 올 수도 있고, 빨리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한다.ㅎㅎㅎ

 

 

3시59분에 열차가 들어왔고, 낙오되기 싫어서 정신없이 열차가 달라 붙었다. 출발한다. 다행이다. 모두의 얼굴이 보인다.

 

페르가나분지. 중국 한나라 때 대완(大宛)이라 불렸던 지방이라고 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D%8E%98%EB%A5%B4%EA%B0%80%EB%82%98_%EB%B6%84%EC%A7%80

열차를 탑승한 마르길란은 페르가나의 북쪽에 위치한다. 출발하여 달리는 열차의 속도가 좀 느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리저리 뱅뱅 돌아서 가기 때문이었다. 기사르알라이 산맥을 가로질러 가다가 기이이이인 터널을 하나 통과한다.

 

페르가나 분지의 마르길란을 출발하여 코칸트를 지난 다음에는 협곡으로 접어든다. 물을 구할 수 있는 지역만 초록이다.

 

계곡을 흐르는 하천은 남으로 흘러 사르디리야 강과 합류한다.

 

계곡이 선 오아시스로서의 기능하는 것이겠다.

 

기이이이인 터널이다. 캄칙 Kamchiq 터널. 경로도에 직선으로 쫘악 이어진 구간.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고 한다. 19.2킬로미터. Uzbeq Railways와 협력한 China Railway Tunnel Group가 4억 5천5백만 달러를 투자하여 완공한 것이란다. 2013년 공사를 시작하여 2016년 1월 완공.

 

어느덧 해가 저문다.

 

의자가 2+1로 배열되어 있어 매우 여유롭다. 좋다. 탑승하면 차를 한 잔씩 서비스로 준다. 다른 것은 모두 유료.

 

타슈켄트에 9시 15분에 도착하였다. 예정보다 30분 연착.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철도 교통의 장점으로 가르치는 것이 있다. 정시성! 교과서의 내용에 회의가 든다. 아이들에게 자신있게 가르치지 못하겠다.ㅠ.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오른다.

 

 

해들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닭볶음탕과 족발에 주 메뉴였다. 닭볶음탕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만 먹어도 되는 것인가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먹으면 탈나지 않나? 그런 불안감에 소주 한 병 시켰다. 혼자 마시다 남기고 나왔다.

 

시내의 호텔.

 

내일은 누쿠스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새벽 비행기다. 4시반 웨이크업 콜, 5시 로비 집합 출발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이번 여행에서 자신이 생겼다. 까짓 4시 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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