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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아르메니아

20180801_아르메니아(1/4)_세반 호수

by 딱한걸음 201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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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8월의 첫 날이 밝아오는 5시반에 잠이 깨었다.

 

 

조지아를 떠나 아르메니아로 옮겨가는 날이다.

트빌리시를 출발하여 조지아의 국경도시 Sadakhlo에서 출국 수속을 하고 아르메니아로 넘어간다. 하그파트 수도원, 사나힌 수도원, 미코얀 형제 박물관, 세반나반크 교회까지 들르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경로. 화면 캡처를 여러번 하여 하나의 지도로 만들었다. 이동 거리 260km.

 

 

트빌리시의 여명. 멀리 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 트빌리시 대성당이 보인다. 

앞쪽에 나뭇잎을 여러장 겹친 모양의 지붕을 가진 건물은 트빌리의 Public Service Hall이다. 트빌리시의 모든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어떤 업무든 민원인은 이곳을 찾으면 모든 일을 볼 수 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작은 도시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레디슨 블루 호텔 앞에 서울 강남 삼성동의 무역센터 건물이 옮겨왔다???

Millenium Hotel이었다.

 

 

 

7시40분에 짐정리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왔다.

 

7시55분에 출발. 항상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이 이루어진다. 늦게 나오거나 모여서 전체의 일정이 지체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멤버들 같다.

 

 

트빌리시 시내를 지난다.

길거리가 매우 깨끗하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아서 깨끗한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찍 청소부들이 청소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8시6분. Ortachala 국제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썰~

여자 혼자 미성년의 자녀와 외국 여행시의 상황.

1. 여자의 여권에 남편의 아내라는 표기가 있는 경우. 통과.

집사람 여권의 이름에 (spouse of LEE)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왜 있지?

여권 신청할 때 배우자 있음 표시를 신청하면 해준다. 여권 신청 서류에 그냥 체크 표시 하나만 하면 된다.

 

2. 1의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영문으로 등본을 신청, 출력받아 갖고 다니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을 해도 여자가 남자 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의 성과 엄마의 성이 다르고, 그러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의 경우 입국할 때 세관에서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고 한다. 심할 경우에는 미성년 아이를 납치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왜? 가족임을 증명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입국 거부된 사례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팁을 가르쳐준다.

 

 

 

8시반. 해가 버스창의 왼쪽에서 강하게 파고든다. 남쪽으로 버스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알려준다.^^

 

 

풀숲 사이에 거위떼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메스티아에서 본 코쉬키라는 돌탑이 메스티아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조지아 여러 지방에서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메스티아 말고 다른 두 군데서 보이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8시37분. Jandari. 아제르바이잔 타운이라고 한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사람들이 약 80프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사이가 극도로 안좋은데 그것은 국가 대 국가의 경우이고, 그냥 민간인들은 그것과 관계없이 그냥 일상 생활을 아무 문제없이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아를 왕래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이곳을 지나면서 이들과 상업적인 거래 등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아의 경찰서.

 

 

건물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커다란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8시39분. Marneuli Police Station. 도시의 경찰서는 규모가 커진다. 하지만 외벽을 유리로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경찰서가 같다. 이런 눈에 보이는 행정을 통해 '투명한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심고자 했다. 전임 '친미'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추진하여 경찰의 비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단속을 하면서 돈을 받아 챙기는 모습은 완전히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 한다.

 

 

8시 40분. Marneuli Air Base.

 

 

조지아 유일의 공군 기지이다. 남오세티아 분쟁 때 침공해온 러시아군의 비행기를 두 대나 격추했다고 자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믿을 수 없다고...

 

 

아르메니아 코앞에 있는 국경도시 사다클로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작은 마을들이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독특한 모습이 나타난다.

 

 

세제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잔뜩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다.

 

 

길가에 이렇게 세제를 쌓아놓고 판매하는 노점, 상점들이 계속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아무렇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향하는 쪽의 길가에는 없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를 향하는 도로 쪽에만 있다. 

작은 내륙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외국과의 교통에 어려움이 많다. 동, 서, 남쪽의 국가들과 모두 사이가 안좋아 육로 교통이 막혀 있는 상태이다. 오로지 북쪽의 조지아를 지나 러시아와 교통하면서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다. 그래서 일상 생활용품의 가격이 매우 비싼 상황이라고 한다.

조지아에 왔던 아르메니아 사람이 귀국하는 길에 길가에서 이런 상품들을 구입하면, 귀국하여 꽤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재판매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9시. Sadakhlo 도착.

 

9시6분. 국경 검문소, 세관 도착.

출국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기의 모든 짐을 자기가 갖고 통과해야 한다.

조지아에서 출국 심사를 받고 나오니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짐을 싣는다. 아르메니아 세관까지 실어다 준다.

 

 

 

조지아 출국 직전에 보이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입국 심사를 받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여권을 스캔하는 컴퓨터가 freezing.

9시46분. 입국심사를 모두 받고 통과하였다. 아르메니아 버스에 짐을 싣는다.

 

 

9시49분. 버스 출발. 아르메니아 지도를 한장씩 나눠준다. 받는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왔더니 주변 경관이 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Debed 강 골짜기를 따라 연결된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하그파트 수도원엘 먼저 들렀다가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사나힌 수도원을 방문하고 미코얀 형제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가 세반 호수를 향해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아르메니아 현지 로컬 가이드는 예쁘장한 '아르미네'. 2007년 대학에 최초의 한국어 학당이 생겼고, 1회 졸업생. 한국에 2회 다녀옮.

 

아르메니아는 외국인이 부르는 나라 이름이고, 자국민들은 하야스탄 Hayastan이라고 한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의 민족 영웅 하이크 나하페트의 이름에 땅을 의미하는 astan을 붙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아르메니아는 고대 그리스어식 이름인데, 이것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아르미나라고 부르던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5세기부터 독자적으로 창제된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의 면적에 300만 명 좀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소 코카서스 산맥이 지나는 지역이라 고원 및 고산 지대가 많다. 그래서 인구의 97%가 해발고도 800~2,400미터의 지역에 집중 분포한다.

인구 300만 중 100만 명 정도가 수도인 예레반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은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다고 한다. 외국에 있는 아르메니아인은 7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1915년 터키에 의해 자행된 대학살 사건 때문에 외국으로 도피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프랑스에 가장 많은 숫자가 거주. 그들의 고국 왕래가 잦다보니 대충 프랑스어가 통할 정도라고 한다.

초기에 고국을 떠나 외국에 정착한 사람들의 경우에 많은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라서 많은 사람들이 아르메니아인임을 숨겨고 살았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인임을 숨기기? 쉽다. 개명을 하면 된다. 모든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끝에 'yan'이 붙는다. 'yan'을 떼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알려지면서 차별대우가 많이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겠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한 Cher도 아르메니아계라고 한다. 본명은 Cherilyn Sarkisian.

별다른 산업이 없는데도 아르메니아가 버틸 수 있는 것은 고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많은 해외동표들이 기꺼이 내놓는 기부금의 영향도 클 것이다.

 

 

 

10시40분. Haghpat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haghpat는 '단단한 벽'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사나힌 수도원을 만든 건축자의 아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건축 기술을 배운 아들이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질 못했다고 한다. 새로운 수도원인 만들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여 찾아와보았더니 아주 단단하게 잘 만들어져서 haghpat 라는 말을 내뱉었고, 이후 하그파트 수도원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물론 이곳을 자기 아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아들의 재능과 기술을 인정해주었고.

 

 

 

하그파트 수도원은 966~967년에 건축되기 시작하여 991년에 완성되었으며, 학자들의 양성 기관 기능을 했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양피지 책자를 제작, 관리하던 곳이기도 했고.

 

 

정교회의 경우 내부에 의자가 없는 곳이 대부분인데, 하그파트 수도원에는 장의자가  비치되어 있다.

 

 

 

 

샹들리에.

 

 

 

건물 상태가 메롱이다. 낡은 상태로 그냥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설 보수를 위한 예산이 없다고 한다.

 

 

 

안내하던 가이드 블라디미르 박은 차라리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비싼 입장료를 받아 그 돈으로 수도원을 보수했으면 싶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인정하지만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문화적 종교적 자존심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인 교회, 수도원의 입장료가 없다.

이렇게 놓고 가는 작은 정성으로는 택도 없다.

 

 

보수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이드가 이야기 했는데, 한쪽에서 먼지가 퍼지지 않게 가림막으로 하고 뭔가 하고 있었다. 뭐지?

문화재 복원 전문가라고 했다. 할아버지 혼자 작업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한다.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아니하고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원 봉사.

 

 

이런 자원 봉사자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어 바닥이 곱게 닳았다.

 

 

 

골짜기 건너편의 산 위에서 연기가 계속 나고 있다. 별로 탈 것도 없어보이는 산이길래, 궁금하여 질문하였더니 나중에 알려준단다. 이런!

 

 

 

 

 

하츠카? Khachkar. 12-13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아르메니아 고유의 예술품이다. 'cross-stone'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010년에 UNESCO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대부분의 하츠카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예수상은 포함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하츠카는 영혼의 구원을 기원하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묘비석으로 사용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거나 교회 건축 등을 기념하여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그파트 수도원의 하츠카는 그 예술적인 완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그파트 수도원의 커다란 하츠카에는 에수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극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이다. 심지어 하나님까지 묘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하츠카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 보다 상세한, 아주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들었다. 들었다 확실히. 듣기만 했다. 메모를 못했다.ㅠ.ㅠ

 

 

 

도서관 쯤 되겠다. 장서실일까. 바닥의 구멍 속에 양피지로 된 기록물들을 "숨겨" 두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문화재들이 보존될 수 있었고, 예레반의 고문서 박물관인 마테나다란에서 수집하여 복원 및 연구되고 있다.

 

 

하늘로 뚫린 구멍. 환기, 조명용?

 

 

하그파트 수도원. 아주 자연친화적인 상태이다. 

하그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비잔틴 양식의 교회 건축 요소와 아르메니아 전통적인 고유의 건축 양식을 결합하여 건축한 독특한 교회 건축의 사례로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지붕과 벽 등에서 풀이 잘 자라고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그파트의 사진이 이렇게 생겼다고 하면서 사진 한장씩 찍고 가라고 했다. .

 

 

작은 둥근 고깔로 덮인 톡 튀어나온 부분이 큐폴라라고 부르는 건축 구조이다. 아르메니아의 교회, 수도원 건물에서 많이 보인다.

 

 

고원 지대를 가르고 푹 꺼진 부분으로 Debed 강이 흐른다. 왼쪽으로 보이는 고원 모양의 평지 쪽에 Haghpat 수도원과 짝을 이루는 Sanahin 수도원이 있다.

 

 

낭떠러지, 급경사지의 급커브 구간. 무사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일 것 같다. 폴짝 뛰어 오르는 작은 염소 조각상이 있다.

 

 

 

11시35분. 식당엘 들렀다. Hotel Qefo에 딸린 공간이다. 내부는 시원하다. 메뉴는 케밥.

식사를 하는데 전문가들이 나와 음악을 연주해준다. 귀에 조금이라도 익은 것으로는 '백만송이 장미' 하나 밖에 없었다. 두어 번 반복해서 연주한 것 같다.

 

 

후식.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 않는데, 자꾸 눈치주어 어쩔 수 없이 먹었다. 산딸기와 함께 먹으니 별미이기는 했다.

12시32분. 식당을 나섰다.
 

 

산 위에서 뿜어져 올라오던 연기의 정체를 확인했다.

12시50분. Alaverdi 구리 공장. 소비에트 연방 시절은 계획 경제를 추진했다. 이곳에 공장을 짓고 원료는 다른 곳에서 가져왔다. 그렇게 가동했다. 연방 탈퇴 이후 원료 공급이 없다. 그래서 공장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라고 한다. 최소한도의 가동만 하고 있다고.

 

 

 

이곳의 공장이 한창 활발하게 가동할 때는 골짜기 윗쪽의 마을에서 Debed 강변에 위치한 공장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출퇴근을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운영할 정도였다.

지금은 가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혹시 케이블이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는 비행체를 위해 차량을 케이블 구간 중간에 멈추어 두어 잘 보이게 해놓고 있다.

 

 

1시7분. Sanahin 수도원. '먼저 만들어진'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하그파트 수도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내부가 횡~하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수도사들이 공부하던 공간이라고 한다. 저 안쪽부터 성적순으로 앉았다는 농담을 가이드가 한다.

 

 

 

역시 수도원의 조명 시설. 천정에 뚫린 구멍.

 

 

 

옛날 성경책. 아르메니아 문자이다.

 

 

 

밖으로 나오니 아르메니아 민화를 판매하고 있다.

 

 

 

보수 공사를 하긴 하려는 모양이다.

 

 

 

제련공장의 연기는 해롭다. 가능하면 멀리 보내기 위한 몸부림. 연도를 공장이 있는 곳에서 산등성이 반대편으로 연결하여 뿜어내고 있다.

옛날 먼 옛날 우리나라 장항에서도 제련소가 운영되었고 굴뚝이 산봉우리 위쪽에 위치했었었었었다. 먼 옛날에...

 

 

1시42분. 미코얀 형제 박물관. 전시용 미그기, 그리고 그 뒤로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미코얀 형제 모두가 천재. 형은 정치가, 동생은 과학자. 형인 Anastas Mikoyan은 소련의 정치가로서 소련최고회의 간부회의 의장까지 올랐었다. 동생인 Artem Mikoyan은 소련의 제트 전투기 미그기의 설계자이다.

 

 

아르툠 미코얀의 동상.

 

 

 

MIG-21기가 하나 전시되어 있다.

 

 

 

 

나도 왔다 갔다~~~~

미그기와 관련하여 유명한 한국인이 있다. 노금석 대위.

그는 1953년 9월 21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이륙하여 MIG-15기를 몰고 월남하여 김포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미그기 기밀을 얻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었었는데, 노금석 대위는 그 사실은 모른 상태였다. 그래도 현상금 10만 달러(당시 10만 달러면 쫌 쎘을 것 같다.)를 받았고, 부산으로 월남했던 어머니와 상봉도 했다. 이후 미국 영주권을 받아 미국의 방위 사업체에서 근무하였다고 한다. '자유를 찾은 미그 15'라는 책을 남겼다.

 

 

 

1시48분. 출발하여 데베드 강 하곡으로 꼬불꼬불 돌아서 내려간다.

 

 

하염없이 버스는 달린다.

 

 

짬을 내어 가이드는 우리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아르메니아 출신 예술가. Aram Khachaturian 아람 하차투리안이 작곡한 발레음악. 아르메니아가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녀의 이름이 Gayane이다. 하차투리안은 자신의 발레작품명으로 가이느, 가야네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음악이 "칼의 춤" Sabre Dance이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귀에 익은 음악이다. 들어보자.(아래 링크)

https://youtu.be/BNzFQZ8Sa2s

 

 

 

 

3시26분. Margahovit.

 

 

3시27분. 도로 주변의 경지에 건초 더미가 쌓여 있다.

 

 

아르메니아는 대부분 고원 지대이다. 여름이 건조하다. 그래서 일찍 건초 작업을 한다. 7월말인데 벌써 초지대가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8시30분. 길가의 농가. 여러가지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슬레이트를 지붕 재료로 사용한 가옥들이 많이 보인다.

 

 

 

 

3시45분. 딜리잔. 아르메니아는 70프로가 산지인데 숲은 13프로 밖에 안된단다. 아르메니아 전국에서 숲이 가장 우거진 곳이 이곳 Dilijan National Park이다. 

가진 자원의 상업적 이용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국제학교라고 한다. UWC Dilijan College. 1년 학비가 3만불 정도이며 한국인 학생도 재학중이라고 한다.

 

 

 

3시54분. 길을 따라 작은 호텔들이 줄지어 있다. 

 

길가의 화장실을 들렀다. 

 

어느 분인가 옥수수를 샀다. 배당되었다. 하나씩 먹어야 한다. 크기는 무진장 크다. 뒷쪽 좌석에서는 사람들이 몇번 씹다가 그냥 멈추었다. 폐기 처리. 미안했다.

 

 

 

4시12분. 긴 터널에 진입. 터널 이름은 모름. 터널 들어가기 전에는 숲이 우거졌는데, 터널을 나오지 황량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단다.

 

4시23분. 세반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세반 호수는 길이가 60km에 이른다. 해발고도 1900미터에 위치. 가장 깊은 곳은 90미터 정도. 25개의 유입 하천이 있으며 호수 바닥에서 용출하기도 한다. 유출되는 곳은 한 곳.

소비에트 연방 시절은 계획 경제에 따라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이용해야만 하는 자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세반 호수의 물도 '환경'의 개념은 없고, '물자원'으로만 보여 마구 빼썼다. 그 결과 수심이 30m이상 낮아져 세반호수의 아름다운 섬이었던 세반섬이 육계도가 되어 버렸다. 독립 이후에 세반호수의 수위를 높여 다시 '섬'으로 만들고 싶어하나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armenia.org의 세반 호수 지도. 글자들이 재밌게 생겼다.^^

 

 

sevan이 '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반 호수는 '검은 호수'이다.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 높은 곳에 위치하여 구름과 가깝다. 하얀 구름과 비교되어 검게 보인다.

2. 바람이 불어 물결이 칠 때면 물 표면이 검게 보인다.

라고 하는데,,,,

검은 색이 아니라 녹색이다. 왜? 이유는 모른단다. 

그 원인을 파고들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시30분. 세반섬에 도착하였다. 정상에 위치한 세반교회, Sevanavank 교회를 둘러보고 유람선으로 유람을 좀 하였다.

 

 

세바나반크 교회의 표지석.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아르메니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교회, 수도원은 두 개의 건물만 남아 있다. 나머지는 모두 파괴된 상태이다. 건물 하나는 St. Arakelots, 하나는 St. Atsvatzatzin 에게 봉헌되었다고.

 

 

 

오가다 만난 사람과 같이 한 장 남겨본다.

 

 

 

세바나반크 교회에 대한 설명은 아래 사진으로 대신~

 

 

 

대도시에 있는 교회가 아니었던 고로 자그마하다. 작은 섬에 있던 작은 수도원.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본다.

 

 

 

정면에 zvari와 십자가.

 

 

교회 안에 있는 독특한 하츠카. 하나님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변발이다. 몽골 침입의 영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츠카 가운데 묘사된 예수도 변발. 거참~

 

 

이게 웬말인고~~

 

 

교회 안의 자연 조명과 인공 조명.

 

 

 

교회 출입문의 장식. 포도.

 

 

 

문에 계신 예수는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손가락은 수결을 맺고 있다. 이것은 또 불교의 영향일 것이라 설명한다. 문화는 오고가고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섞이기도 하는 것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문에 장식된 다른 인물들은 뉘신지....기억에 없다.ㅠ.ㅜ

 

 

교회 뒷동산에서..

 

 

 

......

 

 

 

작은 교회 건물로 들어가보았다.

 

 

세반호수에서 노니는 제트스키.

 

 

왔다갔다 하면서 한번 타 보라고 꼬시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월석? moon rock이라 한다. 호수 밑바닥에서 채굴된단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그걸 이렇게 가공하여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지나는 관광객은 혹해서 사고 싶어한다.

 

 

유람선을 향한다. 그냥 배에 오르면 재미없다. 그래서 물결이 일 때 부교가 흔들리고 물을 뒤집어쓰는 경험을 제공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끄러져 떨어지면 본인 책임이다.

 

 

 

부두를 떠난다.

 

 

배에서 본 세반 교회.

 

 

배 옆으로 다가와 자꾸 뱅뱅 돈다.

 

 

이렇게 근사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배를 내려 제트스키를 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타보고 싶다.

 

 

 

섬 뒷편에는 아르메니아 대통령 별장이 있다. 빈집처럼 보인다.

 

 

 

5시43분. 날이 어두워진다. 호수를 떠난다.

 

 

 

5시52분. 호텔에 도착하였다. Harsnaqar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세반호수.

호텔 시설이 좀 달랐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을 제공. 가동이 되었다가 안되었다가 했다. 그래서 3층까지 가방을 들고 올라갔다. 이럴 때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끌고 가기를 하고 싶은데, 들은 척도 하질 않고 먼저 가버리는 룸메.

 

 

 

녹색 호반의 세반섬.

 

 

7시에 식사. 경사지에 만들어진 건물. 식당이 로비보다 한 층 아래에 위치한다.

오늘의 주 메뉴는 가재 튀김.

 

 

어느 분인가 와인을 기부하셨다. 아르메니아 와이의 대표 브랜드.

karas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인류 문명이 만든 최초의 와인 산지인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에서 생산된 elegant wine이라고 병에 써 있다.

와인이 곁들여지니 식사 시간이 조금 길어진다.
9시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파한다.
 
 
 
 
창밖 세반 호수가 어둠속으로 빠져든다.

 

깜깜~

 

 

내일은 8시에 아침, 9시에 출발한다고 고지된다.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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