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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일본

동대사, 법륭사_2004년 12월 9일

by 딱한걸음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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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2004년 12월 9일에 오사카 항구를 출발하여 나라의 동대사, 법륭사를 관람하고 후지마루가 정박중인 오사카 항구의 덴포잔 부두 天保山岸壁로 돌아와 유명한 오사카 수족관(海遊館)을 관람하였다.

 

크루즈 후지마루에서의 아침식사는 매일 6시 30분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일정하다.

8시. 오사카 항을 출발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부두 앞쪽으로 보이는 Tempozan Bridge 天保山大橋.

부두 한쪽 끝에 작은 둔덕이 있다. 높이가 무려 4.53m인데 天保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부두 이름, 부근을 지나는 교량 이름,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등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정상에는 '천보산 정상'이라는 표지도 있으며, 천보산 산악회도 있다. 산 이름이 붙은 곳들 중 일본에서 가장 낮은 산이었다. 센다이의 히요리 산이 도호쿠 대지진에 따른 지진해일로 6m였던 봉우리가 3m로 깎여나가면서 텐보산이 두번째로 낮은 산으로 순서가 밀렸다고 한다. TMI....^^

 

"역사가도". 일본에서 밀고 있는 곳이다. 일본의 역사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세~아스카 사이의 '古代史 존', 나라 일대는 '奈良時代 존', 교토로 이어지는 지역은 '平安~室町時代 존', 오사카까지 '戰國~江戶時代 존', 오사카~고베 사이는 '近代 존'으로 유형을 나누었다. 권력의 핵심 지역의 이동에 따라 해당 시기의 역사문화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시기별로 ZONE을 구별하였다.

이번 "일본속의 한민족사 탐방" 연수에서는 12월 10일에 나라 시대 유적인 동대사를 방문하고, 아스카 시대를 상징하는 법륭사와 아스카 자료관을 관람하였다. 12월 11일에 방문한 오사카 성은 전국~강호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이런 '레키시 카이도 歷史街道'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본 문화에 대한 정보 전파의 기초를 확립하고, 새로운 레저 공간을 활성하는 한편, 지역의 문화 유산을 최대한 활성화 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의 질을 높이는데 목적을 두고 추진되고 있다.

 

9시 10분. 톨게이트. 阪神高速 天保山料金所. 16번, 13번, E92 고속도로를 순서대로 이용하여 달려갔다. 

 

9시 20분. 13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는 버스의 창 밖으로 멀리 오사카 성이 보인다.

 

9시 50분. 奈良 나라시에 들어왔다. 平城宮跡歴史公園 부근에 위치한 본조사가 길가에 보였다.

 

東大寺二月堂 2층에 올라 바라본 奈良 나라 시내의 모습.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奈良 나라는 구릉지로 둘러싸인 야마토 大和 분지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794년 京都 교토로 천도할 때까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 최초의 국가를 세웠던 곳이다. 그래서 국가를 뜻하는 우리말 '나라'가 이곳의 지명이 된 것이다. 나라는 일본고대사의 시작과 건국신화의 무대가 되었으며, 최초의 국가형태인 大和 정권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나라에는 석기시대의 유적과 함께 고대 분묘와 찬란한 불교문화와 귀중한 예술품이 많이 산재되어 있어 도시 자체가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특히 나라 시내 동쪽에 위치한 나라 공원에는 흥복사, 동대사, 춘일대사, 약초산 등 나라의 대부분의 명소를 품고 있다.

대불로 알려진 동대사는 거대한 대불전을 비롯한 국보급 건축물과 불상을 많은 불교문화의 대표적인 사원이다. 또한 법륭사에 있던 고구려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는 소실되었지만, 중문, 탑, 종루 등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2004년 12월 9일 목요일 아침 나라시의 거리 풍경.

 

10시. 세계유산 도다이지 東大寺도착하여 하차하였다.

 

사슴 상들이 격렬하게 환영해주고 있다. 물리지 말라, 뺏기지 말라 같은 주의사항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 뭐라고 "주의"사항들이 써 있다.  나라공원의 사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야생동물이다! 나라의 사슴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애완동물은 아니다. 가까이 가거나 몸을 만지면 위험해요~

5~7월은 출산기다. 새끼 사슴 가까이 가면 엄마 사슴한테 많이 혼난다. "우리 애가 어떤 애인데!!!! 왕의 DNA..."

9~11월 하순 사이는 사슴들의 발정기다.................어...

사슴이 갑자기 뛰면 위험하니 알아서 잘 피하도록!

 

사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사슴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도다이지, 동대사에 입장한다. 정문에 해당하는 남대문으로 들어와 중문을 지나면 동대사 대불전을 만날 수 있다.

 

평일 10시 반에 도다이지 경내에 있을 수 있는 학생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체험학습? 졸업앨범 촬영?

 

"신경 끄고, 저쪽 가서 설명이나 들어..."

뿔 떨어진 사슴이 주변으로 어슬렁 거린다. 나라 시는 녹각 제품이 특산품이다. 

 

동대사의 배치도를 숙지하자.

남대문으로 입장하여 대불전을 탐방하고 동락문으로 빠져 행기당, 이월당, 법화당경고 순으로 탐방을 이어갔다.

 

우중한 날씨라 사진이 잘 안나왔다고 치자. 동대사의 중심인 대불전으로 찾아간다.

 

동대사의 대불전은 건물 높이 47.5m, 동서 길이가 37m, 남북은 50.5m인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745년에 동대사의 착공이 이루어져 748년에 法華堂三月堂)이 먼저 준성되었다. 708년 신라사람 金上元이 찾아낸 구리광맥에서 생산된 구리를 이용해 747년부터 대불의 주조가 백제사람 군나가노기미마로 國中公麻呂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백제 멸망 이후 왜로 이주한 백제왕 敬服이 749년에 황금 900냥을 헌납하여 높이가 15m에 이르는 盧舍那坐佛이 완성되었다. 대불을 모시는 대불전은 신라사람 이나베노모모요 猪名部百也였다. 752년에 대불의 개안법요식이 거행되었다.

 

동대사의 대불. 대불 뒷편의 光背는 771년에야 설치되었다고 한다.

 

본존상 동편 高柱 밑동에 구멍이 뚫려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보기도 하는... 빠져나가고 있다. 기둥의 이 구멍이 본존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하니 대불의 규모가 짐작된다. 

 

동대사 대불전이 백제인들의 불심과 기술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어찌하여 분위기는 일본풍인 것인가....

855년에 대불의 머리가 떨어져 861년에 수리가 되었다고 한다. 1180년에 불이나서 대불이 상하였고 1185년에 재현되었지만 불상의 모습이 달라졌다. 백제 조각의 원형은 사라지고 일본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대불전은 1180년에야 중건되었는데, 1709년에 다시 지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백제의 것을 만들어 놓았더니 세월이 지나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변형되어 버렸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옛모습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1980년에 크게 수리하면서 완전 깔끔해져 더욱 세월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대불전 귀퉁이에 창건 당시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불전 입구에서 향을 올릴 수 있다. 앗.. 12호차 깃발이...

 

대불전 밖에 모셔진 목조 불상 핀돌라 Pindola Bharadvaja. 신비한 초능력을 갖고 있었다는데....

 

동문으로 나서면 보이는 七重塔相輪 Asoka Pillas.

 

11시. 행기당 앞에서의 강연. 행기당은 에도 시대의 건축물이다. 내부에 行基菩薩坐像을 모시고 있다.

민중에게 불교를 널리 포교한 대단한 신망을 가진 行基 스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신도 무리가 있었는데, 이들이 동대사 건설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원래 行基菩薩坐像은 이코마 시의 죽림사에 모셔져 있는데, 그 좌불의 모각상이라고 한다. 행기당 내부의 좌불 모습이 언듯 보인다.

 

종루 뒤에 사슴들이 숨어서 몰래 청강하고 있다.

 

동대사에서 대불전의 대불 말고도 우리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많으며, 그것들을 놓치면 탐방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으니 대불전 밖에 있는 선조들의 유산의 잔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강사님 말씀 하나 하나를 선생님들은 집중하여 가슴속에 새기고 있다.

 

11시 20분. 이월당을 만난다. 음력 2월에 법회가 이루어지는 장소라서 二月堂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동대사를 창건한 良弁 스님의 高弟 実忠じっちゅう)이 창건하였다고는 하지만 이후 여러차례의 중건을 통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향효과가 좋아 법회를 진행하는데 적합하다고 한다.

 

2층에 오르면 나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월당을 탐방하여 조사활동에 열중하는 선생님들.

 

11시 50분. 東大寺法華堂経庫. 헤이안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창고 건물이다.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에 경전 등을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중세 이후 쌀창고로 이용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위치도 여러번 이전되었다. 나라 시대에 흔하게 사용되었다고 하는 校倉 방식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校倉 방식을 삼각형, 사각형의 목재를 사용하여 바깥쪽으로 능선 모양이 드러나도록 만든 것이다. 귀틀집과 같은 형상이지만 각진 목재를 사용하여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아 내부로 습기가 잘 들어오지 않고 건조는 잘 되는 특징이 있어 창고 건물 양식으로 적합했다. 법화당 앞에 위치하며, 옆에 어발탑이 세워져 있다.

네 방향으로 경사진 기와 지붕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러한 기와 지붕은 아스카 시대에 사찰 건축 기술과 함께 전래된 것이다.

 

무서운 사슴  사마가 자꾸 주변을 얼쩡거린다. 껌 좀 씹어본 사슴 같다.

 

1시에 만난 사슴들. 이 동네 사슴들은 여름털과 겨울털이 사뭇 다른 모양이다. 나라 시내의 어떤 식당에서 어떤 메뉴의 어떤 식사를 했을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사슴들과 헤어질 시간~~ 떠난다 법륭사로~~

 

오후 2시 20분. 호류지 法隆寺에 도착하였다. 입구에서 다들 下馬하였다.

 

중문 앞에 모여 법륭사에 대한 맛을 보고 입장하였다.

호류지 法隆寺는 아스카 飛鳥 시대(6세기 중엽~8세기 초)의 건축 양식을 오늘날에 전해주는 사찰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607년에 스이코 推古 천황과 쇼토쿠 聖德 태자가 요메이 用明 천황의 유지를 이어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670년 법륭사가 화재로 전소되고, 북동쪽으로 자리를 옮겨 708년에 중건되었다. 그런데 金堂에 고구려 스님 曇徵이 그린 벽화가 있다. 1949년에 불에 타 손상을 입기까지 뛰어난 작품으로 숭상되었다. 담징 스님이 고구려에서 건너가 활동하던 시기가 610년부터였는데, 708년에 중건된 건물에 벽화를 남겼다고 하는 부분에서 중건 시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담징의 벽화를 일본에서는 그냥 작자 미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금당은 1949년의 화재 이후 복구 공사를 하여 1954년에 세운 건물이다. 

 

금당 벽화.

 

2004년 12월 9일 현지에서 받아온 리플릿을 스캔한 법륭사 경내 지도를 통해 가람의 배치를 확인해보자.

법륭사는 크게 금당과 5층 목탑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인 西院 가람과 유메도노 夢殿 불당을 중심으로 한 도인 東院 가람으로 나누어진다. 약 187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경내에 아스카 시대를 비롯한 각 시대의 진수를 결집시킨 건조물들이 모여있으며,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1993년 12월에 일본 문화재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금당은 대웅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그래서 금당 내부에 아스카 시대의 금동석가삼존상, 금동약사여래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외에 헤이안 시대의 목조길상천입상, 비사문천입상도 안치되어 있다. 소실된 벽화는 모조 벽화로 대체되어 있다.

금당은 건축 과정에서 정황이나 기록상 백제의 목조 건축 양식을 상당부분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난간의 자형 대공, 하앙의 사용과 배치, 자형 난간 등의 특징적인 부분들은 백제 등 삼국시대 유물과도 일치하는 점이다. 또한 배흘림 양식 기둥, 독특한 柱頭의 형태 등은 역시 한국 건축의 특징과 유사하다. 배흘림기둥은 금당, 오중탑, 중문과 회랑의 기둥들 모두에서 볼 수 있다. 배흘림기둥은 서역에서 전래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12세기 이후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백제인이나 신라, 고구려인들이 경영한 건물들에서만 나타난다.

 

기둥의 윗부분을 보와 연결시켜주는 부분의 형태가 고구려식 柱頭라고 한다.

 

금당과 나란히 五重塔이 배치되어 있다.

5층 목탑은 길게 빠진 처마의 우아함이 돋보이며, 이후 일본 목탑의 전형이 된다. 이 역시 인()자형 대공와 하앙이 사용되었다. 이 목탑의 구조 중심에는 거대한 심주가 있는데, 이는 탑 꼭대기에 있는 금속 장식인 철반을 지지하기 위함이고, 탑은 다른 작은 기둥들과 공포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 이 목탑은 사람이 올라갈 수는 없다. 높이는 31.5m이며, 위로 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다. 체감률이 크기 때문에 층은 1층의 면적의 절반이다. 1층 처마 밑에 한층 낮게 덧댄 차양 부분은 그 양식을 봤을 때 금당에 있는 것보다 더 뒤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법륭사가 위치하여 역사가도의 중요 뽀인트인 이카루가 斑鳩 마을의 가옥. 일본식 가옥이다.^^

 

법륭사 관광안내소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후 4시 20분. 오사카 만의 하늘.

 

4시 30분. 오사카 항의 덴포잔 부두 天保山岸壁 한쪽에 위치한 오사카 수족관(海遊館)을 관람하였다.

 

안내 리플릿의 일부.

 

수족관 내부의 이모저모...

 

부두에는 대관람차도 돌아간다. 재밌겠다.^^

 

오후 5시 10분. 오사카 만의 황혼.

 

5시 30분. 후지마루의 선내 식당에서 저녁식사....

 

오후 8시. 선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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